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목욕탕 플렉스

탕 속처럼 포근한 빌라 생활

by 후니언니


우리 엄마는 절대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아니, 아예 쓸 줄 모른다.

엄마에게 이유 없는 소비는 사치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생일이나 명절 같은 ‘특별한 날’까지 꾹 참고, 백화점은 오직 걷기 운동을 위한 공짜 헬스장이다. 엄마의 취미는 ‘코드 빼기’, 특기는 ‘냉장고 털기’다. 일단 엄마을 거치면 자투리 재료도 근사한 찌개가 되고, 반찬이 된다.

선입선출? 노노! 엄마는 선입후출 고수다. 선물 받은 화장품은 유통기한이 임박해야 개봉하고, 새 신발은 기존 신발이 너덜너덜해져야만 비로소 빛을 본다. 어디 그뿐인가, 속옷은 빨고 또 빨아서 거의 망 느낌이 날 때까지 입는다. 십 원짜리 하나도 허투루 굴리지 않는 철학, 매일 쓰는 가계부는 그야말로 생활 속의 경전이다.


허리띠를 너무 조여서 개미허리 됨



“짠순이 플렉스”


그런 엄마에게도 매주 한 번, 지갑을 여는 시간이 있다.

일요일 오전 7시 동네 목욕탕.


5천 원으로 시작된 고정 지출은 물가 상승 어느새 9천 원이 되었지만, 엄마는 아까워하지 않는다. 목욕탕은 누구누구 엄마나 세탁소 사모님이 아닌 '이름 석 자'로 불리는 유일한 공간이니까. 서로 등을 밀어주고, 남편 욕도 좀 하고, 깔깔 웃으며 떠들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 곳. 그리고 진짜 ‘플렉스’는 목욕비 그다음이다.


목욕탕에는 나름의 룰이 존재한다. 친한 아줌마들끼리 돌아가며 2천 원짜리 설탕 듬뿍 블랙커피, 혹은 얼박(얼음 가득 박카스)을 쏘는 것이다. 셋 이상이면 부담되니 양옆에 앉은 두 명까지만. 짠순이 엄마가 시원하게 지갑을 여는 유일한 순간이자, 고단한 삶을 시 내려놓는 시간. 엄마에게 목욕탕은 때를 미는 곳이 아닌, 확실한 ‘플렉스’를 위한 공간이다.


엄마는 오늘도 우리 네 식구를 위해 근검절약의 무게를 짊어진다. 하지만 가끔 궁금해진다. 목욕탕 말고, 엄마가 '엄마 자신'을 위해 플렉스 한 순간은 언제였을까?


작지만 확실한 플렉스의 장



“탕 속처럼 따뜻한 빌라 생활”


처음으로 전셋집을 벗어나 빌라로 이사했을 때, 엄마는 작은 창으로 쏟아지는 햇볕이 그렇게 좋았다고 했다. 누군가는 창밖 뷰에 감탄하겠지만, 엄마에겐 ‘이불 잘 마르는 집’이 최고의 호사였다.


왕년에 패셔니스타에서 짠순이가 된 '엄마의 인생'이 묻어있는 작은 빌라. 그 안에서 엄마와 딱 지금처럼만, 오래오래 살고 싶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

돌아오는 엄마 생일에 엄마가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쉴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야겠다.


[목욕탕 1년 이용권]


따뜻한 탕 안에서

이제는 엄마도, 엄마를 조금 더 안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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