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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해여자 Dec 07. 2023

선배, 편히 쉬어요..

선배는 그런 사람이었다

눈꼬리가 살짝 처져 늘 웃는 눈이었고

눈빛이 유난히 투명했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었지만

존재감이 가볍지 않았고

얼굴 근육을 정직하게 써서 표정이 아주 풍부했다

작은 이야기에도 늘 경청해 주었으며

진심으로 매 순간 대했다

음성이 매우 맑았고

발음이 분명했다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도

선배를 거치게 되면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그 무게가 가벼워지는 듯했다

나서서 주목을 받기보다는

든든하게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을 했다

본인에 대한 칭찬에는 멋쩍어하기도 했지만

교수님들로부터도 선배들로부터도

누구에게든 좋은 말을 듣기에 충분한 사람이었다

나보다 여섯 학번이 앞서는 93학번인 선배는,

선배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선배의 부고에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되어

함께 슬퍼하고자 장례식장을 찾았을 때

누군가 조심스럽게, 선배와 가까웠냐고 물을 만큼

누구와 티를 내며 친한 척하지 않는 대학생이었다

말수가 많지 않으며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듣는 것을 더 좋아하던 학생이었다

마지못해 말없이 학과실에 있는 줄 알았겠지만

나는 함께하는 것이 좋았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였다

그들의 기억 속에 내가 없는 것은 그림자처럼 어느 구석에 가만히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눈빛과 음성과 표정과 제스처 모두를 기억한다

그들이 말할 때의 습관 모두가 나의 기억 속에 있다

목소리, 목소리..

나는 귀를 기울이고, 신경을 집중하고, 응시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졸업을 한지 이십 년이 흘렀고

수년 전 총동문회 같은 행사에서 멀찍이 눈인사를 나눈 것이 졸업 후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인듯하다

단 둘이 밥을 먹은 적도 없고

단 둘이 사담을 나눈 기억도 없으나

나는 그가 너무나 좋은 선배임을 알고 있고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기에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그가 가는 길을 배웅하고 싶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고 싶었다

그래서 장례식장에 가게 되었다


선배가 남긴 선물 같은 것이었다

각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때의 사람들을

한 날  자리에서 만날 수 있게 해 준 것이.


더듬고 싶지 않은 대학시절,

캠퍼스 게시판 편입학원 광고물만 보면 멈춰 서던 그때

텅 빈 넉터나 연구도서관 길이나 사람들이 빠져나간 빈 학교를 배회하며 다니던 그때

그때 더 가까이 가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했던 사람들을 만났다

선배가 톡톡 어깨를 쳐주며

괜찮다고 한 번 씩 웃어주는 것 같은데

떠나고 없는 선배가..


학과실에 울리던 기타 연주와 노랫소리를

다시 한번 듣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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