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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약한 성인지 감수성을 고백함

by Om asatoma

사실,

유력 대선주자로 언급되었던 분들이 비서들과의 스캔들로 인해 곤란을 겪는 일을 보면서 내가 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지 못함을 느낀다.


고통을 호소하는 분들의 아픔이 가장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아무리 보아도 그것이 성추행의 범위에 드는지, 이성 간의 스캔들인지에 대하여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을 보면, 내가 새 시대에 맞는 성교육을 새로이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밀려든다.


(결코 피해 당사자들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거나 고소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 둘 사이에 일어난 일을 전혀 알지 못한다. 판단할 근거가 없고, 설사 근거가 있다 하더라도 객관적인 사실들만으로는 두 개인 간의 관계에 대해서 내가 무어라 할 수 없다.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일어난 일은, 당사자들만이 알 것이다. 아마도 다른 색깔로 기억하겠지만.)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상대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서, 문제가 더욱 불거지는 것이라면 너무 가혹한 잣대인듯한데, 특히나 상대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을만한 위치에 있으면 많은 언론과 행동하는 여성단체들의 지지를 업고 나서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평범한 직장에서 평범한 누군가들에게 일어난 일이라면 관련된 일을 끄집어내기도, 처리되는 과정도 영 깔끔하지가 않을 것이다.


나는 직장생활 15년 차이다. 특별한 직급체계는 없지만 아무래도 신입사원들보다는 더 많은 사람을 알고 있을 것이며, 이 분야에서의 성과도 더 많을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이것도 업무상 위력이라면 위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관계가 되면 그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


남자 신입이 들어왔을 때, 그의 적응을 돕기 위해서 분위기를 완화시킬 거라고 생각하며 건넨 몇 마디의 말들이 사무실의 분위기를 타고 묘하게 색깔을 입게 되었고, 그도 나도 사무실의 사람들도 모두 그러한 분위기를 즐기는 것으로 생각해왔다. 지금까지는.


그런데 어쩌면 그 남자 신입이 불쾌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아찔해지면서 지금은 얼굴을 보고도 인사를 건네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이성의 관계이기 때문에 성추행으로도 얼마든지 변질될 수 있는 부분이다. 나는 선을 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기준에 달려있지 거기에 나의 의도는 반영될 틈이 없다. 나는 여성이기 때문에 나의 행동이 용납되는 범위가 되는가. 아니다.


만약 내가 직장 내 지위가 더 높아진다면, 이성의 후임들이나 사원들에게 어느 정도의 친밀감을 표현할 수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지위가 높아질수록 책임감은 막중해질 것이고 개인적인 인간관계들로부터는 고립되어갈 가능성이 있겠지. 멀리 있는 누군가보다는 자주 얼굴을 보거나 지척의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될 것이며, 만약 내게 비서라도 생기면, 그래서 나의 일정을 알고 나의 컨디션을 알기에 내 삶의 고됨을 잘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되는데, 그 젊은 남자 비서가 젊은이들 특유의 친근함으로 대해준다면(설사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일상적인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세대가 다른 나에게는 오해할만한 표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음악이나 미술이나 인문학의 영역에서 하나라도 공통된 관심사가 발견된다면, 나는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없다.


아래로 세 살 이상 차이가 나는 남자 직원들과는 말도 섞지 말자는 이상하고 괴상한 다짐을 하게 된다. 젊은 사람들의 기준과 나의 기준이 혹시라도 달라서 오해가 생길까 봐, 어느 정도가 상호 간에 오해 없이 받아들여지는 수준인지 도통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요즘의 사회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여성인 나도 이성의 동료를 대하는 자세에 대하여 이렇게 긴장될 만큼인데, 남성들이 느끼는 긴장감은 실로 어마할 것이다.


여성들이 여성의 벽을 굳건히 높이 세우고, 남성들이 남성들의 벽을 세우고, 서로가 경쟁하듯이 그렇게 자신들의 영역을 분명히 하게 되는 것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걸까, 그것이 과연 그들의 행복과 평안을 가져다줄까. 긴장도가 높은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서로를 고립시켜갈 뿐이다.


여성들이 살기 힘든 사회였던 것은 분명하다. 지금의 기준으로 볼 때, 불합리하고 모순된 구조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사회체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일 뿐 현재의 남성들이 만든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행동해준 용감한 여성분들 덕에 더 나아진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앞으로는 남성과 여성을 초월한 어느 그룹이 나타나 서로의 마음을 녹이고, 안아줄 수 있는 사회의 분위기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남성도 여성도 살기 힘들고 피곤한 이 사회에서 저의 없이 서로의 어깨를 내어줄 수 있는 넉넉한 사회가 되기를.


그러나 그전에, 직장 내 성교육을 열심히 받겠다. 어쨌든 지금의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하니. 그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내게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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