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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해여자 Nov 30. 2023

시인들이 찾는 여자

시를 쓰고 싶었다

날카롭고 따뜻하고 시리고 달콤한

빛나는 어둠과 풍랑의 고요와 강요된 함구를

숨 막히듯 절정에 치닫게 하는 치명적인 노래를 하고 싶었다


자만과 오만과 독선은 생의 폭을 제한하였고

그래서 시 쓰는 일은 쉽게 포기하고

시인들이 찾는 여자가 되기로 했


저이의 음성으로 시가 노래되기를 바라는

저이의 몸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시어들에서는 어떤 향기가 날지 기대되는

서로 다른 역사를 가진 문자와 음성 합체되면 어떤 호흡으로 잉태되어 세상에 나올지가 궁금한 

시인들이 찾는 여자가 되기로 했다.


시를 써서 제물처럼 바치면

여왕의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한 번 읽다

영혼의 숨을 멎게 하는 시구 하나 만나게 되면

급히 실로 들어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몸을 꼬며

형체 없는 시인의 역사와 범벅이 되어 몸에 있은 모든 것들을 흘러내 보내며 거룩한 하루의 밤을 보내고 나서야 단상에 올라 이름 붙여지지 않는 사랑 아닌 사랑과 황홀과 그이와의 깊은 여행과 현실적이지 않은 합일과 자궁으로부터 죽음에까지 이르는 어느 순간을 음성으로 발화하는 여자가 되고 싶


오해와 곡해일지도 모르는 채 시어를 더듬거리고

숨표와 쉼표를 구분해 가며 시인의 마음을 가늠하고

어느 시인의 간택을 받으려

이름은 없으나 숨겨지지도 않을 음성을 흩날려본다


허공에 떠오는 꽃잎하나 손에 꼭 잡은 그이와 몸이든 영혼이든 역사든 무엇이든 섞어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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