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낄 수는 있는데, 정의하기 어려운 말들이 있다. 이른 새벽의 호수, 안개에 싸인 미루나무숲, 해저무는 강가의 억새밭 같은 말들이다. 그런 말들은 하나의 사실을 분명하게 설명하는 게 아니라, 세상사의 사정들을 겹겹이 전한다.
'슬프다'는 말이 그렇다. “원통한 일을 겪거나 불쌍한 일을 보고 마음이 아프고 괴롭다.” 사전에 나오는 서술이다. ‘슬프다’의 상태를 묘사하지만, 슬픔을 느끼는 순간의 미세한 떨림과 두터운 진실을 전하지는 못한다. ‘슬프다’의 유의어로는 ‘구슬프다’, '눈물겹다', ‘비통하다’가 있다. ‘구슬프다’는 너무 처량하고 무겁다. '비통하다'는 좀 극단적이고 예리하다. 셋 중에는 ‘눈물겹다’가 '슬프다'에 가깝다. ‘눈물겹다’는 눈물이 흐른 뒤에는 쓰지 않는다.
‘슬프다’는 한없는 사연과 정한을 함축한다. 함축된 정한을 정도에 따라 지칭할 때는 ‘상심’, '애수', '비애', ‘애통’, ‘원통’, '비탄' 같은 말들로 대체할 수 있다. 내포된 사연을 풀어낼 땐 '애틋하다, 가슴 아프다, 괴롭다, 서럽다, 애석하다, 가엽다, 가련하다, 불쌍하다, 애절하다, 애처롭다, 애닯다'고 말할 수도 있다.
정의하긴 어렵지만, 슬픔은 분명히 체감된다. 슬프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목이 메고, 눈물이 돈다. 몸에 힘이 빠지고, 깊은 곳으로 침잠되는 듯한 상태가 된다. 낮은 전기가 흐르듯 저릿하거나, 가는 실에 에이듯 예리하게 아프다. 슬픔은 머리보다 몸으로 먼저 느낀다.
슬퍼지는 순간은 다양하다. 가진 게 없다고 느낄 때, 가졌던 것을 잃었다고 느낄 때, 기대했던 것을 놓쳤다고 느낄 때, 슬퍼진다. 소중한 사람과의 미묘한 어긋남이 감지될 때, 주변 사람들의 은근한 냉랭함을 알아차릴 때, 사랑하는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걸 깨달을 때, 마음이 아파온다. 이 모든 부재의 순간들, 상실의 순간들에 슬퍼진다. 슬픔은 부재와 상실에 대한 감각과 인식이다.
슬픔 중에서 가장 깊은 슬픔은 나의 부재와 상실을 대면하는 일이다. 내 안의 옹색한 내 처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 보잘것없고 변변찮은 나를 쓸쓸하게 마주 보는 일, 나의 쓸모와 가치를 허탈하게 가늠해 보는 일의 슬픔은 무심하게도 깊다.
슬픔이 꼭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슬픔은 쓰라리면서 부드럽다. 괴로우면서 편안하다. 쓰면서 달콤하다. 시리면서 따듯하다. 외로우면서 포용한다. 허전하면서 충만하다. 부정이면서 긍정이고, 슬픔이자 사랑이다. 슬픔이 나쁜 게 아니라는 건 분노, 경멸, 환멸, 증오 같은 감정들과 비교해 보면 분명해진다.
슬픔은 떨치는 것도 방법이지만, 삭이는 것도 방법이다. 창대한 바다를 보며 단숨에 괴로움을 털어내는 건 기개 넘치는 극복의 길이다. 아늑한 산중에 들어 종일토록 아픔을 품어내는 건 사려 깊은 다독임의 길이다. 슬픔이 삶의 불가피한 측면이라고 믿는다면, 슬픔을 다스리는 데는 안으로부터의 성찰이 필요하다고 믿는다면, 바다보다는 산중의 고독과 위안을 택하는 게 옳다.
