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의 평화는 승리여야 한다!
출판사에 따라 ‘짜라투스트라’로 번역한 곳도 있고 ‘말하였다’로 번역한 곳도 있다. 그중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번역한 ‘열린책들’ 버전을 골랐다. ‘짜라투스트라’보다는 ‘차라투스트라’가 마음에 들었고 ‘말하였다’보다는 ‘말했다’라고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다른 책들보다 살짝 작은 크기와 묘하게 끌리는 보라색 톤의 표지 디자인까지 마음에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책의 내용과 잘 부합하는 표지 그림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9555145
다른 출판사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번역 품질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눈에 거슬리는 문장 없이 재밌게 잘 읽었다.
전혀 몰랐는데 차라투스트라(Zarathustra)는 언젠가 학교에서 배웠던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 ‘조로아스터’의 독일어 표현이었다. 우연히 예전에 배웠던 지식과 조우하게 돼 기뻤지만 조로아스터교가 어떤 종교였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해설을 보니 니체가 이 책에서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설파한 내용은 조로아스터의 생애나 그의 교리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굳이 더 찾아보지 않았다.
이 책은 냉소적인 무신론자 차라투스트라의 득도기다. 책의 대부분은 초인이 되기 위해 쉬지 않고 정진하는 차라투스트라의 거칠고 공격적인 잠언으로 채워져 있다. 문학 작품이지만 읽고 나서 서사의 구조가 머리에 남거나 문학적 아름다움이 가슴에 남는 책은 아니다. 서사 구조는 다음과 같이 아주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차라투스트라라는 도인이 산에서 열심히 도를 닦다가 문득 자신이 깨달은 바를 사람들에게 전파해야겠다고 마음먹고 하산한다. 도시로 내려간 그는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외면받지만 곧 그의 가르침에 세상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며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생겨난다. 제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깨달은 바를 특유의 냉소적이지만 열정적인 자세로 전파하던 차라투스트라는 어느 날 더 높은 도를 이뤄야겠다고 마음먹고 제자들을 뒤로하고 다시 산에 오른다. 그곳에서 마지막 시련을 통과한 차라투스트라는 끝내 인간을 극복하고 초인의 길로 들어선다.
차라투스트라는 득도하는 과정에서 ‘하산 - 전도 - 등산’의 여정을 거치는데 읽다 보면 이것이 실제 여행이라기보다는 차라투스트라의 환상이나 사고 실험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여정 중 등장하는 도시나 인물, 동물들에 대한 묘사가 초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도를 닦고 전파하는 과정에서 차라투스트라는 그야말로 쉴 새 없이 떠든다. 종교, 민족, 국가, 권력, 언론, 여론, 이웃, 벗, 죽음, 선악, 정의, 힘, 결혼, 욕망, 사랑, 행복, 취향, 양심, 자유 등의 여러 개념과, 성직자, 현자, 도덕군자, 타란튤라(평등의 상징?!) 등으로 대변되는 다양한 사상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를 아우르는 자신의 생각을 쏟아내며 기존의 생각을 철저히 깨부수고 왜 인간을 극복하고 초인이 돼야 하는지, 어떻게 초인이 될 수 있는지 갈파한다.
사랑하고 경멸하며 몰락하는 파괴적 창조의 초인,
‘이미 있었다’를 ‘나는 그렇게 하길 원했다’로 바꾸는 초인,
‘너는 해야 한다’를 ‘나는 하려 한다’로 바꾸는 초인,
말인들의 선과 악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초인,
원치 않는 행복을 거부하고 사소한 승리에 흔들리지 않는 초인,
왜소한 다수의 행복을 극복하고 고독으로 귀향하는 초인,
죽은 신을 뒤로 하고 지상을 지향하며 인간을 극복하는 초인.
이 책에서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는 초인은 다정하고 자비로운 초인이 아니다. 너그럽고 포용력 있는 초인이 아니다. 초인이 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말인들과 천민들은 사정없이 내려치고 외면하며 오로지 자신의 득도를 향해 전진하는 초인이다. 자신에게 가르침을 받으러 찾아온 ‘더 높은 인간들’에게 서슴없이 ‘그대들은 한낱 다리에 불과하다. 더 높은 자들이 그대들을 지나갈 것이다! 그대들은 계단을 뜻한다. 그러니 그대들을 넘어 자신의 높이에 오르는 자들에게 노여워하지 말라!’고 외치는 초인이다. 동정심을 최후의 죄로 인식한 뒤 극복해 버리는 그런 초인이다.
해설을 보면 니체가 독일의 제국주의와 파시즘, 인종주의의 선구자로 오해를 받았다고 나와 있다. 책을 읽어보면 제국주의나 파시즘의 선구자로 오해를 받은 것은 정말 터무니없는 오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니체가 창조한 초인 차라투스트라는 그와는 정반대의 성향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강한 어조로 초인을 추구하면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사상을 끊임없이 부정하고 초인이 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다리’나 ‘계단’에 비유하며 기꺼이 몰락해 ‘수단’이 되라고 말하는 부분에 몇 군데 등장하는 유대인 직접 비하 표현이 맞물리면 반유대주의에 악용될 소지는 어느 정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최근의 성평등 의식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남녀차별적 표현도 여러 군데 등장하며, ‘이웃 사랑’으로 대변되는, 서로 동질감을 느끼며 위로하면서 주위 사람들과 어울려 ‘동글동글하게’ 살아가는 것의 가치를 사정없이 깔아뭉개는 부분도 나온다.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이 깨달은 바를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는 행위조차 자신이 초인이 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나 과정으로 여기는 차라투스트라는 반사회적이고 냉소적이면서 성차별주의자적인 면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점은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와 같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굉장히 매력적인 책이다. 끊임없이 파괴적 혁신을 추구하는 사람, 점점 속물화되고 천민화되면서 부끄럼 없이 노골적으로 노예근성을 드러내는 현대 사회가 진절머리 나는 사람, 요즘 사람들의 위선이 구역질나는 사람, 수시로 자기만의 고독 속으로 도피하는 사람, 극복해야 할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진정 최고의 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