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Om asatoma
Sep 09. 2024
일을 잠시 쉬고 있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내면 얼마나 좋냐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말을 할 때마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지금이 불안해지다가 무어라도 해야 하나 조바심이 생기던 중 이제 절반이 지나는 시점에 늦은 아침을 먹고 아쿠아로빅으로 수영장에 노랫소리가 크게 울리는 소리를 피해 오후쯤 수영을 가려고 수영가방을 차에 챙겨두고는 동네 커피집 이층에 와서 창문 너머 희망부동산 간판에 아직 희미해지지 않은 희망이라는 단어를 보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즐거움보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자유가 더 크기 때문에 나는 더더욱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위를 해본다.
내가 태어난 이유라던가 이 전공을 선택한 이유라던가 이 땅에서 내가 해야만 하는 일과 같은 사명으로 여기던, 나의 젊음과 육아의 시간을 등지고 매달려온 그 일이 실은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자기 착각 속에 지난 시간을 버틴 것이 아닌가 서글퍼지기도 했고 삶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일이 내가 속한 기관과 나아가서는 이 사회에 어떠한 눈에 띄는 긍정적인 변화를 가지고 오지도 못하였으며 앞으로도 어떤 반향을 가져올 만큼의 무엇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쩌면 지금까지 쏟은 에너지보다 더 큰 에너지를 부어야 겨우 가능해질지도 모르겠으나 운 좋게 기회를 얻어 인간으로 태어나 누리게 된 이 생 전체를 바쳐도 될만한가에 대하여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므로 복귀하여 앞으로 십 년 이십 년의 시간을 더 보내야 하는 그라운드가 영 마뜩지 않으나 일의 성격을 조금 달리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작은 희망을 저 부동산 간판을 보면서 해본다.
이 나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표창을 받을 만큼의 실적을 쌓는 일보다 한 줄의 문장으로 사람들의 가슴에 길이 남을 수 있는 일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아주 미련스럽기도 하고 또 모든 것에 아주 미련을 많이 두는 성격으로 이별 앞에서도 바람이 불 때마다 나를 생각해 달라는 절대 잊지 말라는, 언제나 나를 생각하라는 이기적인 말을 남길 만큼 질척대는 성격으로 한 줄 문장으로 누구들의 가슴에 박히는 일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싶어 글 쓰는 것을 배워보고 싶었으나 세줄 짧은 글도 기한에 맞추어 써지지 않자 어제는 수능 시험장에서 문제지를 잘못 받고, 마킹을 연필로 하고, 컴퓨터용 펜은 나오지도 않고, 이러다가는 대학도 가지 못하겠다고 이건 모의고사가 아니라 실전인데 이렇게 되면 대학도 가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엄습해 올 때 아침, 잠에서 깨었다.
바닥이 드러나버린 것이다. 쌓아둔 사랑도 없고 어느 나라 어느 별에 존재하는 그것의 속성을 알지도 못하는 것이 드러나버린 것이다. 그동안 시를 알지 못했으며, 그것보다는 멋대로 알고 있었으며, 그들만의 세상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 푯말은 못 본 척하고 자꾸만 끼어들려고 했으니 이 민망함을 어찌할까 싶으며 동시에 본업에만 충실할 수밖에 없겠구나 싶은 희망부동산의 희미한 간판 위 분명한 희망이 보이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