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해여자 Jul 11. 2022

팔도 비빔면

우리가 만난 것은 지방의 국립대학이었습니다. 교육의 도시라는 이름이 붙어있기는 했지만, 도청소재지도 아니고, 특별할 것 없는 소도시였습니다.

Y는 서울 어느 대학의 자연과학대 출신이었습니다. 석사과정을 이곳에서 한다고 해서 의아했지만, 그녀의 전공이 특화된 곳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도 다른 학부 출신으로 일반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전공이 너무 좋았는데, 학부과정은 저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다른 학부 출신의 두 사람이 룸메이트가 되었습니다.

 Y는 저보다 나이가 한두 살이 어렸습니다. 과학자 같은 얼굴에 개구쟁이 같이 웃는 모습으로 저를 아줌마라고 불렀습니다. 대전 사람이면서 경상도 사투리를 배워서는 섞어 쓰는 것이 귀여웠습니다. 영어를 잘했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맥주를 좋아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눌 때 눈을 오래 응시했습니다. 아직도 이런 설렘이 남은 것을 보면 아마도 그 긴 눈 맞춤 때문일 것입니다.


당시의 저는 한 해에 한 번 있는 시험에서 낙방하여 다시 도전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였고, 국어사전에 등재된 단어로만 존재하던 실패나 좌절 같은 것이 어떤 것인 줄 알아갈 때였습니다. 아토피성 피부염이 생겨서 독한 피부과 약을 먹을 때였습니다. 약 때문에 침대에 누워있을 때가 많았고, 외부 활동은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오래된 기숙사 건물의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에쿠니 가오리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는 것이 유일한 오락일 시기였습니다.


아일랜드에서 유학 중이던 한 친구의 책상 위에 상실의 숲이 놓여 있는 사진을 보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읽던 날이었습니다. 내 책상에 놓인 하루키를 보고는  Y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날 기숙사 방에서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동이 때까지 하루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후로 우리는, 우리가 되었습니다.


자전거를 타지 못하던 나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었고, 기숙사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고 저녁시간에는 배드민턴을 쳤고, 영화를 함께 보았고, 깜깜한 그녀의 연구실에서 별을 보기 위해서 밤을 함께 새웠고, 기숙사에서 또래오래를 주문해 치킨을 먹으면서 함께 축구경기를 봤습니다. 자신보다 키가 훨씬 큰 나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는 캠퍼스를 달렸습니다. 나의 생일에는 팔랑거리는 나비모양 헤어핀을 선물해주었고, 그녀의 실험실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했습니다. 우리는 조금은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운 잠옷을 커플로 맞추어 입었습니다. 공용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기숙사 방으로 들어올 때의 조금 어색한 그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별스럽지 않은 일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모두, 온통, 전부, 처음 해보는 일 투성이었습니다. 누구와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친구들과 이런 일을 하면서 지내겠구나, 사람들은 이성친구와 이런 일들을 하면서 지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번쯤 한 것 같습니다. 사실은 그때의 기억이 아주 선명하지는 않아서 우리가.. 손을 잡은 적이 있나 물으면 대답을 하지 못할 것 같고, 머리카락을 쓰다듬거나 얼굴을 어루만진 적이 있는지, 하나의 침대에서 잠을 이룬 적이 있는지 물으면 대답을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실제 있었던 일인지 상상 속에서 있었던 일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같은 공간에서 생활을 하다가 눈이 마주친 채로 말이나 행동이 멈춘 채 그렇게 눈이 마주친 채로 있었던 순간들은 기억이 납니다. 아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이내 고개를 돌리거나, 하지 않아도 되었을 일을 했을 테지만 그렇게 잠시 잠시의 눈 맞춤의 순간은 아직도 숨을 멎게 합니다. 십칠 년 전의 일입니다.


그런 그녀와 기숙사에서 즐겨 먹었던 음식이 팔도 비빔면이었습니다. 컵라면에 담긴 팔도비빔면을 그녀가 좋아했습니다. 하루의 수업과, 밤공부를 마치고 샤워한 후에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노란색과 핑크색이 결코 조화를 이루지 못했던 유치한 잠옷을 입고 함께 팔도 비빔면 먹던 그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그 후로 학기가 바뀌고, 룸메이트가 바뀌었을 때 언젠가 그녀가 전화기 너머로 Moon River를 플루트로 연주해주었습니다.

 

오랜만에 마트에 갔다가 팔도 비빔면을 사보았습니다.

나무젓가락으로 컵 비빔면의 종이 뚜껑에 구멍을 퐁퐁 내던 그녀가 생각납니다.

스물서너 살 일 때의 우리와, 아무것도 어찌할 수 없었던 우리.



매거진의 이전글 격리 4일 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