태백고원은 '태백산맥 중부의 동쪽 백두대간 능선과 서쪽 백암산-태기산-치악산을 남북으로 잇는 능선으로 둘러싸인 고원으로서 준평원 고위평탄면에 구릉과 완사면이 계속되는 지대'다. 지도상으로는 서울양양고속도로의 내촌 IC부터 인제 IC 구간과 42번 국도의 문재터널부터 백봉령 구간을 테두리 지운 지대에 해당한다. 이 태백고원의 중간을 6번 국도와 영동고속도로가 가로지른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태백고원을 달릴 때, 마음이 가장 평화로운 곳은 횡성 태기산과 평창 오대산 사이의 거대한 고원분지다. 이 분지는 해발 980 미터의 태기산 양구두미재부터 해발 960 미터의 오대산 진고개까지 6번 국도를 따라 65 킬로미터에 걸쳐 있다. 분지 안에서는 만만한 산봉우리, 온순한 구릉과 고개, 완만한 비탈밭과 평평한 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봉우리, 구릉, 고개, 산비탈 사이의 낮은 곳으로는 맑은 개천들이 흐른다. 개천과 산비탈 사이 아늑한 터마다에는 마을들이 들어앉았다. 태기산에서 발원해서 서강으로 합류하는 주천강 가에는 둔내가 있다. 둔내는 해발 500 미터 평원에 자리한 마을이고, 병영과 관청에 필요한 곡식을 대던 둔전과 둔창이 있던 곳이다. 흥정산에서 발원해서 서강으로 합수하는 흥정천 옆에는 봉평이 있다. 봉평은 해발 550 미터의 평평한 땅이고, 쑥이 많이 나는 들이라는 뜻이다. 계방산에서 발원해서 서강이 되는 속사천 옆에는 장평과 용평이 있다. 장평과 용평의 해발고도는 봉평과 같고, 봉평 장평 용평의 평은 모두 ‘들평’ 자다. 오대산에서 발원해서 동강으로 합쳐지는 오대천 상류에는 해발 700미터의 진부와 간평이 있다. 진부는 보배롭고 풍요로운 땅이고, 간평은 산들 사이의 넓은 들이다.
물길들을 따라가는 6번 국도를 급할 것 없이 달리자면, '여기는 다른 세상이구나' 싶은 느낌이 든다. 6번 국도를 통해 태백고원에 들어서는 해발 500 미터의 황재를 지그재그로 타고 오르는 동안에는, 이제 아래 세상에서 저 고개 너머 어딘가 피안의 세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걸 몸으로 느낀다. 봉평부터 장평까지 흥정천을 따라 달릴 때는, 이런 높은 산중에 이렇게 곱고 흐뭇한 대지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오대천을 따라 진부에서부터 대관령 발치의 간평에 이르는 길에서는 이 땅의 맑음, 밝음, 아름다움, 너름에 몸과 마음이 가볍고 투명해진다.
태백고원은 지리적으로 먼 곳이고, 지형적으로는 고립된 땅이다. 그 안의 둔내, 봉평, 장평, 용평, 진부, 간평은 작고 외롭고 쓸쓸한 장소들이다. 슬플 때, 내가 작고 외롭고 쓸쓸하게 느껴질 때, 이 고원의 고적한 길을 낮은 RPM으로 잔잔히 달리면 아늑하고 느긋해진다. 먹먹함과 목메임이 풀어진다. 에이고 저리는 가슴이 편안해진다. 무너져 내렸던 몸에도 생기가 돈다. 어둡고 침침했던 시야에는 밝은 빛이 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달리는 동안, 내 안의 그득한 슬픔에 대해서도 관대해진다.
봉평에는 미가연과 현대막국수라는 막국수집들이 있다. 미가연은 자아가 선명한 집이다. ‘미가연’이 곧 막국수라는 자부심이 있으니 가게 이름에는 굳이 ‘막국수’를 넣지 않았다. 간판 디자인은 노골적이거나 야단스럽지 않고, 크기는 부풀리거나 들이대지 않는 정도로 균형을 잡았다. 가게의 외관은 소박한 품격을 담았고, 내부는 단정하게 관리되어 있다. 음식에는 전통과 보편을 따르는 대신 원칙과 아이디어를 넣었다. 대표 메뉴는 메밀싹막국수인데, 막국수 맛의 전형대로 얼근 달근하지 않고 순하고 고소하고 쌉쌀한 비빔막국수다. 맛이 정갈하고 고급스럽다. 식초는 다시마식초다. 서비스는 유난스럽지 않을 정도의 정중함과 격식을 갖췄다. 주차장은 널찍하고 언제나 여유가 있다. 미가연은 얕고 즉각적인 자극을 찾는 입맛의 트렌드를 추종하는 가게가 아니다. 메일의 본질에 대한 전문성, 전문성 실행의 범위와 방향을 정하는 개념과 원칙, 개념과 원칙을 음식으로 구체화하는 아이디어가 하나의 체계를 이룬 집이다.
