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nugeun Mar 02. 2021

체호프 단편선 독서록

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

작가 소개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 Anton Chekhov)

체호프는 1860년에 러시아의 항구 도시 타간로크에서 태어났다. 1867년 타간로크의 김나지야에 입학했지만 성적이 부진해 낙제했고 13세부터 극장에 출입했다. 식료품 가게를 경영하던 아버지가 파산해 일가족이 모스크바 빈민가로 이주할 때 홀로 고향에 남아 고학으로 김나지야를 마쳤다. 1879년 모스크바 대학 의학부에 입학하면서부터 잡지 등에 글을 투고했고 1882년부터 5년 동안 유머 주간지 ‘오스콜키'에 약 300여 편의 소품을 기고했다. 1883년에 의사로 개업하면서 본격적인 창작기에 접어들었으며 검열과 잡지사의 무리한 요구 등에도 풍자와 유머와 애수가 담긴 뛰어난 단편을 많이 남겼으며 1904년 44세의 나이에 운명했다.



체호프 단편선


다자이 오사무와 무라카미 하루키 등 내가 재밌게 읽은 책을 쓴 작가들이 작중에서 혹은 인터뷰에서 언급해서 궁금해진 작가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칭찬하는 작가의 글은 얼마나 좋을지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민음사에서 출판된 체호프 단편선은 총 10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들이 체호프를 대표하는 작품인지는 모르겠으나 10편 모두 아주 재밌게 읽었다. 작가는 혈기 넘치는 젊은 주인공의 얘기부터 삶의 여명기에 접어든 주교의 얘기까지 능숙하게 풀어낸다. 작중 인물의 감정을 순간적으로 깊게 파고들어 내면을 낱낱이 파헤치는 작가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짧은 단편임에도 자연스럽게 감정이 이입된다.


단편 중에는 오해를 풀지 못해 답답해하던 주인공이 갑자기 죽어버리거나(베짱이) 자신을 극도로 짜증 나게 하는 상대방을 홧김에 죽여버렸는데 주인공의 감정에 공감한 배심원들이 무죄 판결을 내리는(드라마) 등 독자의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다소 생뚱맞은 결말로 끝나는 소설이 몇 편 있다. 유머 주간지에 글을 기고했다는 작가의 이력을 알고 나면 이런 급작스러운 결말을 이해할 수 있다.


10편의 단편 중에서 인상 깊었던 단편들 위주로 감상을 좀 더 적어보겠다.



베짱이


단편 베짱이는 베짱이와 같은 삶을 사는 여자 올가와 그녀를 헌신적으로 사랑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직업에도 헌신적인 그녀의 남편 드이모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미와 베짱이의 성인용 현실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전개 과정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개미와 베짱이와 동일하다. 개미 역을 맡은 남편 드이모프는 의사로 열심히 일하면서 바깥으로 나도는 아내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고, 베짱이 역을 맡은 아내 올가는 그런 남편에게 빨대를 꽂고 사교계의 유명 인사로 화려한 삶을 살아간다. 그들의 삶은 올가가 자신의 화가 친구 라보프스키와 선을 넘으면서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던 화려한 삶이 라보프스키와의 관계를 정점으로 추락하기 시작하자 올가는 추락하는 순간순간마다 끊임없이 자기를 합리화하는데 작가가 그런 올가를 묘사하는 방식이 아주 인상적이다. 올가는 결국 마지막 순간에 남편에게 돌아가려고 하지만 남편은 의사의 본분을 다하다 환자에게 병이 옮아 있었고 결국 올가가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은 시점에서 죽고 만다. 개미와 베짱이의 동화식 해피 엔딩과는 아주 다른 엔딩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는 아내 올가가 자신의 부정한 행위를 궤변으로 합리화하는 부분이다. 작가의 표현 방식이 아주 인상 깊었다.


한번은 그녀가 라보프스키에게 자기 남편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남자는 자신의 관용으로 나를 억압하고 있어!’
이 문구가 그녀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서 자신과 라보프스키와의 로맨스를 알고 있는 화가들을 만날 때마다, 그녀는 남편 이야기를 하면서 손으로 힘찬 제스처를 지어 보이는 것이었다.
‘그 남자는 자신의 관용으로 나를 억압하고 있어!’


