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에 도움이 되는 알짜 부수입

비밀 봉투와 로또 3등

by 후니언니



우리 아빠는 복권 마니아다.

정확히 말하면 ‘이번 주 로또 1등은 내 몫’이라는 믿음을 꾸준히 실천하는 분이다. 엄마의 잔소리가 폭우를 넘어 우박처럼 쏟아져도 아빠는 절대 꺾이지 않는다. 고요하지만 질긴 끈기, 그게 우리 아빠다.


별다른 성과 없이 맨 땅에 헤딩 같은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아빠는 집안 곳곳을 둘러보더니, 마치 비밀 첩보 요원이라도 된 듯 나와의 은밀한 접선을 시도했다.


“너, 잠깐만 이리 와봐.”


뭔가 엄청난 일이라도 터졌나 싶어 따라갔더니, 봉투 세 개를 내밀었다.


“이거 하나는 너하고, 나머지는 엄마랑 동생한테 좀 전해라. ”


아빠가 건넨 수상한 봉투를 열어보니 안에는 뜨악- 돈다발이 들어있었다. 아빠는 봉투 밖으로 빼꼼 나와있는 지폐를 재빨리 밀어 넣으며 말했다.


“니가 주는 게 제일 깔끔해. 아빠가 줬단 말 절대 하지 마. 특히 엄마한텐 절대 비밀이야, 절대!”



"우리 집엔 복권 브로커가 산다"


오랜 압박 취조(?) 끝에 밝혀진 진실은, 아빠가 로또 3등에 당첨됐다는 사실. 무려 100만 원!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걸 한 달이나 숨기고 있었다는 거였다. 불현듯 뉴스를 보며 혼자 히죽거리던 아빠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빠는 ‘가계에 보탬이 되는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합리화했지만, 본심은 뻔했다. 출처를 밝혀봤자 엄마한테 바로 몰수당할 게 뻔하니까.


배분 방식도 참 아빠다웠다. 엄마 45만 원, 나 25만 원, 동생 15만 원. 그리고 본인은 겨우 15만 원만 챙겼다. 덕분에 엄마의 가계부는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고, 나는 자동차 에어컨 가스 충천으로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고, 복권을 사랑하는 동생은 연금복권의 행운을 꿈꿀 수 있게 됐다. 누가 뭐래도 아빠는 우리 집의 비밀스러운 후원자였다.


가계를 위한 로또 당첨금 분배



"선의의 거짓말을 위한 발연기"


눈치 100단. 아니 1000단쯤 되는 엄마에게 돈봉투를 건네는 건 고난도 미션이었다. 식탁에 앉아 시금치를 다듬는 엄마에게 쭈뼛쭈뼛 다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엄마, 결혼식 갈 때 옷 필요하지? 이거 얼마 안 되는데 보태.”


갑자기 철든 딸에게 감탄한 시간은 1초 남짓, 곧바로 45만 원이라는 미묘한 금액에 미간이 구겨졌다. 나는 재빨리 덧붙였다.


"40만 원은 엄마 옷 사고, 5만 원은 아빠 여름 츄리링 하나 사줘."


거실에서 이 모든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아빠가 능청스럽게 한마디를 보탰다.


“웬일이냐 니가? 나이 들더니 철까지 들었네.”


적재적소에 치고 들어온 멘트까지는 좋았지만, 떨리는 입술과 흔들리는 동공을 감추기는 힘들었다. 생각할수록 웃기고도 짠한 장면이다.


오직 가족을 위한 아빠의 은밀한 부수입



"로또 당첨보다 아빠"


아빠는 여전히 매주 복권을 산다. “이번 주는 느낌이 와.”라는 대사는 거의 주문처럼 들린다. 엄마에게 혼나면서도 끈질기게 복권방 앞에 줄을 서는 아빠가, 참 좋다. 어딘가 허술해 보이지만 따뜻하고, 소심한 듯하면서도 속은 단단한 우리 집 가장.


가끔 아빠 주머니에서 삐죽 나와있는 로또 종이를 보면 마음이 찡해진다. 아마 오늘도 아빠는 또 한 장의 꿈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을 것이다. 대박을 기다리는 마음속에는, 우리 가족이 늘 웃으며 살아가길 바라는 소망이 절반쯤은 들어 있다는 걸, 나는 안다. 만약 1등에 당첨됐더라면 아빠의 바람대로 빌라 501호가 아닌, 아파트 1501호쯤 살게 됐을까?




참고로 로또 3등에 당첨되기 전날 아빠는 온몸에 똥을 뒤집어쓰는 꿈을 꾸셨다고 한다.


그날 이후 나는 '가계에 도움이 되는' 아빠의 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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