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Om asatoma
Sep 29. 2024
1.
시인들이 모인다는 자리에서 사회 보던 그 사람도 아마 등단한 사람일 거라 생각하고 얼른 그 사람이 쓴 시 한 편 보고 싶었다. 행사 후에 돌아와 그 사람 이름을 검색하니 절판된 한 권의 시집이 나왔다. 창원시 전 지역 도서관으로 검색하였더니 상남도서관 한 곳에 책이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에 달려가 책을 빌려올 수 있는 곳이지만 마음을 먹어서는 안 될 것 같아 한 김 식을 때까지 기다리려 부러 타관대출을 신청해 두었다.
나는 불량한 독자여서 글이 좋아서 책을 읽기보다 그 작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을 읽는 편이다. 저 사람은 어떤 글을 쓸까에 대한 궁금증. 출신학교나 전공도 중요하게 보며, 특히 공대출신이 쓴 글을 좋아한다. 문예창작과 출신이라면 기능적인 면에서만 뛰어날 것이라는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글을 보게 되기도 한다.
모르고 살던 김사인 시인의 강연을 어느 날 듣게 되었고 그분의 가지런하지 않은 강연, 명확하게 전해지는 메시지는 없지만 시인의 강의라면 그러하여도 충분히 허용이 될 것 같은, 내용 때문이 아니라 발화의 방식, 음성의 떨림, 문장의 구성요소는 갖추어지지 않았으나 맥락상 전해지는 감상들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그분의 시를 찾아 읽게 되었다.
이성복 님은 짧은 한 줄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던 아포리즘을 어디선가 접하고 이성복의 아포리즘이라는 당시에는 절판되어 구하기 힘들었던 책을 시작으로 그분의 글을 찾아 읽었다.
어제 본 그 사람, 만났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만큼 멀리서 모습을 보기만 한 그 사람의 글이 궁금했다. 시 몇 편을 인터넷 검색으로 찾을 수 있었는데 '역시,' 싶은 글이었다. 글과 사람이 닮을 수밖에 없구나, 조금은 거칠고 조금은 직설적이고 여운을 많이 남기기보다는 깊이를 치고 들어오는 묵직함이 느껴지는 작품들이었다. 그의 비장함이 근래에 읽은 어떤 시들보다 친밀하게 여겨지는, 마치 내가 쓴 글인 것처럼 익숙하게 느껴지는 어휘들. 시집에 그 사람의 이메일 주소가 있었는데 부디, 끝까지, 그에게 메일을 쓰는 일은 없기를.
이 마음이 몇 시간 후에는 곧 식어지고 말기를.
2.
나는 건너편에서 그곳을 많이 보았다. 북사면 음지가 서러워 울다 보면 시선이 멈추는 곳이었다. 해가 저렇게 잘 드는 곳은 얼마나 좋을까, 곡식이 잘 자라는 풍요의 땅에서는 비탈을 기어가며 전지 하는 이곳을 바라볼 일이 없을 거라며 땀을 식힐 때, 북받치는 마음을 가라앉힐 때 길고 긴 한숨을 뿜으며 외바라기 하던 곳이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두 지역은 해가 머무는 시간도 다르고, 내려앉는 햇살도 다르고, 빛이 머물다 가는 시간도 다르고, 양쪽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과 집집마다의 사정들도 확연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쪽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그렇게 처연할 수가 없는데 저쪽으로 건너가서 바라본 일몰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확신에 찬 내일이 있는 낙조였다. 내일을 기다리게 하는 일몰이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경고하는 이쪽의 일몰과는 너무나 달랐다. 해 지는 시간 강변도로를 달리면서 그쪽 세상을 잠시 경험했다. 그 길의 끝에 그가 있었다.
3.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내가 쓴 글을 찾아 읽고 싶게 만들고 싶었다. 궁금하게 여길만한 존재는 될 수 있는데, 찾아 읽고 싶어 하는 그에게 내놓을 만한 글이 없다. 바닥인 거다. 얕은 거다. 그렇게 되면 재미가 없는 거다. 생활에서 막혀있는 부분과 글에서 막혀있는 부분이 동일한 지점이다. 흐르지 않는 곳, 열리지 못한 곳.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지 않아도 무척 내성적이고 자기표현이 없는 아이였는데,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어느 성의 공주도 아니면서 주술에 걸린 것처럼 목소리가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4.
글 쓰는 사람이 모였다는데, 저 사람의 글을 찾아 읽고 싶다고 생각이 드는 사람이 몇 없었다.
5.
모습만 보고도 저 사람의 글은 진솔할 것 같다, 위트가 있을 것 같다, 가식적일 것이다, 꾸밈이 많을 것 같다 단정적으로 생각해 버리는 나의 이 독선을 나는 버릴 생각이 없다.
6.
선생님의 글은 우아하다. 품위가 있고, 격조가 있으며, 단정하고 청아하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노래할지라도 맑음을 잃지 않는다. 탁하지 않다. 깔끔한 귀부인 같다.
나의 글은 비장하다. 탁하고 치열하고 처절하다. 거리의 방랑자 같으며 내일 없이 오늘에 오늘을 마감하는 사람 같다. 미련이 많고 거추장스러우며 감정을 절제할 줄 몰라 부사를 많이 쓴다. 진솔하지 않기에 겉돌고 음지에서 음지를 바라본다.
선생님은 실내에서 창으로 비가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시고, 나는 비가 오면 빗속으로 뛰어들어 비를 맞는 것을 좋아한다.
선생님은 언제나 정장을 갖추어 입으시고 세상의 주인공처럼 다니시며, 나는 나보다 키가 10센티 더 크고 체중이 20킬로가 더 나가는 남편의 티셔츠가 건조기에 들어갔다가 작아져 못 입는 검은색 티셔츠들을 입고 그림자처럼 다닌다.
감히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태생적으로 그분을 따라갈 수도 흉내 낼 수도 없다. 음지의 곰팡내가 옴팡나는 글을 내밀기가 죄스럽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 이상, 내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지 않는 이상, 나에게 어떤 빛이 찾아와 나를 가득 채우지 않는 이상.
7.
..
저 안에 까지 빛이 들어차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