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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앤비 Jul 19. 2020

내 아내랑 며느리에요

보건소 이야기 

이 글은 이런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주님 마음으로 이웃 사랑 하는 법을 함께 묵상하고자 하는 분

일상 속 작은 사연들을 통해 의미를 발견하고 싶은 분



제법 따뜻해진 봄바람이 솔솔 불던 화창한 금일 오후 치매를 앓고 있는 팔십대 초반의 남성 환자분이 내원했다. 이곳 보건소에선 함께 운영하는 치매안심센터를 통해 가까운 의료원에 계신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님과 연계하여 매주 영상통화를 통한 치매 원격진료를 시행하고 있다. 환자분은 약물처방과 각종 치매교육 및 상담을 받기 위해 본원에 날마다 방문하는 나와 친분 가득한 환자였다. 금일 그는 등급판정을 위해 필요한 노인장기요양 의사소견서를 발급 받기 위해 내원하였다. 


“안녀엉..하세요... 서서언 새애앵 니임! 충성!”


불안정한 걸을걸이로 내원한 그가 푹 눌러쓴 모자를 공손히 벗고는 허리를 숙여 어눌한 발음으로 내게 먼저 인사를 건냈다. 늘 그랬듯이 그는 정렬되지 않은 떨리는 오른손을 그의 오른쪽 눈썹 끄트머리에 대며 해맑은 표정으로 내게 힘찬 충성을 외쳤다.


그의 모든 것은 매번 정돈되어 있지 않았다. 그의 행동, 말투, 옷차림, 분위기는 늘 평범함에서 조금씩 어긋나 있었으나 그는 중증 치매환자였기에 이 모든 것이 진료진들에게 큰 불편함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기억장애란 불치병을 마주한 한 노인의 절망적인 투병생활 가운데 그가 보여준 삶에 대한 긍정적 자세는 보는 이들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과 직원들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하곤했다. 


팔십이 넘은 어르신이 내게 그리 공손히 인사를 하는 이 현장이 난 오늘도 적응되지 않았다. 흰 가운만 벗으면 삶에 대한 깊은 경험이 전무한 지혜없는 젊은이에 불과한 것을, 목에 두른 청진기만 내려놓아도 가정을 이루거나 자녀를 양육해본적 없는 해맑은 청년에 불과한 나를 향한 어르신의 예의 갖춘 인사는 내게는 무척이나 과분한 것이었다. 업무의 연속성을 위하여 난 앉은채로 어르신의 인사를 정중히 받아냈지만, 내 마음 한켠에 모호한 죄책감이 슬며시 찾아오는것만 같았다. 


“충성! 안녕하셨어요 어르신, 근데 오늘은 함께 오신 분이 있으시네요!” 

늘 혼자였던 그의 뒤로 두 사람이 함께 진료실로 들어왔다.


“네..제에..집사람이랑..며어느으리리에요” 

느린 말투탓에 그는 가족 두분을 간단히 소개하는데 꽤 오랜 시간을 썼다. 



난 시선을 돌려 소개된 어르신의 가족 두 분을 바라보았다. 옆에 계신 두 분이 아내분과 며느님일줄은 예상치 못했기에 순간 적지 않은 충격이 밀려왔다. 아내분이 걸친 고급스러운 밍크코트와 며느님의 두발에 착용된 세련된 힐은, 할아버님의 허름한 옷차림과 그의 격식없는 미소와는 극명하게 대조되고 있었다. 그 현장은 내가 잘 안다고 생각한 한 사람에 대한 굳은 이미지를 산산조각 깨뜨렸다. 일년동안 그를 뵈오며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나의 교만을 누가 지적이라도 하는듯 그를 향한 내 마음이 또 다시 죄스러웠다. 


아내분과 며느님은 팔짱을 끼고 노인장기요양 의사소견서를 쓰고 서명하는 나의 모습을 감시하듯 말없이 응시했고, 그 옆에 계신 치매 환자분은 그저 해맑게 웃으며 어린 아이처럼 잘 부탁한다는 말만 내게 전했다. 차가운 아내분의 시선을 덜 차갑게 하기 위해 난 그녀에게 말을 건냈다. 


“어머님, 아버님 모시면서 집에 별일은 없으시죠?” 난 별 의미 없는 말을 별 기대없이 던졌다. 

