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살이

"검진 결과보다, 아이의 한 장 편지가 나를 살려냈다."

by 고백맘

1년에 한 번, 정기검진을 다녀온다.

이상하게도 병원 예약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먼저 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 살다가도, 그 며칠은 조금 예민해지고 조금 조용해진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긴장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새벽 첫 기차를 타야 했다.
아직 어두운 시간에 집을 나서야 하니, 전날부터 마음이 분주했다.
아침에 아이가 혼자 일어나 허둥대지 않도록 밥을 챙겨두고,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눈에 띄는 곳에 꺼내놓았다.


혼자 남겨질 아이가 외롭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쓸데없을 만큼 꼼꼼해졌다.

막 나서려는 순간, 책상 위에 편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병원 너무 걱정하지 마.”

“다 괜찮을 거야.”

“피식 웃고 힘을 얻었으면 해서 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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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아직 내 품을 찾던 아이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내 등을 떠미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이상하게 눈물이 터졌다.

사람은 현재의 한 장면 앞에서만 우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마음이 과거의 기억을 한꺼번에 끌고 올라올 때, 그제야 울게 된다.


그 편지를 보는 순간 떠오른 건, 초등학교 5학년 때 두 번째 수술을 마치고 내려오던 날이었다.
기차역에서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서럽게 울었다.

“왜 이제 왔어.”

원망인지 반가움인지 모를 그 말 한마디에, 미안함과 안도감 사이에서 아이를 꼭 끌어안았었다.

더 오래된 기억도 따라 올라왔다.
세 살 때 첫 수술을 하고 2주 만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이는 나를 보는 순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 울었다.

태어나서 하루도 떨어져 본 적이 없던 엄마가 갑자기 사라졌으니,
그 작은 아이에게는 세상이 무너진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없는 동안 아이를 달래주려 데리고 다닌 마트에서
단것의 맛을 배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마음이 아팠다.

여섯 살 어린이집 파자마 파티에 갔다가 한숨도 못 자고 돌아와
내 품에 안겨 울며 말하던 장면도 아직 선명하다.


“엄마 보고 싶어서 잠을 못 잤어.”


그 아이가 이제는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있다.
특목고 기숙사 생활을 꿈꾸며, 더 큰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참 이상한 일이다.
한때는 나 없이는 잠들지 못하던 아이가,
이제는 나보다 먼 곳을 먼저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아이를 남겨두고 병원에 가는 날이면 마음이 흔들리는데,
아이는 조금씩 내 품 바깥의 삶을 연습하고 있다.


이번 검진 결과는 다행히 괜찮았다.
1년 뒤 다시 보자는 말을 듣고 병원을 나섰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아, 또 1년을 살게 되었구나.

가끔은 내 삶이 ‘완치’가 아니라 ‘1년 살이’처럼 느껴진다.

한 해를 잘 살아내고, 다시 검사를 받고,
또 한 해를 허락받는 기분.

그래서일까.
검진을 다녀오고 나면 한동안은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

운동도 더 성실히 하게 되고,
식단도 다시 돌아보게 되고,
내 몸을 함부로 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그런데 인간은 참 이상하다.
조금 지나면 또 잊는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하면 다시 무뎌지고,
소중한 것을 오래 곁에 두고도 그 소중함을 잊고 산다.


나 역시 그렇다.
그래서 1년에 한 번씩 병원에 다녀오는 일은
단지 검사를 받는 일이 아니라,
내 삶을 다시 붙드는 의식처럼 느껴진다.


첫 수술을 받을 때, 혼자 계산해 본 적이 있다.
앞으로 20년을 더 살아도 내 아이는 겨우 스물셋이라는 것을.
그 숫자는 오래도록 내 가슴에 박혀 있었다.


내가 더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는 대단한 꿈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아이가 조금 더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었고,
조금 더 오래 곁을 지켜주고 싶었고, 내가 없어도 괜찮은 사람이 될 때까지는
가능하면 오래 살아남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아이들 곁에 있기 위해
이제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고.
아프고 나서야 삶의 소중함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건강할 때 먼저 삶을 아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1년 뒤 또 병원에 가겠지만,
그때의 나는 오늘보다 조금 더 단단했으면 좋겠다.

조금 더 잘 먹고, 잘 자고, 잘 움직이며
내 몸을 소중히 여긴 흔적이 남아 있으면 좋겠다.


삶은 거창한 결심으로 바뀌지 않는다.
결국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사느냐가
내년의 나를 만든다.


그러니 이번에도,
허락된 1년을 함부로 흘려보내지 말아야겠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을
두려움이 아니라 감사로 살아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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