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review

추석, 어느 호텔 로비에 비치된 책 [Trees]

by Om asatoma



광활한 대지에 뿌리내리고 터를 잡은,
수천 년 그 자리를 버텨온 나무_
그 근처에만 서도 신비한 에너지가 땅 아래 뿌리를 통해서
나의 발끝을 타고 온몸으로 번져 흐른다.
나무의 곁에 선다는 것,
겸허히 그의 시간과 그의 지혜를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고
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비우고
그의 곁에 설 때는 호흡도 경건해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다양한 표정이듯
나무의 곁에서 자세히 살피면 나무들도 제각기 다른 표정으로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흐르는 무언가가 있기는 하다.
받아들임. 이곳에서의 모든 것을 받아들임.
물, 바람, 빛, 머물다 떠나가는 지저귐들 그리고 다시 찾는 새들.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순순한 받아들임.
그로 인한 적응. 지금 여기에 존재하기 위한 적응력.
적자생존의 문제는 비단 동물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타고난 것과 환경과의 조화, 그 접점에 길이 살 길이 있다.




축복의 길.
길게 나무들이 늘어서 있는 길을 걸을 때 언제나 부끄럽다.
오직 이 순간 이 길을 걷고 있는 나를 위해
이 길에 들어서기까지의 시간을 격려해 주기 위해
나무들이 숨죽여 나를 지켜보고 있는 느낌,
대견하게, 장하게, 바라봐주는 느낌,
그래서 한 걸음 한 걸음 감격에 겨워 걸을 때가 있다.
산길을 걸을 때는 특히 나무들이 손잡아 주는 것 같아 감정이 북받칠 때가 있다.
가까이서 멀리서 나무의 목소리가 들린다.
수고했다, 잘하고 있다, 수고한다, 잘할 것이다..




나는 물을 무서워한다.
모든 물가가 무섭다.
잠기는 것, 휩쓸려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공포라기에는 너무 강한 표현인 듯하고
어떤 두려움,
그래서 물에 있는 나무들을 보고 있는 것도 무척 힘들다.
어떤 숨 막힘. 질식의 고통이 느껴진다.



지탱, 버팀을 위한 흔적. 애씀의 흔적.
관계, 대지와의 관계,
큰 나무는 무성한 잎을 피우고 화려한 꽃을 피우기보다
뿌리를 깊고 넓게 내리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다.
뿌리가 갖추어진 이후에 개화와 착과가 이루어질 것이다.
누천년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비결은 오직 뿌리에 있을 것이다.




내가 큰 키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어쩌면 분명히
가지치기를 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자연전정을 통해 현명한 생을 꾸리는 교목과 달리
빌과 물, 한정된 이 공간 속에서
내가 지닐 수 있는 것과 내려놓아야 하는 것을 스스로 정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이 상태로 머무르기만 할 뿐 성장이 없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욕심.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 또는 人情이라고 스스로 미화하고 있는 하나
실은 이것은 욕심이다.
균형을 떠나버린, 욕심.

어떤 흠도 만들고 싶지 않은 어리석은 마음, 욕심이
키를 키우지도 못하고
둥치를 넓히지도 못하고
머 루르게 만들고 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자작나무 숲은 저 나무들이 개개로 뿌리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저 아래 하나의 거대한 뿌리를 갖는다고 하는데
얕고 넓게 퍼져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그 뿌리, 뿌리들.
하나의 거대한 의식 공동체와 같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너와 나의 구분과 경계가 허물어진 초월적 신경망을 이룰 수 있을까,
인간 세계의 가족과 같은 것일까, 가족... 가족....
개체를 넘어선 존재들의 연대, 연대의 힘.



추석이다.

왁자한 어느 집 아래에 서서 목소리들에 묻어있는 서로를 향한 환대를 들었다.
결국 추구하는 단 하나이다.
平生.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서울 유람기.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