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족의 반전 취향
같은 회사에 다니는 언니가 있다.
때는 바야흐로 5년 전. 중국집 회식에서 고량주를 연이어 원샷하던 나는, 만취한 상태로 언니에게 사촌오빠의 번호를 건넸다. 그때 우리는 막 친해지기 시작한 사이였고, 내가 번호를 넘기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언니랑 진짜 가족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2년 만에 그 둘은 결혼에 골인했다. 사실 진짜 결혼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아이디어 회의 중, 시댁 욕을 거침없이 해대는 언니를 보며 종종 생각한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직장 상사에서 갑자기 올케언니가 된 그녀는 40대 중반. 커리어도 말빨도 끝판왕이다. 회의 중에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한마디면 방향이 통째로 바뀐다. 참고로 월수입은 이천. 천도 아니고 무려 이천이다.
언니는 스트레스를 명품 사재기로 푸는 여자다. 가방은 말할 것도 없고, 립밤조차 명품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브랜드 로고가 쉴 새 없이 박혀 있다. 반면 나는 ‘가성비’에 심장이 뛰는 사람이다. 1+1에 기분이 좋아지고, 다이소 3천 원짜리 립밤이면 충분하다. 그런 나에게 언니는... 약간 외계인 같은 존재랄까?
언니의 행복은 ‘비싼 걸 더 비싸게 사는 것’. 한정판, 예약 구매, 일반인 접근 금지일수록 더 뿌듯해한다. “이 가방 구하려고 오빠가 백화점 오픈런 했어.”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던가, 나도 모르게 돈 잘 버는 언니에게 바짝 잡혀 살 오빠가 걱정스럽다.
반대로 나는 ‘비싼 걸 싸게 샀을 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나에겐 1+1이 축복이고, 아웃렛 80% 세일은 거의 크리스마스다. 언니가 명품 가격표를 보고 전율할 때, 나는 인터넷 최저가 비교표를 보고 희열을 느낀다. 그렇다, 우린 완전히 다른 종족이다.
어느 날, 언니가 보낸 택배가 도착했다.
상자 안에는 식빵 두 줄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고작 식빵 주제에… 왜 이렇게 고급져? 검색해 보니 ‘식빵 계의 에르메스’란다. 웃겨서 식빵 뿜을 뻔! 한 줄에 만 원이 넘고, 줄 서서 몇 시간 기다려야만 살 수 있다는 귀하신 몸.
“비닐에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 두고 먹어.”
한입 베어 물자마자 냉동실 소분은 쓸데없는 짓임을 직감했다. 앉은자리에서 다 먹어치울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고, 고소하고, 눈물 나게 맛있다. 빈곤한 지갑 사정을 알리 없는 혀가 ‘나 이거 또 먹고 싶다’고 속삭였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다. 에르메스를 받았으니, 나도 뭔가 보답을 해야 했다.
그냥 회사 동료였다면 분명 고민했을 것이다. 언니가 좋아하는 걸 사주자니 가격도 부담이고, 감도 안 잡혔겠지. 하지만 이제는 안다. 월 2천 버는 언니가 좋아하는 것은 참으로 소박하다.
칼국수, 어묵탕, 황도, 달걀찜, 삼겹살과 삼겹살 기름에 구운 김치, 뻥튀기, 소주 등등
고급 술집에 가도 메인 안주보다 사이드만 공략하는 여자. 그녀는 늘 남은 소주를 명품 가방에 싸서 들고 간다. 가방이 소주병 뚜껑에 긁혀도 전혀 신경 안 쓴다. 비싼 가방이 망가지는 것보다 술을 남기는 게 더 큰 손해라고 믿는 이상한 사람.
그래서 결심했다.
에르메스 식빵에 대한 답례로, 고급 아파트에 사는 언니를 우리 골목 끝 빌라로 초대하리라.
언니는 고층 아파트, 나는 빌라에 살지만 뜨끈한 어묵탕과 소주 앞에서라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다.
때론 세상의 간극도,
서로를 향한 따뜻한 한 끼 앞에선 별 게 아닌 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명품과 가성비 사이에서 진짜 가족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