여담으로 체호프가 이 작품에 등장시킨 주요 인물 중 몇몇의 모티프를 실제 주변 인물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그들이 작중에서 그리 도덕적이지 않은 인물로 묘사되기 때문에 작품이 출시된 후 그들과의 사이가 안 좋아졌다고 한다. 작가가 의사였음을 감안해 볼 때 작중에서 충직한 남편이자 헌신적인 의사로 그려진 드이모프는 자신을 염두에 두고 그려낸 인물인가 싶기도 하다.


베로치카


한 사람은 고백하고 한 사람은 거절한다. 용기 있게 건넨 진실한 고백이 두 사람의 머리와 가슴에 불러일으키는 감정과 생각을 저 깊은 곳까지 치밀하게 묘사한 단편이다. 말이 오가면서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두 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읽다 보면 자연스레 지난날에 내가 겪었던 사랑 고백 혹은 거절의 순간을 떠올리게 된다. 자신의 냉당함과 상대의 냉당함. 자신의 서투름과 상대의 서투름. 나도, 상대방도, 그 누구도 억지로 사랑할 수 없고 억지로 사랑하게 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목가적인 풍경에 잘 녹여낸 단편이다. 대학 시절에 이 단편을 읽었다면 고백이나 거절의 순간에 좀 더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래는 두 남녀가 고백과 거절을 거쳐 이별하는 순간을 그린 문단(이라고 하기엔 너무 긴)이다. 체호프는 고백하는 순간 벌어지는 두 남녀의 감정 변화를 기술하는 것만으로 아주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놀라운 재주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그는 두려움을 느끼며 생각했다.
‘그런데 난 과연 그녀를 사랑하는 것일까? 그게 문제로군!’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힘든 말을 마침내 입 밖에 낸 그녀는 이미 가볍고 편안한 호흡을 되찾고 있었다. 그녀도 함께 일어나더니 이반 알렉세이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빠른 속도로 말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갑자기 충격을 받은 사람이 자신을 혼란에 빠뜨린 소리들을 나중에 순서대로 기억할 수 없는 것처럼, 아그뇨프도 베라가 말했던 문장이나 단어들을 기억할 수 없다. 다만 그 내용이라든가 그 말을 통해서 전달된 느낌이 기억날 뿐이다.
그녀는 손을 쥐어짜면서 말했다.
‘이 집, 이 숲, 이 공기가 싫어요. 이 끝없는 평정과 목적 없는 삶을 참을 수 없어요. 모든 사람들이 무미건조해서 마치 물방울처럼 서로 구별이 안 되는 이 고장 사람들을 참을 수 없어요! 이들은 전부 정이 많고 선량하지요. 왜냐하면 배부르고 걱정이 없으니까, 그래서 싸울 일도 없으니까… 그러나 저는 일과 삶의 필요로 인해 냉혹해진 사람들이 고뇌하며 사는 바로 그 커다랗고 습기 찬 집들이 좋아요…’
무슨 말을 하든 그 한마디 한마디가 아그뇨프 자신에게도 역겹고 진부하게 여겨졌다. 한발한발 내디딜 때마다 죄책감이 자라났다. 그는 주먹을 부르쥐고 자책하면서 자신의 냉당함과 여성에 대한 서투름을 저주했다. 스스로를 부추길 양으로 그는 베로치카의 아름다운 몸매와 그녀의 땋아내린 머리, 먼지 날리는 길 위에 남겨진 조그마한 발자국에 눈길을 주며 그녀의 눈물과 말들을 상기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부드러운 기분을 자아내기는 했지만 그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지는 못했다.
‘아, 억지로 사랑할 수는 없는 노릇이야!’
그는 생전 처음 인간의 선의라는 것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경험으로 깨우치게 되었다. 상식 있는 진실한 인간도 자신의 선의에 반하여 가까운 사람에게 까닭 없이 가혹한 고통을 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베라가 보이지 않게 되자, 그는 굉장히 소중하고 친밀한 무언가를 잃었으며 그것은 앞으로도 되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의 한 부분이 베라와 함께 미끄러져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토록 헛되이 괴로워했던 시간들도 이제는 다시 되풀이될 수 없을 것이다.


