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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앤비 Jul 19. 2020

약 값이 없어요

보건소 이야기 

이 글은 이런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주님 마음으로 이웃 사랑하는 법을 함께 묵상하고자 하는 분

일상 속 작은 사연들을 통해 의미를 발견하고 싶은 분



수염이 덥수룩한 한 40대 남성 환자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내원하였다. 그는 뒷목이 당긴다 했고 혈압은 조절되지 않고 있었다. 순간 난 근거 없이 직감했다. 무슨 절망스러운 사연 한두 가지는 분명 갖고 있을 거라고. 근거 없지만 내 느낌은 요즘 들어 꾀 신뢰할만했다. 


“잘 지내셨어요?” 

“.........” 

내 인사에 그는 답이 없었다. 


소통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대답 없는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새 빨겠다. 그러고 보니 무슨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평상시와 달리 어르신들이 씻지 못해 풍기는 그 특유의 고약한 냄새가 아니었다. 불쾌하지 않았지만 익숙한 냄새였다.


“환자분 혹시.. 아침부터 술 드시고 오신 건가요?”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내가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선생님”  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혈압 환자가 약 타는 날 술을 먹고 오다니 상식적인 일인가! 사실 놀라운 일도 아니다. 어제는 약을 이틀째 복용하지 않은 한 당뇨 환자가 사탕 여러 개, 믹스커피 두 잔, 과일 등을 먹은 직후 오백이 넘는 식후 혈당으로 당돌하게 내원했으니 말이다. 며칠 전에는 높은 혈당으로 내게 한바탕 잔소리를 들은 한 젊은 환자가 진료실을 나간 후 보건소 로비에서 막대사탕을 꺼내 들어 빨기 시작하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이 투명한 진료실 유리를 넘어 내 두 눈에 명확히 포착됐다. 그것은 내 노력과 진심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나의 진실된 설득과 필사적인 노력이 환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기를 기대했던 일은 분명 선한 것이었지만, 그 일은 늘 그릇된 예측같이 자주 일어나지 않았다. 


술 드시고 온 혈압 환자에게 난 흥분할 뻔했지만, 아니 흥분했지만, 내 이성은 나에게 절제를 요했다. 환자의 사연을 듣기 전까지 어떤 편견과 선입견도 가져서는 안 된다. 그것이 의사, 환자, 그리고 진료실의 평화를 지키고, 모두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지혜라 배웠다. 진료실은 몇 마디 주고받고, 아픈 배를 눌러보고, 청진을 하여 약을 주는 그런 간단한 곳이 아니라 배웠다. 병원은 처음 마주하는 두 인격체가 관계를 형성하는 곳이고, 가르침과 배움, 조언과 선택, 이성과 감정, 사건과 사연, 사람과 사람이 얽혀 예측 불가하게 상호작용하는 복잡한 곳이라 믿고 있다. 


“혈압 환자가 아침부터 술을 드시고 오시다뇨. 무슨 일 있으셨어요?” 절제된 감정으로 내가 물었다.

“약 값이 없습니다. 선생님.” 


절제된 내 질문에 메마른 감정으로 그가 무뚝뚝하게 입을 열었다. 환자의 고개는 일관되게 바닥을 향해 있었다. 말끝마다 한숨을 쉬는 환자의 입에서 술냄새가 진동을 했지만, 그의 사연의 무게가 술냄새보다 중했기 때문에 난 개의치 않았다. 대화를 여기서 마무리하기엔 살랑이는 파도에 젖지 않기 위해 사뿐히 걷어올린 바지자락이 큰 파도 하나를 잘못 만나 이미 젖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래서 소통은 이어가야 했다.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쳤다. 


‘혈압약이 몇 푼이나 한다고 약 값이 없다니.. 이런 딱한 사연을 봤나.. 근데 약 살 돈은 없으면서 술 살 돈은 있었나.. 왜 하필 이런 사연 가득한 환자는 분주한 오전에 더 많은 걸까..’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스쳐가던 그때 환자가 말을 이었다. 


“실은요 선생님.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내 신세가 너무 초라해 보였습니다. 고작 두 달치 혈압약 살 돈이 없다니.. 내가 너무 비참해 보였습니다. 내가 너무 안돼 보였다고요.. 그래서 술을 마셨어요.. 이것이 뭐 잘못됐습니까?”


