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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이지 Jun 10. 2023

샹그릴라를 찾아서 : 북한강과 춘천

영혼을 위한 강원도 모터사이클 여행

마음속의 샹그릴라는 설산에 은둔한 녹색 낙원이다. 쿤룬산맥의 서쪽 끝 어딘가에 있다. 쿤룬산맥은 티베트고원의 북쪽과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쪽이 만나는 경계다. 이 경계를 따라 해발 5,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동에서 서로 3,000km에 걸쳐 이어진다. 서쪽 끝은 파미르에 닿는다. 쿤룬과 파미르가 만나는 어딘가에, 찾기 어렵고 찾더라도 가기 어려운 길 끝에, 만년설 덮인 산속에, 물이 흐르고 생명이 자라는 안온한 계곡이 있다. 그게 샹그릴라다.


샹그릴라는 세상에서 아주 먼, 독자적 평화의 장소다. 전쟁과 범죄가 없고, 사람들은 거의 늙지 않으면서 오래 산다. 사람과 자연의 조화 속에 예술과 문화가 풍요롭다. 사람들은 온유하고, 인내심이 깊다. 내적 평화와 사랑, 삶의 목적을 소중히 여긴다. 그곳에서 사람들의 삶은 단순하고, 평화롭고, 행복하다.


춘천은 물의 도시고 산의 도시다. 높은 산들이 사방으로 둘러 서고, 그 산들 사이로 큰 강들이 흐른다. 시간에 깎인 산자락과 강들이 날라다 쌓은 땅에 도시와 마을이 들어섰다. 도시 어디서나 아득한 산들은 든든한 배경으로 서고, 지척의 물은 편안한 전경을 만든다. 둘러선 산과 돌아나가는 물 안에서 춘천은 홀로 아늑하고 평화롭다. 부드럽고 감미롭다.


아늑하고 감미로운 관능은 사랑과 동경을 낳는다. 마음속에 애련의 풍경을 만든다. 마음으로 그린 춘천의 풍경은 미지의 그곳, 새롭고 낯설어 가슴 설레게 하는 그것, 진달래꽃을 닮은 누가 있을 곳, 까닭도 없이 가고 싶은 곳,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몽롱한 안개 피듯 춘천 춘천이면서도 정말 가본 적은 없는 곳, 소낙비가 이슬비가 되고, 아지랑이 실루엣으로 봄이 오는 곳이다*.


마음의 풍경에 끌려 춘천에 간다. 북한강길을 따라간다. 덕소, 팔당, 양수리 한강가에 6월이 왔다. 강변 습지에는 버드나무가 우거지고, 길가의 벚나무들엔 잎이 시퍼렇다. 예봉산, 검단산, 운길산에선 억센 기운이 느껴진다. 양수리에서 6번 국도를 벗어나 북한강 동쪽 391번 지방도로 접어든다. “북한강변로“다. 여유로운 각도로 비껴내리는 산들이 만든 넓은 계곡에 싯푸른 물이 그득하다. 금강산에서 시작한 물이 긴 계곡들을 흘러 한강에 합해진다. 잔물결 이는 강이 아침빛으로 은은하다. 길가에 줄지은 벚나무 잎들이 바람에 일렁인다.


서종을 지나자 길 오른편 산세가 가팔라진다. 산들이 급한 기세로 강에 내리 꽂히고, 길은 급경사 산자락을 파며 나간다. 청평대교를 앞두고 길이 누그러진다. 터널 같은 벚나무길이 이어진다. 2차선 길 양편 벚나무들이 모두 중앙선을 향해 가지를 뻗었다. 여름을 향해 독이 오른 나뭇잎들이 하늘을 가린다. 검은 아스팔트에 어둑하고 서늘한 그늘이 드리운다. 무성한 나뭇잎이 바람에 슬릴 때, 두터운 나뭇그늘이 맑은 물그림자가 되어 어른거린다.


