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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품에 안기고 싶었던 한 남자가 결국

박원순 님의 영면에 부쳐

by Om asatoma


옛적 농사짓는 시골에서 2남 5녀 칠 남매의 여섯째로 태어난 아들이라면

그 아들이 조금 영특하기도 했다면

가족 내에서 아들이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누리기도 했겠지만

그래서 곱절로 쌓여가는 부담도 있었을 것이다


열예닐곱 살 객지 생활을 하며 이나라 최고 학부에 들어갔을 때의 가족들의 기쁨과 기대는 어떠하였을 것이며

유신 반대 시위로 제적당하였을 때의 실망은 얼마나 컸

어쩌면 이때부터 가족들은 그의 지향을 받아들였을까


사법 시험에 합격하고도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으며

새 시대에 대한 꿈을 현실로 이루어나간 그가

결국 이루고 싶은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나도

그의 행정력과 추진하는 일들에 대한 진심과 성의를 알 정도이

3선으로 서울시장직을 이어올 정도면

그동안 세상이 알아온 그의 열정과 열심은

설사 어떠한 잘못이 있다 하여도 부정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인정을 받아오는 동안

나 같은 필부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의

온갖 인신공격들을 받아오면서

정치 구도 속에서 넘을 수 없는 벽들을 만나면서

모략과 정쟁에 휩싸여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또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러지지 않았던 데는 내가 알지 못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사명감이나 책임감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을

어쩌면 여자 형제들에 대한 미안함이나 고마움일 수도 있고

함께 했던 그러나 먼저 간 동지들에 대한 의리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의 삶 속에서 아주 작고 사소한 한 부분이

마음속에 꺼지지 않는 불씨가 되어

주저앉으려는 그를 붙잡아 주었을 수도 있다


밝혀진 것은 없다

사회적 약자들의 강자에 대한 분노를

남성 중심적 구조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를

억압받아온 이들의 분노를

하나의 구덩이에 모두 모으려는 듯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조차 마음껏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그러나 밝혀진 것은 없다


자필 유서에서조차 한마디의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어쩌면 너무나 부질없음을 느낀 것이 아닐까

믿고 싶은 대로 믿어버릴 것이 분명한 사회를 보아왔으니

내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러하였노라 말하는 것조차 구차하게 느껴진 것이 아닐까


그저 갈 때가 되어 스스로 떠난 것은 아닌지

에너지를 모두 써버려서 더 이상은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행위를 하는 것에는 쓸 힘이 없었던 것은 아닌지

자신이 생각해온 것과는 너무나 다른 해석에

숨이 턱 막혀버린 것은 아닌지


외롭고 고립된 채 수장의 역할을 하던 한 남자가

무수히 많은 쓸쓸한 밤을 보내며 안길 품을 찾다가

결국은 죽어 엄마 품으로 달려가 안기게 되었다


어린아이만 엄마 품을 찾는 것은 아니다

넉넉하게 따뜻하게 언제라도 어떠한 상황 속에서라도

토닥토닥 안아줄 누구의 품을 평생 찾게 되는데

친절한 원순씨는 결국 엄마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부모님의 산소에 뿌려달라는 것은

부모님이라면 두 팔 벌려 그래 수고했다 이제 여기서 쉬라고

고생했다고 자신을 안아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편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들의 선택 책망하지 않고

어서오라고, 고생많았다고,

내 아들 참 자랑스럽다고,

덥혀놓은 아랫목 내어주시겠지


얼마나 돌아가고 싶었을까, 창녕.

부모님과 칠 남매가 함께 했던 곳,

동무들이 아직도 마음으로 반겨주는 곳,

큰 도시의 시장직을 수행하는 동안도 마음은 늘 그곳에 있었으리


세상 구경 실컷 하고 오신 그가,

편안하게 쉬시길 바란다.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모든 것이 당신의 최선이었을 것이라고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그의 생에 대한 경의와

그의 사에 대한 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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