그는 복잡한 본인의 감정을 단순히 표현했다. 그의 표정은 오래 사랑했던 연인에게 버림받아 고독하게 술 취한 사람들의 표정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깊은 패배감에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자신을 향한 연민과 동정은 뒤섞여 그의 자존감을 철저히 짓밟고 있었다. 그에게서 늠름하고 책임감 넘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기에,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거나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본 적은 없어 보였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형, 그는 동생이었다. 내가 아는 형의 역할은 상황과 시기에 적절한 위로, 조언, 격려, 훈계 중 하나를 선택하여 동생을 챙기는 일이었지만, 몇 마디 말만 듣고 난 제대로 된 형 노릇을 할 자신이 없었다. 확고하지 않은 훈계는 자칫 동생의 마음에 더 큰 흉터를 초래할 수 있고, 진실되지 않은 위로는 연민 가득한 그의 심령을 더 큰 연민으로 내칠 수 있어 보였다. 난 그의 말을 더 들어야 했다. 


그는 혼자 사는 노동자라 했다. 날이 따뜻할 때는 일이 많지만 요즘과 같은 추운 겨울철엔 일을 구하는 일이 매우 어려워 종종 생활고에 시달린다고 털어놓았다. 그러고 보니 그는 건장했다. 키가 컸고, 몸은 온통 근육질이었으며, 그가 밖에서 힘쓰는 이임을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는 듯 그의 피부는 온통 까무잡잡했다. 난 이 지방에서 일을 구하지 못해 약값조차 해결 못하는 한 중년 남성을 마주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건장한 남성이 일할 곳 하나 없다는 냉랭한 현실이 그의 무능함 때문인지, 척박한 세상 탓인지, 아니면 나랏일 하시는 분들 탓인지 순간 판단되지 않았지만, 탓할만한 원인은 분명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마음 어디선가 환자를 향한 내 연민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가 참 안돼 보였다. 그의 사연은 그의 술 취함을 충분히 설명했다. 오전부터 술 취해 내원한 환자분이 더 이상 밉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죄책감까지 들었다. 요즘 나에겐 심각한 고민 하나가 있었다. 구세대 아이패드를 살지, 가격이 두배나 더 비싼 모양 잘빠진 신상 아이패드를 구입할지를 놓고, 난 이성적인 논리와 비과학적인 감정 그 중간 어디에서 긴 시간 동안 치열하게 타협 중이었다. 그런 행복한 고민 가운데서 불행하게도 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대가를 더 지불하고 신상을 사자니 생활 다른 부분에서 허리를 졸라매야 한다는 억울함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 것 같았고, 구형을 구매하자니 내 자존감과 만족감이 낮아질게 뻔해 보였다. 누구도 이런 고민을 했단 사실만으로 날 정죄할 수 없다. 다만, 약값이 없어 약을 복용 못해 망연자실한 한 남성 환자를 내 면전에서 경험하며 내가 한없이 부끄러워졌을 뿐이다. 


생각이 정리되지도 않은 찰나에 또 다른 죄책감이 밀려왔다. 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환자를 내가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내가 뭔데 그를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내가 그이의 삶에 대해 얼마나 자세히 안다고 그를 불쌍히 여기고 있는가. 난 어느새 환자분을 판단하고 있었다. 그는 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불행한 사람이었고, 난 그가 범접할 수 없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나는 최첨단 기계를 구입할지 고민하는 넉넉한 사람이었고, 그는 몇 푼도 안 하는 약값을 놓고 좌절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난 그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그도 누군가로부터 사랑 많이 받고 컸다고, 그의 미래는 오늘과 달리 행복으로 가득할 것이라고 그도 말하고 싶어 한 것은 아닐까. 그도 평상시에는 술 먹고 혈압약 타러 올만큼 몰상식한 사람이 아니라고 나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어 한 것은 아니었을까. 혀를 굴리며 그를 동정하던 내 마음을 누가 질책이라도 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가난한 판자촌 출신의 한 유명 목사님이 설교 중에 하신 말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여러분, 가난한 사람 함부로 동정하지 마세요. 그들도 그들만의 낭만이 있고 행복이 있어요. 가난은 사람을 꼭 비참하고 불행하게 만들지 않아요. 예수님 눈으로 있는 모습 그대로 서로를 사랑하세요”


난 형 동생 놀이는 안 하기로 했다. 그에게는 따끔한 훈계도, 동정의 눈길도, 어설픈 공감도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았다. 나와 동등한 한 인격체로 대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난 그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환자분, 지금 혈압이 너무 높아요. 지금 약을 살 돈이 없으면 제가 약국에 전화 넣어 둘게요. 오늘 급한 대로 약을 가져가시고 돈 생기면 그때 갚으시는 걸로요. 이래 봬도 저 요 앞에 약국 사장님이랑 친하답니다~”


환자는 만족해했다. 그제야 환자는 고개를 들고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소심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 짧은 순간에 긴 여행을 한 느낌이었다. 정죄함이 연민으로, 연민이 죄책감으로, 죄책감이 더 큰 죄책감으로.. 죄책감이 반성으로. 환자를 돌려보내고 또 다른 환자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그는 장애인이었다. 난 다짐했다. 그를 함부로 동정하지 않기로. 그가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고 마주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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