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다. 태백산맥 쪽 강원도 산들에는 비가 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두르지 않는다. 헬멧, 글러브, 셔츠, 바지, 윈드 재킷, 레인 재킷, 부츠를 하나하나 짚어 챙기면서 오늘 갈 곳을 생각해본다. ‘44번 국도를 타고 미산계곡으로 가자, 비가 심하면 홍천에서 좌회전해서 홍천강을 따라 돌아오거나, 우회전을 해서 횡성에서 6번 국도를 타고 돌아오자’. 10시에 지하 주차장에서 출발한다.
덕소, 팔당, 양수리, 양평을 지나는 내내 6번 국도에서 보는 한강의 물이 높다. 흙물이다. 강가 자전거 도로는 아직 물에 잠겨있다. 양수리 용담대교를 지나 신원역 앞을 지날 때, 강물의 높이가 노면의 높이와 다르지 않다. 끝났나 싶던 장마가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날이 흐리다. 길이 흐릿하고, 길가 풍경도 흐릿하다. 밖으로 감각을 열어두려고 애를 쓰는데도, 길과 풍경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감각이 닫히고, 생각이 안으로 향한다. 저절로 떠올라 아까부터 따라오던 노래를 그냥 놔둔다.
‘A mother’s son was born today. It wasn’t easy, but she found a way. We got no power baby, we got no glory. But there’s still room in this old world for one more story’.
홍천을 지난다. 날이 갠다. 미산계곡으로 가기로 한다. 동홍천 IC를 지나자 지대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곧 철정터널이다. 배가 고프지 않지만, 점심을 먹어야 한다. 갑둔리, 상남, 미산계곡 쪽으로 가려면, 철정터널 지나 화양강휴게소나 팜파스휴게소 아니면 혼자 밥을 먹어도 좋을 만한 곳을 찾기 어렵다. 팜파스로 가기로 한다. 가본 지 꽤 오래다.
쇠락이 빨라지고 있다. 팜파스 느낌이 없다. 1990년대 중반 44번 국도에서 팜파스를 발견했을 때 놀랍고 기뻤다. 철정터널이 생기기 전, 팜파스는 터널 자리의 고개에서 내려와 직진으로 잠시 달리다가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도로 가 화양강* 둔덕에 조용히 들어앉아 있었다. 도드라지지 않았고, 달려들지도 않았다. 그냥 가만히 거기 있었다.
휴게소에 들어서면 주차장과 휴게소 건물 사이에 흰색 시멘트 블록 기둥들이 열 지어 서 있었다. 휴게소 낮은 단층 지붕을 흰색 시멘트 블록과 굵고 각진 목재 빔이 받치고 있었다. 오른쪽 마당에는 높고 사선으로 기울어진 기둥에 그네가 애수 같이, 노스탤지어 같이 매달려 있었다. 안에 들어가면 흰색 시멘트 블록 벽에 든든하게 각진 목재 빔이 기둥과 천장으로 드러나 있었다. 편안하고, 단순하고, 평범하고, 거칠었다. 조금 잘 지은 헛간 같기도 하고 창고 같기도 했는데, 그런 모습으로 조용한 존재감과 품격을 발했었다. 팜파스가 건축상을 받았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휴게소 같지 않았었다. 휴게소 사인도 도로변 흰색 시멘트 기둥에 녹색으로 작게 ‘팜파스’가 전부였다**. 오전에 해를 안고 동해로 달릴 때, 이른 저녁에 동해에서 서울로 달릴 때, 작은 ‘팜파스’는 강렬하고 달콤했다. 끝없는 아르헨티나 팜파스를 달리다가 홀연히 만나는 롯지나 코티지의 애수가 저럴까 싶었다.
달려들지 않으려면, 내지르지 않으려면, 악다구니를 쓰지 않으려면, 그러면서 존재와 품격과 매력을 가지려면 자기 인식과 확신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 존재, 품격, 매력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체성과 원칙을 실행해가는 매일의 규율과 노고가 따라야 한다. 팜파스는 오랫동안 그래 왔다. 삼십 년 가까이 그곳은 팜파스휴게소가 아니라 ‘팜파스’였다.
