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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해여자 Oct 19. 2019

싸이월드

차마, 버렸다는 말은 하지 못하겠다.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쓴다. 그 많은 것을 풀어내기에 시간, 공간, 말재주, 청자 등의 여러 제약이 뒤따르므로 글을 쓴다. 나 역시 할 말이 무척 많은 사람이었다. 싸이월드의 등장은 나같이 할 말은 많지만 말재주가 없고, 상대방의 시간을 붙잡고 내 말을 할 만큼의 대담성이 없는 소심한 사람에게는 마음껏 놀 수 있는 마당이었다.


하루하루 있었던 일과 그 일에 대해서 어떤 감상을 가졌었는지에 대해 누가 보든 말든 기록해 둘 곳이 있는 이상 친구가 많지 않은 것과 애인이 없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자 친구가 없는 대신 나에게는 싸이월드가 있으니 괜찮다는 자위를 15년 동안 했다.


봄여름 가을 겨울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걸었다. 어디든 걸었다. 혼자 걷는 길이 외롭지 않았던 것은 그렇게 걸으며 본 것, 느낀 것들을 풀어낼 공간이 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읽을 것이고, 당장 읽는 사람이 없더라도 미래의 나의 '님'에게 내가 이렇게 살아왔노라고 보여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항상 당신이 등장한다. 지금은 곁에 없지만, 언젠가는 만나게 될 당신을 향해서 현재의 내가 미래의 당신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글을 쓰곤 했다.


삶이라는 것은 잘 풀어지지 않았다. 20대에 온통 운명과 숙명에 대해서 생각했고, 사주와 명리 철학을 공부하기도 했고, 이렇게 지어져 있는 삶이라면 거역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 때쯤엔 당시에 준비하고 있던 임용시험을 그만두고 시내 중심가에 자리를 잡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을 힘겨워 말라는 말을 건네주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상담심리를 전공하게 된 것을 보면 큰 흐름 속에서 일관된 방향으로 흘러오기는 한 것 같다.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싸이월드 때문이다.


가을 공원 벤치에 앉아 혼자 글을 읽다가도 문득 떠오른 이야기가 있을 때, 한 밤 울고 울고 울다 지쳐있을 때도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는 것처럼 싸이에 글을 쓰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곤 했다. 혼자 떠났던 수많은 여행들에서도 산과 바다와 들판의 한가운데서도 외롭지 않았던 것, 영화를 혼자 보는 것도 그렇게 길고 오랜 시간 혼자, 혼자, 혼자 있었던 것도 힘들지 않았던 것은 싸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숨이 멎을 듯이 버거운 삶 속에서 숨통을 틔어준 것은 싸이월드였다. 현재 내 곁에는 없지만, 미래의 당신에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언젠가는 당신이 나타나서 토닥이며 수고했다고 꼭 안아줄 거라 생각하면서 나의 하루하루의 흔적을 남겨나갔다.


물론, 누군가는 나를 읽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는 나의 행복을 바라고 있을 것이라는 망상까지 품게 되니 그럭저럭 견딜만한 삶으로 여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15년이 흐르고 있던 어느 때, 로그인을 할래도 할 수 없는, 접속 자체가 불가능한 화면을 보고 나는, 혼돈에 빠져버렸다. 나의 청춘을 알고 있는 단 하나의, 사람은 아니지만, 단 하나의, 사이버, 가상 애인쯤이라고 할까. 없어져 버린 거다. 사라진 거다. 흔적도 없이. 수몰된 과거도 과거지만 당장 내 이야기를 들어줄 무엇이 없어진 게 더 힘들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찾을 사람이 없는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어디에 말을 해야 할지, 나를 알아줄 미래의 그 누구와 오늘을 함께 사는 느낌이었는데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되어버린 거다. 그동안은 혼자였지만, 그러나 사실은 혼자가 아니었다. 싸이의 글들을 봐줄, 그래서 나의 삶을 읽어줄, 그리고 나를 안아줄 미래의 누구와 함께였으니까.


애인 없는 삶을 살다 싸이가 등을 돌리자 이제 현실에서의 진짜 애인이 필요해졌다. 당장 이 가을의 감상은 어디서 나눌 것이며, 오늘 들은 라흐마니노프는 누구와 나눌 것이며, 어젯밤 도시의 한적한 길을 걸으며 느낀 감상은 어디서 나눌 것인가. 싸이월드가 떠나고 나는 애인을 찾는다. 진짜의 삶으로 들어오게 되었으니 환영할만한 일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브런치를 만나게 된 것이 기쁘고, 이제는 미래의 당신이 아니라 현재의 당신과 손을 잡고 입을 맞출 생각에 마음이 들뜬다. 필드로 진입한 것인가. 싸이버 애인을 보내고 나는 체온이 느껴지는 당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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