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Om asatoma Jul 22. 2020
이보시게 우리가 이제사 만나 무얼 하겠소
어느 작가가 정성껏 지어놓은 집에서 만나
그 시간 그 공간을 거닐며
마음껏 호흡을 섞어봅세
당신 멈춘 곳에 나도 따라 멈추어
당신이 무슨 생각 했을까 무엇을 느꼈을까
마음껏 상상하도록 하겠소
아찔하게 쏟아붓던 아침의 폭우가
점심되기 전에 말끔하게 가시지 않았던가
어느 날에는 미친 듯이 보고 싶다가
또 어떤 때는 가득 안고 싶다가
그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멀끔한 얼굴로 만족스런 일상을 지내고 있지 않소
보고 싶다는 말에,
오늘처럼 비 많이 오는 날 만나자는 말에,
숨 멈추고 당신의 깊은 눈빛을 떠올리기는 했지만은
나는 그냥 당신이 요즘 읽는 책만 알려주면
함께 있는 듯이 문장을 쫓으며 당신을 더듬겠소
당신이 즐겨 쓰던 향수 뿌리고
한 장 한 장 읽어가다
갑자기 책장을 덮고 당신 향내 몸 깊숙이 받아들여 눈 감은 채 당신 음성 떠올리며 가는 신음 내는 일이 있더라도 나는
문장 위에서나 당신과 同寢하겠소
이제 거침도 없고 두려울 것도 없는 나이가 되어서
당신이 내 앞에 있으면
나는 당신을 곱게 돌려보낼 수가 없을 것 같으니
당신을 꼭 닮은 제목의 그 책, 내가 함께 읽을 테니
어느 때 만날까 생각도 말고
그 작가가 지어놓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나 실컷 만나봅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