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

익숙한 기다림

by 약속의 땅


딸아이가 저녁 늦게 학원에서 돌아온다. 집 앞 조금은 어둑한 골목에서 셔틀을 타고 내린다.

나는 그 시간에 맞춰 미리 나가 있다. 둘이 함께 걷는다.

이 시간이 좋다.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의 얼굴은 매일 비슷하다. 무표정인 듯 아닌 듯, 그런 얼굴.

매일 학원에 있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테지.

딸아이는 나를 보자 익숙하게 가방을 어깨에서 내리고, 나는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 들고 내 어깨에 멘다.

익숙한 이 작은 거래가 좋다. 먼 훗날, 그리울 장면이 될 것 같다.


“수고했네.”

내가 말하면, 딸아이는 그제야 입을 연다.

선생님이 이랬고, 친구가 저랬고, 안주형은 재계약을 할까? 최원태가 온대. 좋아하는 야구 이야기를 무심히 던지고

나는 그냥 듣는다.

그 투덜거림이 좋다.

하루를 살아낸 작은 목소리.


“아이스크림 먹을까?”

무심한 듯 물어보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물어볼 작정이었다.

“좋지.”

그 한 마디에 마음이 풀린다. 싫다고 했으면, 쿨하게 “그래~” 하면서도 조금은 서운했을 거다.


우리는 익숙하게 아파트 앞 할인점으로 간다.

종류는 많지만, 고르는 건 거의 정해져 있다.

나는 아들에게도 문자를 보낸다.

“아이스크림 뭐 먹을래?”

답장은 빠르다.

“빵파레쵸코.”

짧고 뚜렷한 대답.

그 안에 숨어 있는 ‘아빠 고마워요’ 같은 의미를, 나는 애써 읽어보려 한다.

셜록처럼.


딸은 떠먹는 와우, 아들은 빵파레쵸코, 나는 투게더.

고전은 아름답고 투게더는 고전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시국 이야기를 한다.

탄핵은 인용될까? 계엄령은 진짜였을까?

100초짜리 진지한 토론을 나눈 뒤, 엘리베이터를 탄다.


딸아이는 지오디의 촛불 하나 랩을 쏟아낸다.

나는 쏟아낸 랩을 몸으로 받는다. 짧은 시간, 4층까지 올라가는 동안 무대 위처럼 춤을 춘다.

작은 사각의 공간. CCTV에 생중계 되는 우리의 저녁 콘서트.

이 또한 익숙한 일이다. 루틴처럼.

딸은 옛날 노래를 좋아한다. 오아시스도, 비틀즈도, 지오디도.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니, 익숙한 대사가 날아온다.

“이 시간에 무슨….” 이하생략.

나는 그것도 익숙하게 받아낸다. 왼쪽 귀로 조용히 듣고, 오른쪽 귀로 무음 송출한다.

이럴 땐 어떤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냥 바위가 된다.

표정을 멈추고, 마음을 비운다.

대응하면 연장이다.

오늘도 무사히 지나간다.


옷을 갈아입고, 딸은 손을 씻고, 아들은 큰 스푼을 들고 온다.

“아빠 한 입 먹어도 되지?”

내 안에서 ‘니 꺼 먹어’가 튀어나오려다,

나는 그것을 삼키고 대신 말한다.

“당연하지.”


나는 티스푼인데, 아들은 하이에나처럼 젤 큰 삽을 가져왔다.

그의 삽질 하나에 나는 세 번 퍼야 비슷한 양이 된다.

게다가 나는 이가 시려서 페이스도 못 낸다.

분명 내 아이스크림인데, 내 안으로 들어오는 건 많지 않다.

아름다운 투게더는 정확히 SUB11분 만에 아들 뱃속으로 완주했다.

아들은 그제서야 만족한 얼굴로 자신의 쵸코빵파레를 울린다.


그래, 우린 투게더였다.

부모의 사랑은, 이런 걸지도 모른다.

다음엔 두 개 더 사와야겠다.


아들이 먹은 게 하나도 아깝지 않다.

그건 아빠의 사랑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스스로 조금 멋있어지니까.


아이들은 이를 닦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오늘도 어제와 닮았지만,

새로운 하루를 잘 마무리했다.


딸을 기다리는 시간은 행복이라 부를 수 있다.

엘리베이터 안의 짧은 콘서트도,

투게더 위의 삽질도,

모두 행복이라 바꿔 말할 수 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음을 익숙한 마중에서 느낀다.

아파트 앞 아이스크림 할인점에도,

오늘 같은 저녁길에도 있다.


잠들무렵 이 마중도 끝이 있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이 될 마중은 어떤 느낌일까…마지막을 알 게 될까…

웬지 억울한 울컴임이 올라온다.

졸립다. 잠이 마중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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