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이지 Nov 06. 2022

아름다움의 얼굴들 : 쥴쟝루이공원, 고원통계곡, 미시령

‘칼에도 문무(文武)가 있다. 날이 얇고 날렵해 재료의 편을 뜨거나 채를 썰 때 적합한 칼이 ‘문도(文刀)’다. 날이 두껍고 묵직해서 고기를 뼈째 자르거나 생선을 토막 낼 때 쓰는 칼이 ‘무도(武刀)’다. 칼마다 각각 다른 성질과 쓰임새를 갖는다.’ 문도로 섬세한 재료들을 다듬고, 무도로 크고 거친 재료들을 다룬다는 말이다.


자연에도 섬세한 장면이 있고, 굵고 거친 풍경이 있다. 미시령을 넘어 속초 바다로 갈 때, 고원통계곡과 미시령 정상을 통할 수 있다. 이 두 곳은 성질이 다르다. 고원통계곡은 예쁘고 섬세하고, 미시령은 거칠고 굳세다. 고원통계곡이 문경(文景)이면, 미시령은 무경(武景)이다.


시월 말이다. 당일로 먼 거리를 다녀올 수 있는 날이 몇 안 남았다. 아까운 날들 중 하나를 꺼내 미시령 너머 속초 바다로 간다. 이 철에 태백산맥 산악지역을 거치려면 한겨울 채비가 필요하다. 라이딩 진과 재킷 아래 언더팬츠, 언더셔츠, 기모 셔츠, 경량 패딩을 꼼꼼히 챙겨 입는다. 글러브도 겨울용을 낀다. 만일을 위해 극동계용 글러브와 레인재킷은 따로 챙겨 넣는다.


덕소에서 6번 국도를 탄다. 마지막 가을 이른 아침, 한강은 차고 짙은 안개다. 팔당 쪽 검단산과 예봉산이 보이지 않는다. 가까운 미사리 조정경기장 언덕 위에는 큰 나무의 잿빛 실루엣이 안개 허공에 걸렸다. 미시령 아래까지 멈추지 않고 달려야 할 것 같다.


철정터널을 지나 화양강휴게소와 팜파스를 지나면서 생각이 바뀐다. 쥴쟝루이공원에 들르기로 한다. 20여 년 전 한 번 방문했을 뿐이지만, 그 한 번의 방문으로 그곳은 각별한 기억이 되었다. 길가의 작은 ‘쥴쟝루이공원’ 표지판을 집중해서 찾아 들어간다.


홍천군 두촌면 장남리다. 강원도농업기술원 옥수수연구소와 장남보리밥집이 있는 마을이다. 여기서 한국전에 참전했던 프랑스군 쥴쟝루이 소령이 서른네 살에 죽었다. 1951년이다. 1986년에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 작은 공원과 동상이 세워졌다.


소공원과 동상이 기억 속 모습과 같다. 외진 마을의 왼쪽 가장자리에 있는 듯 없는 듯 있다. 공원을 둘러싼 건 옥수수밭이다. 밭 기슭에 네모난 터를 닦아 그 위에 작은 화강암 꽃 모양을 만들고, 꽃 한가운데 꽃술처럼 동상을 세웠다.


동상은 등신대로 보일 정도로 아담하다. 총을 메거나 권총을 차지 않고, 수류탄을 가슴에 매달지도 않았다. 철모 대신 베레모를 쓰고, 베레모 아래 안경을 썼다. 허리에는 수통을 차고, 어깨에는 사각형 의료가방을 멨다. 그가 프랑스군 의무대장이었기 때문이다. 장렬하게 전사한 강대국 장교의 위세가 아니라 서른네 살에 죽은 자연인 의사의 모습이다.


동네도, 공원도, 동상도 사실적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다. 미화가 없고, 과장이나 허세도 없다.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의 장소에 세웠다. 사실과 현실에 충실했으니 진실하고 소박하다. 진실의 장소를 꼼꼼히, 오래오래 들여다본다. 먼 산촌에 소박하고 진실한 공원과 동상을 만들고자 했던 비범한 뜻이 작가의 것이었는지 프랑스 당국의 것이었는지 공원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작가의 이름도 찾을 수 없다.  


쥴쟝루이공원을 처음 방문한 건 프랑스 대사 부부를 위한 길안내 때문이었다. 이십대 후반이었고, 어설픈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던 때였다. 한국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대사 부부가 동해안으로 여름휴가를 가던 참에 쥴쟝루이공원을 방문하길 원했다. 춘천에서의 점심 장소와 쥴쟝루이공원까지의 안내를 맡게 된 건 우연이었다.