시간이 흘렀다. 팜파스도 이제 기진하는 듯하다. 자기 인식과 정체성에 대한 확신, 매일을 위한 규율과 수고가 느슨해진 듯하다. 도로변에 커다란 노란색 입간판을 세우고, 큰 글씨로 ‘팜파스휴게소’라고 인쇄를 했다. 그러고도 불안해서 '팜파스휴게소’ 밑에 더 큰 글씨로 ‘휴게소’라고 덧붙였다. 휴게소 내부는 침침하고, 주차장과 침목 데크의 갈라진 틈마다 풀이 자라고 있다. 휴게소들과 다를 게 없는 휴게소가 되었다. 손님이나 매출은 인근의 화양강휴게소에 크게 뒤질 게 틀림없어 보인다. 휴게소 건물 출입구 안쪽에 건축상 트로피를, 바깥쪽에 건축상 상패를 놔뒀다. 출입구에 트로피와 상패를 놓은 뜻이 있겠지만, 눈여겨보는 사람이 없다. 침침한 휴게소에서 라면을 먹고 일어선다.
팜파스의 기반과 뼈대는 아직 살아 있다. 원래의 건축 중 헐린 것이 없고, 새로 들어선 것도 없다. 원래의 땅 위에, 원래의 것들이, 원래의 자리에 있다. 낡아지고 덧대졌어도 근본과 골간이 그대로다. 눈 밝고 돈 많은 사람이 ‘팜파스’를 살리는 상상을 해본다. 취향이 깊고, 좋은 것을 알아보고 애호하는 사람들이 다시 찾아 조용히 머물다 가는 모습을 그려본다.
다물교차로에서 446번 지방도로 접어든다. 여기서부터 구룡령 밑 샘물휴게소까지 60여 km가 높은 산, 깊은 계곡, 맑은 물, 물가에 드문 드문 돋은 둔덕에 깃든 집들이 이어지는 피안의 땅이다. 거대한 자연이다.
44번 국도 다물교차로에서 우회전한다. 눈앞에 높은 고개가 들어온다. 고개를 타고 오른다. 정상에서 내려가며 눈을 드니 좁고 아늑한 분지다. 막 개인 하늘 밑 오목한 땅에 한 여름의 정적이 가득하다. 차안과 피안이 고개 하나로 절연된다.
절연된 이 땅의 이름은 어론리, 갑둔리, 김부리다. 망태봉, 매봉산, 대암산, 가득봉, 가마봉의 높은 산들에 둘러 쌓인 거대한 분지 안에 낮은 산들, 높은 고개, 낮은 고개, 작은 분지, 개활지, 개천들이 들어 있다. 다물교차로에서 상남까지 27km의 446번 지방도가 이 땅을 지나는 동안 인가, 편의점, 음식점은 어디에도 없다. 사람의 흔적과 기척이 없다. 이곳은 2002년부터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의 야외 훈련장이다.
다물교차로에서 10km 정도 지난 지점에서 다시 큰 고개 하나를 오른다. 양쪽 산들이 바짝 조여든 좁은 정상에서 길을 따라 내려간다. 고도가 낮아지고, 시야가 넓어진다. 거의 다 내려와 부드러운 좌회전 코너를 도니 눈앞에 넓은 개활지가 나타난다. 시동을 끈다. 아득한 거리에서 높은 산의 부드러운 능선들이 개활지를 감싸고 있다. 낮은 지대에는 물이 흐르고, 물 가에 키 작은 버드나무들이 진녹색 이글루 모양으로 군락을 이루며 퍼져간다. 가까운 곳의 낮은 산들에는 소나무, 낙엽송, 참나무가 가득하다. 지금은 푸름과 초록의 천지다. 늦가을에는 노랑과 빨강이 된다. 까마득하게 깊은 정적과 고요뿐이다. 여기가 갑둔리 비밀의 정원이다. 비밀의 정원 풍경과 깊고 거대한 고요는 상남까지 20여 km를 더 이어진다. 이 분지 모두가 비밀의 정원이다.
상남면 소재지를 지나 446번 지방도 내린천로를 타고 미산계곡 초입에 들어선다. 장대한 분지가 끝나고, 내린천을 따라 상류로 이어지는 협곡이 원당삼거리까지 30여 km 이어진다.
