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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해여자 Oct 15. 2019

읽어줘

읽어주면 나는 정말 기쁠 것 같아

읽어줘 아무렇지 않게 쓴 글을 아무렇지  않은 듯 네게 내어 밀며 말했어 읽어줘 네가 내 글을 읽어주면 나는 정말 기쁠 것 같아 긴 문장을 줄이고 줄여서 간지러운 목소리로 말했지 읽어줘 너무 짧은 문장이어서 하다가 말 것도 없고 얼버무릴 틈도 없이 혀끝에서 맴돌지도 못하고 나와버렸어 읽어줄래도 아닌 '읽어줘'라니 너무 도발적이지 않니 너의 어디에까지 가서 박혔을까 그 밤 별 내 가슴에 와 박히듯 그렇게 콕 들어갔을까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읽어줘가 네 귓바퀴에서 안아줘로 바뀌고 심장으로 들어갈 때는 만져줘로 바뀌고 처음의 소리가 헷갈릴 때쯤 글을 다 읽고 나를 다 읽은 듯한 기분이 들면 나를 안아줘 맞붙은 살결에 온기가 전해져 우리가 너와 나로 구분이 되지 않으면 마음껏 만져줘 단어와 빈칸과 쉼표와 마침표를 읽어줘 읽어줘 나를 나를 너 마음대로 해석해도 좋다는 뜻이야 내가 내놓은 글은 나를 떠나 너를 향한 탈주를. 한참을 찾아 헤매었지 나의 것이 너의 것이 되고 너의 안에 다녀오면 너는 나의 안에 올까 그러면 우리는 음음 무엇이 되어 있을까 제발 부디 읽어줘 나를 읽어줘 입술 쫑긋 내밀고 단어가 문장이 마침표가 너를 기다려 너는 나에게 쉼표를 주고 나는 너에게 나는 너에게 뭘까 네가 읽어줘 안아줘 만져줘 보다 더 떨렸다 내가 네게 읽어줘 했을 때 나는 나를 너에게 맡겼어 네 마음대로 나를 나를 좀 어떻게 해달라는 나는 너에게 나를 맡겼어 문장을 네게 맡겼을 때 처음에는 말없이 안기고 그다음에는 읽어줘 했으니 그다음에는 또 어떻게 나는 너에게 음음 너는 나를 어떻게할까 읽어줘 단추를 풀고 읽어줘 거칠게 읽어줘 입을 벌리고 온통 읽어줘 부드럽게 여기도 읽어줘 나를 읽어줘 이 밤이 다하도록 읽고 읽다가 우리 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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