계획에 없던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을 때, 대만계 대사 부인은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나의 밥공기에 놓아주었다. 밥을 먹는 동안 대사는 자신의 이십 대 때 프랑스 군생활에 대해, 보급품으로 받았던 담배와 비누와 속옷과 수건에 대해 얘기했다. 공원에 도착했을 때는 한여름 오후 햇볕이 뜨거웠다. 대사 부부는 공원과 동상을 꼼꼼히 돌아보고, 캐논 카메라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곧 대사 부부가 방문할 거라는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고 달려온 인근의 공무원이 급한 대로 동상 앞에 꺾어다 놓은 들꽃 다발에 감사를 표했다. 공원을 떠나면서 부부는 고맙다고 와인 한 병을 트렁크에서 꺼내 주었다. 다정했고, 편안했고, 인간적이었다.


해가 난다. 11시가 넘어가고 있다. 날은 여전히 차다. 다시 모터사이클을 달린다. 소양호를 왼쪽으로 끼고 달린다. 오른쪽 절개지에 산국들이 샛노랗다. 인제와 원통을 지나는 동안 44번 국도변에 벚나무 마지막 단풍들이 내내 붉다. 샛노란 은행나무도 간간이 섞인다. 원통을 벗어난다. 2시 방향으로 멀리 남설악 바위 봉우리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한계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하자마자 신경 써서 ‘국도 46호선 옛길’ 표지판을 찾아들어간다.


가볍게 가슴이 뛴다. 고원통계곡으로 들어선다. 원통에서 넓게 흘렀던 북천이 양쪽에서 바짝 조여든 산 사이로 좁게 흐른다. 계곡 초입부터 하얗고 깨끗한 암반 위로, 하얗고 깨끗한 바위들 사이로 맑은 계류가 흐른다. 큰 바위 아래 소에는 투명하고 짙은 옥색 물이 돌아 나간다. 자갈과 잔바위가 쌓인 여울에서는 부서지고 반짝이며 흐른다.


기어를 2단으로 내리고 쓰로틀을 푼다. 아껴먹듯 천천히, 큰소리 내지 않고 간다. 앞에도 뒤에도, 사람도 차도, 아무것도 없다. 도로 위에는 마지막 단풍으로 매달렸다 떨어진 나뭇잎들 뿐이다. 계곡 쪽 도로 가에 줄기가 붉고 곧은 소나무들이 줄 지어 섰다. 소나무들이 끊어진 자리에는 흰 줄기와 가지를 가진 은사시나무가 노랗게 물든 잎들을 팔랑인다. 무한히 팔랑이는 은사시나무 잎들이 가을빛에 물비늘처럼 반짝인다.  


급하지 않은 커브 하나를 돈다. 물이 휘어 흐르는 안쪽으로 모래와 자갈이 쌓여 둔덕을 이뤘다. 모래와 자갈도 희고 깨끗하다. 둔덕에는 어린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뤄 자란다. 소나무 군락 옆으로는 급한 경사의 바위산들이 물가를 따라 잇대어 서있다. 산에는 단풍나무 단풍이 빨갛고, 참나무 단풍이 노랗다. 빨갛고 노란 단풍 군락들은 소복소복한 브로콜리 송이의  양감과 모양으로 온 산들을 덮었다. 단풍 가득한 산에 느닷없이 바위 절벽들이 솟았고, 절벽 틈과 머리에는 예외 없이 작고 낮은 소나무들이 섰다.


고원통계곡은 맑다. 깨끗하고 조용하다. 깊은 고독, 아름다운 정적, 터질듯한 긴장이 가득하다. 이곳의 나무와 풀과 짐승들은 복 받은 생명들인 것 같다. 틀어쥐었던 것들을 놓아 온 몸을 연다. 복 받은 생명들의 맑은 기운이 스며든다.   


사선으로 날카롭게 끝이 잘린, 좁고 긴 바위 기둥이 보인다. ‘선바위’다. 미시령 구역에 들어서고 있다는 걸 알리는 표식 같은 바위다. 선바위를 지나 바로 ‘미시령 옛길’로 빠져 들어간다. 왕복 이차선 좁은 산길을 와인딩 하며 올라간다. 미시령 고개 나뭇잎들은 이미 많이 졌다. 남은 잎들은 색과 빛을 잃어 건조한 고동색이다. 노면에는 버석거리는 낙엽들이 쌓였다.


‘정상 1km’ 표지판을 지난다. 산의 경사가 약해진다. 나무들은 이미 잎을 모두 떨구었다. 거센 바람이 분다. 정상이 시야에 들어온다. 산의 경사가 더욱 죽어 고개 정상은 밋밋한 언덕의 모습이다. 정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헤어핀 코너를 돌아 올라가는 동안 바람은 더욱 거세진다. 서쪽에서 동쪽 정상을 향해 세차게 분다. 모터사이클이 흔들린다. 몸을 숙여 집중해서 올라간다.


미시령 정상은 온통 바람이다. 정상부 지세는 완만한 언덕인데, 그 언덕을 가득 채운건 거칠게 쓸어가는 바람과 바람에 남은 황량함이다. 흙은 바람에 쓸려가고, 남은 바위와 돌들이 검게 드러나있다. 바람과 바위와 돌 속에서 좁고 날카로운 잎을 가진 회색 풀들이 땅에 붙어 흔들린다. 교목인 참나뭇과 나무들이 관목의 군락으로 빽빽이 붙어서 있다. 침엽수들도 키를 키우지 않고, 가지를 벌지 않고, 잎을 곧바로 줄기에 붙인 채 낮게 자랐다.