미녀


우연히 거리에서 미녀를 보게 된 남자들이 느끼는 감정을 남자들 스스로도 인식하기 어려운 부분까지 세밀하게 묘사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작가가 정말 세심하게 감정의 내밀한 부분을 잘 포착해 낸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주제도 뛰어난 통찰력으로 사람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 들어가서 훌륭한 문장력으로 표현해내면 어엿한 소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줬다.


그녀가 그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나의 슬픔은 더해 갔다. 나도 그녀도, 그리고 그녀가 왕겨의 구름을 지나 짐마차 뒤로 뛰어갈 때마다 슬픈 눈으로 뒷모습을 좇는 그 우크라이나인도 불쌍했다. 그것은 소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질투 때문인지, 아니면 이 소녀가 지금 내 것이 아니며 앞으로도 영영 내 것이 될 수 없는 타인이었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소녀의 흔치 않은 아름다움이 지상의 다른 모든 존재들처럼 우연하고 불필요하고 무상한 것이라는 사실을 내가 막연히 느끼고 있었기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나의 슬픔은 진정한 아름다움을 관조할 때 인간의 마음속에서 불러 일으켜지는 특별한 감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 친구, 이런 시시하고, 얌전하고, 똘똘하고, 꾸부정한 곱슬머리로 태어나서, 우리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 이 멍청한 미녀와 사랑에 빠진다면, 그건 얼마나 불행하고 우스운 일일까요! 아니, 더 나쁠 수도 있지. 상상해 봐요. 이 전신수가 아가씨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아내를 갖고 있다면, 또한 그 아내가 그와 마찬가지로 꾸부정하고 얌전한 곱슬머리라면…. 끔찍한 노릇이죠!’
그의  깡마르고 푸석푸석한, 밤새 잠도 못 자고 열차의 진동에 시달린 데다 소화불량인 듯한 얼굴은 감동과 함께 깊은 슬픔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그 아가씨에게서 자신의 젊음과 행복을, 순수한 본성을,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을 본 듯했다.


주교


4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작가가 늙은 주교의 감정선을 이토록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는 점에 놀랐다. 일상에서 만난 주변 인물들을 세밀하게 관찰해 놓았던 것일까.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감정선을 이토록 설득력 있게 잘 묘사할 수 있어서 유명한 작가가 되었나 보다. 이런 글을 읽다 보면 아무래도 난 작가의 재능은 타고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에 가슴에 품었던 모든 소망이 모든 것을 성취한 현재에도 사람을 고뇌하게 만든다는 문장이 가슴에 깊게 와 닿았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미 작가로서 많은 것을 성취한 체호프도 주교와 같은 감정을 품었던 것일지 궁금하다.


그런데 자신이 병에 걸린 지금, 청원자들이 울면서 부탁했던 일들이 얼마나 공허하고 하찮았던가를 생각하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의 무지와 비겁은 그를 화나게 만들었다. 이 모든 하찮고 쓸모없는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그를 짓눌렀다. 젊은 시절 ‘자유 의지에 관한 교훈'이라는 책을 썼던 관구 주교가 어째서 지금은 머리가 텅 비어 신조차도 잊고 사는 시시한 인간이 되었는가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옛날의 일들은 실제로는 그랬을 리 없는 아름답고 황홀한 모습으로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저승에서 아마도 우리는 먼 과거에 이승에서 살았던 삶을 바로 이런 감정으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예하는 어둠이 드리워진 제단 앞에 앉았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생각했다. 지금 그는 자신의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서 가능한 모든 것을 성취했으며 여태껏 믿음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 것은 불투명했다. 아직도 무언가가 부족했으며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그에게는 무언가 가장 중요한 것이, 언젠가 막연하게 꿈꾸었던 그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과 대학 시절 그리고 외국에서 가졌던 그 모든 소망이 현재에도 그를 고뇌하게 만들고 있었다.


재밌게 읽었다. 짧은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어 부담 없이 시작해보기 좋다.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만화 페르세 폴리스 독서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