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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해여자 Nov 30. 2023

何必_ 정현종, 고통의 축제

대전 출장으로

해뜨기 전 집을 나서며 집어든 책_ 고통의 축제


알면서 그랬다

사람이 온다는 걸 어마어마하게 받아들이기 전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섬을 발견하기 전의

혼돈과 노골이 그득한

감춘다고 감추었지만 뻔하게 드러나있는

젊고 어린 남자의 이야기라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더블 버튼의 모직 남색 바지 정장 위로

압축된 캐시미어 코트와 클래식한 머플러를 늘어뜨리고

금장 브로우라인 안경과

황금색으로 도색된 브레이슬릿에 블랙 다이얼을 가진 손목시계를 착용한

누가 봐도 공적 업무로 출장 가는 사람이

조용하지만 사람 많은 KTX 좌석에 앉아 보기에 재미있을 만한 책이라 여겼으나


그러나

나는 이미 그가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었는지 알아버렸고

그의 과거와 충분한 대화를 나누었으며

나의 젊음도 오래전에 가셨는지

그의 치기만 읽힐 뿐이니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

이별여행이 된 셈이다


대전에서 현암사 출판 오강남의 장자를 얻고 간다.......

(말 줄임표를 쓸 때는 마침표까지 총 일곱 개의 점을 찍어야 한다고 오늘 배웠다!)


그분의 전공이 장자였는데

여자를 넘어 세상을 아는 그분의 전공이 노장사상이었는데

하얀 밤을 새우고도 그분 앞에서는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압도하는 큰 산 같은 분이었는데


이 안에서 어떤 상상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두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미소 지을 뿐 어떤 언급도 않으시던

그래서 그분 눈길 닿는 곳이 알알이  발가벗겨지는 것 같았는데


마치 그런 눈으로 젊은 정현종 시인을 보는 것 같이

내가, 나이 들어버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도 누구를  눈빛으로 발가벗길 수 있다는

다행히,

그런 나이가 되었다는

그래서 나이 든 남자와 나이 든 여자는 위험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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