“사실 이이가 얼마전 대학병원서 말기 신장암을 진단 받았어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네요. 얼마전에는 가출하여 길 잃은 그 이를 누가 신고해줘서 경기도에서 찾았지 모에요”


그녀는 표정변화 없이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남편 사연을 마치 남 얘기하듯 별 감정없이 나눴다. 기대치 못한 무거운 나눔에 진료실의 분위기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오랜 시간 남편의 병수발을 들며 살아갈 여력이 남지 않아서인지, 치매로 정체성을 상실한 남편이 더 이상 남편이 아니라 여겨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냉정한 본성탓인지 난 판단할수 없었으나 어두운 얘기를 어둡지 않게 나눈 그녀의 예상 밖 나눔이 진료실을 더 어둡게 만드는것 같았다. 그리고 난 다시 치매 환자분을 바라보았다. 


그의 겉모습은 그를 정확하고 온전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단 한 차례도 환복되지 않았던 그의 허름한 고동색 외투, 심한 기억장애, 당당하지 못한 소극적인 발걸음, 지식과는 거리가 먼 어눌한 말투, 세상 속임수와 공격에 취약할것만 같은 수수한 미소 등, 그의 외모는 그를 정의하고 있었으나 그것은 극히 일부만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의 겉모습은 한 사람이 부단히 살아내며 축적해온 유업, 경험과 연륜, 상처와 내적상태, 진실과 온전함, 정직과 거짓됨, 재정과 재산, 관계와 인맥, 성숙과 미숙함, 도덕과 윤리, 꿈과 계획 등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해 보였다. 내 시야에 포착된 외적 자극들은 내 머리속에서  무궁한 신경회로를 통해 신비로운 방법으로 인지하고 있을뿐, 전인격적인 한 사람이 보낸 긴 세월이나 마주한 사연들 속에서 겪는 감정들은 고스란히 담아내지도 명확히 해석하지도 못했다. 


지난 주에도 한 중년의 남성 치매 환자가 내원했다. 부인과 함께 내원했던 그는 진료실에 들어와서는 다짜고짜 내게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던졌고 아내분께는 이유없는 짜증과 화를 내며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의 언행은 일관성 없었고, 감정은 그 짧은 진료 시간을 견디지 못해서인지 심히 요동했고, 환장분의 표현과 주장 속엔 정돈된 논리가 결여되 보였다. 그의 행동은 사람의 절제, 판단, 결정, 성격 등을 담당하는 뇌의 전두엽 부위의 손상으로 초래된 치매를 연상케 했다. 다행히 온갖 욕을 들으면서 난 화가 나거나 내 인격이 짓밟힌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절반이나 남은 인생 중간길에서 그가 마주한 전두엽치매의 무게가 순간의 내 기분보다 훨씬 중하다 여겨졌기 때문이다. 난 그의 인생배경과 경험 등에 별 관심이 생기지 않았었다. 그가 보인 겉모습은 그를 판단하는데 충분했기 때문이다. 행여 그것이 치매라는 아주 특수한 질병 때문에 초래된 일일지라도, 그렇게 그의 그됨은 그의 겉모습에 의해 완벽히 가리워졌다. 


난 최근 치매 환자분들을 대면하며 그 난치병 뒤에 감쪽같이 가리워진 그들의 그들됨에 대해 짧게 고민해봤다. 종종 사람의 겉모습 안에 감춰진 내면을 간과하고 쉽게 판단하지 않았는지. 한 인격을 구성하는 성품, 인품, 의지, 감정, 성격 등과 같은 내적요소들을 깊이 고민하고 고려해 왔는지. 우리가 함부로 범접할수 없는 수준이나 실력의 경지에 오른 같은 분야의 선배를 만날때나, 내가 이득을 취할수 있는 이들과 대면할때 우리의 태도는 상이하지 않았는지. 화려한 겉모습을 지닌 이들과 어울리는 그 짧은 순간에 수십개의 계산과 판단이 우리 마음을 변덕스럽게 하지 않았는지. 


나와의 용건이 끝나고 진료실을 떠나는 환자분의 뒷모습과 발걸음은 여전히 해맑고 가벼워 보였다. 본인이 살아온 세월은 기억하는지, 말기 신장암으로 기대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사실은 인지하는지, 자녀분들은 알아보는지, 지켜온 신념과 가치들은 그의 가슴 한켠에 아직 자리잡고 있는지 난 궁금했으나 알 방법은 없었다. 난 그와 그의 가정을 위해 기도했다. 그의 나약한 겉모습에 의해 남은 생 그가 다치지 않기를. 그가 입은 냄새나는 허름한 외투로 인해 그의 인격이 무시 받지 않기를. 무엇보다 그의 가족이 평안하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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