뒷전이라는 자리에서

화곡동 족구왕 허리 주사 맞다

by 후니언니



평생 아프다는 말은 반칙이라 믿으며 살아온 아빠가

3주 넘게 다리를 절뚝거렸다.


"여보세요."

"사장님 1037호 옷 좀 가져가세요."

"아, 지금 저희 아빠가 병원 검진 중이여서요."

"그래요? 그럼 몇 시쯤 오실 수 있는데요?"


아빠는 디스크가 터졌고,

나는 울려대는 아빠의 핸드폰

결국 눈물이 터졌다.


아빠는 첫째 딸인 나를 임산부 대하듯 키웠다.

뭐가 먹고 싶다는 말에

밤낮 구분 없이 쏜살같이 현관문을 나섰다.


파인애플이 맛있다는 한마디에

한동안 아빠의 퇴근길은

검은 봉다리에 담긴 파인애플과 함께였고,

딸기 한팩을 씻으면 가장 실하고,

무른 곳 하나 없이 싱싱한 건 내 몫이었다.


자식들 때문에 10평 남짓한 아빠의 삶은

한없이 치열하고, 눈물겨웠다.

한여름에는 달달거리며 돌아가는

낡은 선풍기로 열병을 견뎠고,

한겨울엔 매서운 추위를 뚫고 오토바이로 배달을 다녔다.

유독 아빠의 여름은 덥고, 겨울은 한없이 추웠다.


병원 의자에 앉아 있는 아빠에게서

문득 할아버지가 겹쳐 보였다.

평생 땡볕 아래서 일하

짜장면 한 그릇에도 손을 벌벌 떨던 사람.


아빠는 할아버지를 똑 닮았다.


그들은 마치 가족을 위해 태어난 사람들 같았다.

행여 가족들 배곯을까 전전긍긍하며

아침마다 제일 먼저 집을 나서면서도

'오늘도 제발 무사히 살아남게 해 주세요.'

치사스러운 기도도 수없이 했을 것이다.


대를 이어 삶을 무게를 견디던 아빠의 디스크가

기어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통증에도

아빠는 빨리 일터로 돌아가야 한다며,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며 스스로를 다그쳤다.


허리 주사보다 아픈 아버지의 인생


남들 술잔을 비워지기 무섭게 채워주던 아빠는

정작 자신의 외로움은 자작으로 삼켜왔다.

엄마에게도, 자식들에게도 뒷전이었.


어쩌다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된 아빠의

유일한 친구이자, 안식처였던 족구.

화곡동 족구왕의 솟아날 구멍이

디스크와 함께 무너져버렸다.



화곡동 족구왕 병원행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아빠의 '손해 보는 선택'들

결국 오늘의 나와 우리 가족을 살게 했다.


이제는 안다.

세상의 모든 아빠들은

말보다 훨씬 더 많이 참아온 사람들이라는 걸.



오늘 어린이날인데 아빠가 치킨 사줄까?





딸 나이를 잊고 사는 아빠 덕에

마흔을 앞두고 호사를 누린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