현대막국수는 봉평 사람들의 생활과 삶에서 저절로 생겨난 집처럼 보인다. 현대막국수는 어디에서도 에고를 드러내지 않는다. 체면이나 예의를 차리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막국수집이 그러듯 가게 이름에는 볼 것도 없이 '막국수'를 넣었고, 간판은 지붕 전체를 가릴 만큼 크다. 가게의 외관은 흔한 시골집이고, 내부는 온 벽이 사인지와 메모와 낙서로 소란스럽다. 음식은 지방의 전통과 보편에 충실하다. 대표 메뉴는 물막국수인데, 슴슴한 육수에 만 메밀면에 양념장을 얹고 메밀싹, 김가루, 오이채, 참깨를 훌훌 뿌린 새콤 시원한 막국수다. 오이냉국에 메밀국수를 말아먹는 듯한, 시골스럽고 서민적인 맛이다. 구태여 ‘나만의’를 내세우는 작위나, 음식에 철학이나 원칙을 담아내려는 기획이란 어디에도 없는 집이다. 부리나케 음식을 날라다 줄 뿐 서비스랄 것도 없다. 현대막국수는 일반적이고 상식적이다. 봉평 사람들의 별다를 것 없는 삶을 그저 더 열심히 살뿐이고, '우리는 이렇게 산다'는 걸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고, 그것으로 누구나의 공감을 얻는다. 현대막국수는 생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복잡다단과 좌충우돌이 민주적 질서를 이루는 집이다.
봉평 쪽으로 라이딩을 할 때, 더위가 느껴지는 오뉴월부터 팔구월까지는 현대막국수에서 점심을 먹는다. 한기가 드는 시월부터 이듬해 사월까지는 미가연에서 먹는다. 미가연 비빔국수를 먹고 나서 현대 물국수로 입가심을 하고 싶은데, 한 때에 두 끼를 먹을 수는 없다. 라이더들 중에는 현대파와 미가연파, 두 분파가 있다고도 한다. 봉평에서 미가연과 현대막국수 사이의 거리는 550 미터고, 두 집 모두 사철 성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태백고원 아래 세상의 슬픔은 대개 미가연과 현대막국수 사이를 서성거리는 그림자 때문이다. 어느 분파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은 슬픔의 숙명을 피할 수 없다.
태백고원에서 하루를 보낸 귀로에는 양구두미재를 넘는다. 거북이가 대가리를 꼿꼿이 쳐든 듯 경사가 급한 구두미에 있는, 와인딩 고개 두 개가 연달아 이어지는 높고 긴 재다. 해발 980 미터 고갯마루에 서면, 저 멀리 시야의 끝에서 장쾌한 치악산맥 줄기들이 1,288 미터 비로봉을 가운데 둔 채 양편으로 무리 지어 줄달음쳐 간다. 태기산과 치악산 사이에는 해발 500 미터의 둔내와 해발 100 미터의 횡성 원주, 중중첩첩 주마등으로 이어지는 산봉우리들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양구두미재에서 보는 강산과 세상은 웅대한 스케일과 리드미컬한 율동으로 가득하다.
해가 저물면, 아득한 치악산 능선에 노을이 든다. 검은 산등성이에서 주홍빛 잔광이 배어 나오고, 주홍의 윤곽 위 허공은 양홍 자주 연보라의 계조로 물든다. 그리고는 박분홍으로 색이 바랬던 노을이 푸르스름하고 희부윰한 연무가 되어 어두운 하늘로 소멸한다. 일몰의 하늘 아래 강산은 어둠에 물들고, 세상은 디테일을 버리고 이차원으로 단순화된다.
해가 지고, 우주가 깊어진다. 영원같은 정적 속에 홀로 있다. 수런거리던 사연들도, 정한도, 나도 노을에 실려간다. 황재를 내려와 어두운 6번 국도를 달린다. ‘강물이 흐르고,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지는 가을 석양에 홀로 보았던 연지빛 노을.’ 편안하고 넉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