청평을 지나면서 풍경이 바뀐다. 길의 왼편을 흐르던 강이 오른쪽으로 편향을 바꾼다. 강폭이 좁아지고, 양편 산들이 다가앉아 계곡과 자연의 느낌이 확연해진다. 계곡계곡을 깊숙이 파고든 호수와 강물의 언저리를 따라가느라 길은 더욱 급하게 휘고 가파르게 오르내린다. 강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상류로 거슬러 오른다.


가평읍 달전리는 북한강가에서 가장 번화한 마을이다. 닭갈비집, 막국수집, 카페, 술집들이 마을을 이룬다. 간판들은 대부분 커다란 볼드체로 이름을 새겼다. 가장자리에는 낮에도 번쩍이는 LED를 달았다. 호객과 주차를 겸하는 남자들이 차도까지 나와서 손님을 부른다. 거리와 가게는 북적이는 젊은이들로 떠들썩하다. 반바지와 반팔에 선글라스를 낀 커플들은 손을 잡고 걷는다. 길가에서, 그늘에서 키스를 하는 모습들은 주저함이 없어 자연스럽다. 손잡고, 걷고, 키스하고, 밥 먹고, 커피를 마시고선 배를 타거나 짚와이어에 매달려서 소리를 지르며 남이섬으로 입국한다. 달전리와 남이섬의 청춘들에겐 눈에 뵈는 것이 없다. 가릴 것도, 거칠 것도 없이 사방으로 내달린다. 다정하고, 뜨겁고, 절정이다. 열정이 잦아든 자리에 지혜가 든다는데, 그 시간은 때가 되면 저절로, 어차피 온다.


“북한강변로”는 가평에서 끝나 46번 국도 “경춘로“에 연결된다. “경춘가도”로도 불렸던 간선도로다. 길은 여전히 오른편에 북한강을 두고 달린다. 춘성대교를 건너다 문득 멈춘다. 상류를 향해 무한한 공간이 열린다. 다리 위에서 보는 강은 강촌삼거리까지 10여 km에 걸쳐 곧게 뻗어있다. 양편의 산들은 강으로부터 멀찍이 물러나 하늘을 향해 열려있다. 상류로 강을 따라간 시선도 막힘 없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산, 강, 하늘이 하나가 되고 무한이 된다.


강촌삼거리를 지난다. 강과 길이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모습을 바꾼다. 산들의 경사가 급해지고, 곧추선 산들이 양편에서 조여들어 강은 좁아지고 물은 깊어진다. 앞선 산들과 뒤선 산들이 강을 따라 빼곡히 도열해 도미노 쓰러지듯 상류를 향해 멀어져 간다. 울울한 계곡을 흐르는 강을 따라 하얀 길이 띠처럼 펼쳐진다. 길은 강물 위에 높게 뜬 채 달린다. 물 위를 달리는 동안 강가에는 인가도 상가도 보이지 않는다. 시원을 향해 홀려들듯 달린다.


의암댐을 지나니 물의 세상이다. 수직의 계곡 통로 끝에서 돌연 수평의 공간이 열리고, 공간을 채운 건 온통 물이다. 의암호를 따라 도는 403번 지방도를 달린다. 검푸른 물의 잔잔한 리듬이 끝이 없다. 호수면과 나란히 뗏목 같은 섬들이 나직이 떠있다. 섬에서는 키 큰 미루나무 숲이 바람의 방향대로 눕는다**. 호수 너머 멀리 물 안에는 섬 같은 산들의 실루엣이 봉긋하고, 그 아래 하얀 도시 춘천이 자리를 잡았다***. 더 먼 원경에선 준령의 산맥들이 너른 품을 펼쳤다. 국경의 터널을 빠져나온 눈의 고장이 왜 설국이어야 하는지 이제 알겠다.


