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열 살 이예지 양

by 이승환

컴퓨터와 TV를 연결해 너와 '보글보글'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 사진 한 장보다 작은 용량에 신비한 세계를 꾹꾹 눌러 담은 기특한 게임이다. 그 매력에 빠져들기는 30여 년 전 아빠나 지금 너나 별다를 게 없었다. 입을 반쯤 벌린 채 손가락을 바삐 움직이는 너를 보며 이 게임이 왜 고전이고 명작인지 알 수 있었다. 예전에 동전을 그렇게 먹던 게임은 이제 숫자키 5번과 1번만 누르면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이런 게 기술이 진보하는 증거가 아니라면 뭐가 과학이고 문명인가 싶다.


엄마는 왜 가만있는 딸에게 느닷없이 오락실 게임을 가르치느냐고 발끈했다. 보호자로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반응이지만 말은 바로 해야겠다. 먼저 이 게임은 예전에 네가 입원했을 때 이미 전수했다. '느닷없이' 가르친 게 아니라는 진술은 법원에서 몇 번이라도 할 수 있다.


엄마가 명백한 사실마저 외면하며 아빠를 다그친 배경을 추적하다 보니 이런 과거도 떠올랐다. 보글보글은 네 엄마와 연애 시절 어느 한순간을 찬란하게 만든 게임이다. 노트북 앞에 함께 앉아 수없는 고난과 좌절을 딛고 마지막 100라운드를 성공하며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거듭 확인했다.


이 같은 정황으로 미뤄 보면 엄마는 자기만 빠져서 삐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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