시월부터 이듬해 삼월까지 미시령 정상은 알파인 툰드라의 모습이다. 툰드라는 ‘나무가 없는 언덕’이다. 북극 툰드라, 남극 툰드라, 알파인 툰드라가 있다. 알파인 툰드라는 ‘고도가 높고, 바람이 강하고, 지형이 가팔라 물의 유출이 많고, 나무와 풀이 자랄 수 있는 기간이 짧고, 그래서 식생에 불리하다. 전 세계 산지에서 나타난다. 자라는 것은 이끼류, 키 작은 벼과나 사초과의 풀들, 교목이 대부분이다.’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의 미시령 정상에 툰드라가 아니라고 할만한 것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미시령은 ‘화살도 더디 넘는 고개’다. 미시령 아래 울산바위는 천후산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하늘이 울부짖는 산’이다. 울산도 울타리 모양을 한 산이라는 해석과 함께 ‘우는 산’이라는 해석을 함께 가지고 있다. 더딘 화살도, 우는 산도 미시령 바람 때문이다.


‘사흘 동안 아침나절 험한 비탈을 올라, 사흘 저녁에 정상에 우뚝 섰다. 거대한 바위에 발도 다치고, 깎아지른 낭떠러지에 눈이 아찔했나니, 굉대(宏大)하도다 미시령이여... 바람결에 날려 보내는 나의 장탄식, 나의 이 길은 과연 옳은 것인가.’ 1631년 간성 현감 이식이 쓴 시다.


‘땅 가죽 어디에 붙잡을 주름 하나, 나무 하나, 덩굴 하나, 풀포기 하나 없다... 풍경 전체가 바람 속에, 바람이 되어 흔들리고, 설악산이 흔들리고 내 등뼈가 흔들리고.’ 1993년 황동규가 쓴 시다.


미시령에는 늘 큰바람이 분다.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분다. 늦봄부터 여름까지는 동에서 서로 분다. 서에서 동으로 부는 바람이 양간지풍이고, 동에서 서로 부는 바람이 높새바람이다. 고개 정상에서는 모두 거세고 세차다. 기상청 데이터에 따르면 미시령 바람은 전국에서 가장 센 바람이다. 두 번째가 제주도 바람이다. 미시령에 불어오는 바람은 태백산맥에 부딪쳐 압축되고 가속되면서 압도적인 바람이 된다. 흙을 쓸어가고, 풀을 압도하고, 나무를 압도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압도한다. 대관령 고원에는 사람이 살지만, 미시령 정상에는 사람이 살지 못한다.


미시령 바람에는 잔바람과 졸바람이 없다. 미시령 땅은 단순하고, 거칠고, 척박하고, 황량하다. 기골을 드러내고, 내장을 드러낸다. 미시령 풀과 나무들은 위로 옆으로 밖으로 자라지 않고, 낮고 작게 수그리고 웅크리며 자란다. 안으로 자란다. 바람과 땅이 거칠고 척박하듯, 이곳에 붙은 생명은 질기고 모질게 분투를 이어간다.


46번 국도 옛길과 미시령 옛길을 천천히 달리면서 알게 되었다. 사실과 현실에 충실한 것에는 진실이 있다. 진실은 오래도록 아름답다. 스스로 맑고 깨끗한 것에는 생동의 기운이 있다. 생동하는 것에는 싱싱한 아름다움이 있다. 고요한 속에 조화로운 것들은 편안하다. 편안한 것에는 충만해오는 아름다움이 있다. 거센 흐름 버틴 척박과 황량에는 시간이 들었다. 시간을 견딘 것들은 의연하게 아름답다. 척박하고 황량한 가운데 흔들리는 것들은 분투 중이다. 분투하는 것들에는 아린 아름다움이 있다. 모두가 아름답다.   


시월 말 미시령 바람이 차다. 한기가 든다. 속초로 가는 낭떠러지길을 모터사이클에 낮게 엎드려 내려간다.         


- “미쉐린 스타 셰프 진진(津津) 왕육성의 ‘칼의 노래’”, 월간중앙 2017. 8. 17.

- “설악산과 금강산이 만나는 곳”, 강원도민일보 2022. 2. 7.

- “양간지풍의 올바른 이해”, 설악신문 2022. 7. 18.

- “벌써 첫눈, 설악산 얼음꽃... 미시령엔 태풍급 강풍”, JTBC 2022. 10. 10.

 - “기상청 한반도 바람지도 첫 공개”, 동아일보 2009. 9.22.


- Wikipedia "툰드라"

- Britannica "Tundra"

이전 16화 터전의 생활, 시선의 삶: 태백고원 황재 전재의 마을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