물의 도시를 만든 산의 도시 춘천의 프로필은 구봉산전망대에서 분명해진다. 푸른 물 안의 하얀 도시는 높은 산들에 쌓여 있다. 북쪽은 용화산(878m)과 오봉산(778m), 동쪽은 마적산(610m), 구봉산(440m), 대룡산(899m), 남쪽은 금병산(652m), 서쪽은 삼악산(654m), 계관산(736m), 북배산(870m), 가덕산(858m), 몽덕산(695m)으로 벽을 둘렀다. 겹겹의 산들이 만든 너른 분지 한가운데 봉의산(302m)이 터를 잡았고, 북한강과 소양강이 봉의산을 감싸고 돌아나간다. 도시는 두 강의 안쪽에서 봉의산 자락을 따라 환형으로 들어앉았다.


분지 도시 춘천에서 밖으로 나가는 길들은 높은 고개를 먼저 넘는다. 북쪽으로는 배후령, 동쪽으로는 느랏재, 남쪽으로는 원창고개를 넘는다. 세 고개 모두 직선으로는 오르지 못하고 커다란 S자 커브를 반복해야 정상에 이른다. 정상에서 뒤를 돌아보면, 산속 물의 도시 춘천의 성격이 한눈에 보인다. 고개를 넘지 않고 밖으로 통하는 길은 서쪽뿐이다. 배후령, 느랏재, 원창고개 쪽 계곡들에서 생겨난 물이 북한강과 소양강으로 모여들고, 두 강이 춘천에서 만나 북한강이 된다. 하나가 된 북한강은 서쪽 낮은 곳들을 찾아 흐른다. “경춘로”와 “북한강변로“는 큰 고개 없이 춘천을 빠져나와 북한강을 따라 서울에 연결된다.


“Finding Shangri-La”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변호사이자 모험가들인 Ted Vail과 Peter Klika가 쿤룬산맥 속 샹그릴라를 찾아가는 여정에 대한 기록이다. 이 영화를 감독한 Ted Vail은 2021년 The Adventurers’ Club of Los Angeles라는 모임에서 영화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밝혔다.


‘1차 대전과 경제대공황을 겪은 죽음과 고통의 시간인 1933년에 소설 Lost Horizon이 나왔다. 그 속에서 샹그릴라는 쿤룬산맥 서쪽 끝 험준한 산속의 녹색 계곡으로 묘사된다. 샹그릴라에서 사람들은 죽음과 고통에 시달리지 않는다. 사람과 자연이 조화 속에 살아간다. 그곳은 지구의 미래를 위한 영감과 지혜가 보관된 곳이기도 하다. Peter Klika가 1930년대에 발행된 National Geographic에서 샹그릴라의 실재 모델인 Kingdom of Muli에 대한 탐험 기사를 읽었다. 그 후 그곳을 함께 찾아 나섰다. 그게 이 영화다. 사람들은 고통 앞에서 샹그릴라를 통해 평화를 느낀다. Lost Horizon은 아직도 팔리고 있다.’ 구글링을 해보니 Shangri-La의 서치 결과는 5천2백만 개다. 가장 상위 결과물 중 하나인 Shangri-La Hotels and Resorts에 들어가 보니 테마가 Escape다.


오후 4시, 의암호 물가 그늘에서 종일 더위 속을 달린 몸을 쉰다. 그늘이 든 삼악산 바위 절벽에 짙푸른 소나무가 드문드문하다. 소나무 사이 바위턱에 하얀 의암산장이 선명하다. 산발치에서 호수는 고요하다. 고요한 호수에 삼악산 그림자가 드리운다. 산 그림자 고요 속에는 정적처럼, 우드커누 몇 대가 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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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안진,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    < 춘천, 마음으로 찍은 풍경 >, 문학동네    금시아, “시인, 춘천을 읽다 :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 – 유안진“

** 섬들의 이름은 붕어섬, 중도, 고구마섬, 고슴도치섬이다.

*** 시내의 작은 산들은 봉의산(302m), 우두산(133m), 안마산(303m) 등이다.

**** “Finding Shangri-La”는 2007년 칸영화제에서 개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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