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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야 Sep 17. 2020

나만 아는 기쁨일지라도

예쁜 양말은 우릴 웃게 해


돈을 참 잘 못 쓰는 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위한 돈을 잘 못 쓰는 편. 이런 습성은 아마도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닐까 싶은데,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에 크게 스트레스는 받지 않으려 한다.


그러다 아주 가끔 나를 위해 돈을 쓰기도 하는데, 예컨대 머리핀, 양말 이런 것들이다. 이런 것도 큰맘 먹고 산다는 게 우습지만, 나는 좀 그렇다.


예쁜 양말 신고 올 걸...


2천 원, 3천 원 되는 커피는 쉽게 잘 사먹어도, 양말에 들이는 돈은 왜 이렇게 아까워하게 되는지. 늘어날 대로 늘어난 양말을 신거나, 구멍이 뚫린 양말의 좌우를 바꾸어 신거나 하다 보니, 집에 낡은 양말이 한가득이다.


부모님이 살던 방식대로 기워 신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 예상치 못하게 신발을 벗는 자리에 가게 되면 당황할 때가 있다. 오늘 예쁜 양말 신고 올 걸...


가끔 옷도 굉장히 멋지게 입는데 양말까지 센스 있게 잘 신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런 일상의 디테일까지 신경쓰는 사람들을 보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죄다 각양각색으로 대충 입고, 신고 나온 나와 비교할 때가 있다. 내가 조금만 더 나를 위해 무언가를 쓴다면... 저런 세련되고 세심한 인상을 줄 수 있을 텐데.



양말 하나로 기분 좋게 시작하는 아침


며칠 전 들렀던 옷 가게에서 발견한 예쁜 양말을 하나 샀다. 연한 회색 바탕에 온통 노란색 스마일이 가득한 양말. 보자마자 기분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아침에 무얼 신을까 고민하다가 마음에 드는 양말을 집어들었을 때의 기쁨. '기쁨'이라기엔 소소하지만, 나는 이런 것에도 만족하는 아주 가성비 높은 유형의 인간이다.


운동화를 신고 종일 열심히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퇴근하던 밤. 문득, 오늘 한 번도 신발을 벗어 양말을 보일 기회(?)가 없었네 싶었다. 이 양말은 오늘 나 혼자만 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뭐 나만 보면 어떤가 하는 생각이 이내 든다. 나만 아는 기쁨이어도 좋지. 아래 양말 사진은 그러고 나서 집에 들어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찍은 사진이다.


오늘 하루 수고한 내 발, 그리고 양말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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