5분을 달려서 합수모래유원지를 지난다. 미산계곡이 시작된다. 길 오른쪽 차선 끝으로 바위 산들이 하늘로부터 곧장 떨어져 내리며 이어진다. 길 왼쪽 바로 밑으로는 내린천이 바위 계곡에 부서지며 힘찬 소리로 흘러간다. 건너편에는 방태산 남쪽 산자락이 가파르게 미끄러져 내려와 내린천과 만난다. 이따금 넓은 모래톱에 곧게 자라는 소나무가 빽빽하다. 지난 6월 이 길을 지날 때 때죽나무 흰꽃이 아스팔트 위에 수북이 떨어져 내렸었다. 산기슭 함박나무 가지에도 술 붉은 하얀 꽃이 달렸었다. 지금은 모두 지고 계곡에는 짙푸른 초목과 거침없는 내린천이 한창이다.
살둔에 닿는다. 방태산 남쪽 산자락 끝단을 따라 도는 내린천 삼둔 중 가장 아래 둔이다. 뾰족한 봉우리들에 둘러 쌓이고, 봉우리들 사이를 흘러 내려온 개천들이 합수하며 만든 터다. 터는 넓고 평평하고 아늑하다. 환란을 능히 피할 만한 길지로 알려진 곳이다. 집들이 많다. 폐교가 되었지만 학교도 보인다. 학교 터에서는 지금 캠퍼들이 즐겁다. 새로 짓고 있는 집들도 보인다. 편의점에서 아이 둘이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있다.
상남에서 살둔까지 20km 길가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드문드문 집이 있고, 음식점이 있고, 펜션이 있다. 새로 터를 닦고 공사 중인 곳들도 있다. 그렇지만 미산계곡의 생활은 아직 흉하지 않다. 계곡에 기댄 가게의 이름들은 ‘뒤란’, ‘아웅감자’, ‘아침햇살’, ‘뜨락’, ‘아침이슬’, ‘바람부리’, ‘부린촌’, ‘물빛정원’, ‘호랑소’, ‘꽃산달’, ‘살둔’이다.
살둔 뒤 높은 S자 고개를 헤어핀 턴을 반복하며 오른다. 고개 정상부터 원당삼거리까지 7km 계곡에는 사람의 자취가 없다. 고개를 내려서자, 더욱 좁고 깊어진 계곡이 시작된다. 좁아진 내린천의 흐름도 빨라진다. 길은 바위 절벽에 붙은 잔도처럼 내린천 위로 지나간다. 산과 물과 하늘의 밀도가 몸을 압도한다. 무인지경을 무아지경으로 달린다.
원당삼거리에서 일순간 협곡이 물러나며 시야가 터진다. 월둔이다. 물가에 자리한 넓은 터 주변에 완만한 경사의 산비탈들이 둘러서 있어 넓은 수프 보울 모양이다. 산비탈 밭에 배추와 양배추가 푸르다. 들뜨고 긴장했던 몸과 감각이 편안하게 풀어진다.
삼거리에서 좌회전해서 56번 국도 구룡령로를 탄다. 구룡령 밑 샘골휴게소까지 9km의 산간 국도를 시원하게 달린다. 길가에는 발원지에 가까워 새 물이 흐르는 내린천이다. 오랜 장마 끝인데도 물이 옅은 옥색이다. 개천을 따라 곧고 건실한 소나무들이 숲을 이룬 작은 동네를 지난다. 소나무 사이사이에 집, 펜션, 산장이 자리 잡았다. 달둔이다.
산이 깊어진다. 산그늘이 길에 드리운다. 그 길을 가벼워진 몸으로 노면을 스치듯 달린다. 샘골휴게소에서 시동을 끈다. 왼쪽으로는 1,446m 방태산, 오른쪽으로는 1,565m 오대산, 바로 앞에는 1,013m 구룡령이다. 휴게소는 까마득한 봉우리들 밑에 점처럼 들어앉았다. 휴게소 앞 나무 의자에 나도 한 점으로 앉는다. 사방은 먹먹한 정적이다.
* 홍천강과 화양강은 같은 강이다. 두 이름은 오랫동안 혼용되어 왔다. 홍천과 그 상류 지역에서는 화양강으로, 하류 지역에서는 홍천강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홍천 지역 초중고 교가 대부분에는 화양강으로 들어 있다.(강원도민일보, 2002. 11. 4.)
** 이것은 기억의 왜곡일 수도 있다. 사실이었는지 확인하려고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았지만, 기억을 증명할 만한 증거들을 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