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와 육아하며, 피하고 싶은 그분을 모시고 왔다.
막 싹을 틔운 어린나무가 곧장 생장을 시작하지 않는 이유는 땅속뿌리 때문이다. 작은 잎에서 만든 영양분을 자라나는 데 쓰지 않고, 오직 뿌리를 키우는 데 쏟는다. 눈에 보이는 성장보다는 자기 안의 힘을 다지는 데 집중하는 셈이다. 어떤 고난이 닥쳐도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비축하는 시기, 뿌리에 온 힘을 쏟는 어린 시절을 ‘유형기’라 한다.
나무는 유형기를 보내는 동안 바깥세상과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을 벌인다. 따뜻한 햇볕이 아무리 유혹해도, 주변 나무들이 빠르게 자라나도, 결코 하늘을 향해 몸집을 키우지 않는다. 땅속 어딘가 있을 물길을 찾아 더 깊이 뿌리를 내릴 뿐이다. 어두운 땅속에서 길을 트고 자리를 잡는 동안, 실타래처럼 가는 뿌리는 튼튼하게 골격을 만들고, 웬만한 가뭄은 너끈히 견딜 힘을 갖춘다. 나무마다 다르지만, 유형기는 평균 5년 정도다. 나무는 유형기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하늘을 향해 줄기를 뻗기 시작한다. 뿌리에 힘을 쏟은 시간 덕분에, 세찬 바람과 폭우에도
굳건히
버틸 수 있는 나무로 성장한다.
'나는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웠다' 중에서 -우종영 박사-
둘째에게도 나무와 같은 유형기 시절이 있었다.
밤마다 울던 아이를 품에 안아주고,
눈빛을 좇아 욕구를 채워주고 품으니 순한 아기가 되었다.
몇 번의 계절을 보내며 쌓은 신뢰로 끈끈한 애착이 생겼다.
자연에서 뛰어놀며 책으로 호기심을 채웠고, 사교육 없이 키워도 불안하지 않았다.
10년 뒤, 당당히 서 있을 아이의 모습을 그리며 담담히 시간을 보냈다.
절대 조급하지 않게.
한글책을 많이 읽어줬지만
여섯 살에 한글을 뗐고,
퍼즐 한 조각도 제대로 맞출 집중력이 없었다.
돌아보면, 그때의 깜깜한 시간을
묵묵히 기다리며 지켜줬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던 날들이
뿌리를 깊고 넓게 내리는 시기라는 걸
첫째를 키우며 알고 있었다.
아무도 몰라주는 그 시간을 버텨야 된다는 것을.
얼마 전,
“재는 안 하는데 왜 나는 이걸 해야 돼?”
숙제가 많은 상황에 억울해하는 딸아이.
사춘기가 되고 태도가 좋지 않아 많은 실랑이를 겪었다.
다시 돌아와 육아하며
제일 피하고 싶은 그분이
어김없이 또 찾아왔다.
좋은 태도를 기르려 애를 썼지만
머릿속 뇌 공사가 어지러운 생활로 이어졌고,
그간의 노력이 헛수고로 느껴졌다.
가방을 열어젖힌 채 허둥지둥 뛰어가는 딸아이.
가방문 잠가~~
예전 오빠의 머리채를 움켜쥐며 깨우던 10년 전 그때처럼
동네 떠나갈 듯 소리 지르는 무식한 엄마의 모습이 불현듯 튀어나왔다.
“울지 마, 울지 마.”
나를 달래던 아이는 이제
키와 외모를 고민하는 사춘기 소녀가 되었다.
여드름 로션을 찾아 주며 방법까지 일러뒀지만,
스스로 관리하지 않았고, 요즘 따라 더 정신을 놓고 다녔다.
특목고 입시를 준비하려니 조급증이 올라왔고,
급기야 공부시키는 명분으로 캠프까지 빼려다 담임에게 걸려 얼굴까지 붉혔다.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와 아이를 키워도 여전히 조바심 내는 엄마.
유독 이 시기에는 왜 기다려주지 못하고,
시작도 해보지 못한 아이에게 상처를 내고 있는가?
내 아이뿐 아니라 공부방 아이들 대부분이 사춘기인데, 지켜보면 속만 탄다.
나이에 맞게 '저절로 익어가게' 자유롭게 기다려주고 싶지만,
내 안의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터져 나오고,
'기다림의 미덕'을 쌓겠다는 다짐뿐이고, 오늘도 내 감정 때문에 아이에게 미안해하고.
때가 되면 저절로 익어가고 세상에 내버려 둬도 자기 방식으로 자라지만,
엄마로서 내 마음은 언제나
"이렇게 두면 망가지진 않을까?"
"내가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불안, 조급, 후회의 온갖 감정이 매일같이 툭툭 튀어나온다.
또, 자신의 마음을 갉아먹으며 조바심 내는 한 아이.
소중한 네 마음 토닥토닥 잘 달래
담담히 기다리며 스스로 지켜줘야 한다고.
언젠가 꿈꾸던 그곳으로
날아오를 그날을 위해
매일 기분 좋게 그 꿈을 꾸자고 달래 주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호르몬의 영향도 있지만,
자신감의 균열에서 사춘기가 시작된다.
각자의 색과 속도를 찾아가는 시기지만,
주위를 보며 비교하고 마음속 방에 자신을 가둔다.
사춘기는
그저 변덕이나 반항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는 재성장의 시기다.
몸도 마음도 정체성도
완전히 바뀌고 새로 짓는 혼돈의 시간.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 마음은
조마조마하고 불안하다.
‘내가 뭘 잘못했나?’
끝없이 자책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사춘기 아이는
엄마의 ‘말’보다 ‘존재’를 기억하고,
잔소리보다 기다려준 ‘시간’을 기억하고,
비난보다 지켜봐 준 ‘시선’을 기억한다고 한다.
아이의 몸과 마음 어딘가에는
“엄마가 나를 밤새 안아줬던 기억”이 뿌리처럼 남아 있다.
그래서 사춘기 갈등과 좌절이 있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사춘기는
유형기를 지나 줄기를 뻗는 나무처럼
부모품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몸짓과 생각을 키우는 시기다.
조금씩 흔들리더라도
다시 중심 잡고 돌아올 거라는 믿음으로
그 시간을 지나야 한다.
2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큰아이.
지금처럼 잘 자랄 줄 알았다면
불안하지 않고 그 시기를 여유 있게 지나지 않았을까.
태어나 울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내던지던 예민한 둘째의 사춘기를 짐작하지 못했고,
사춘기가 오니 그 예민함이 완전히 다른 얼굴로 나타났다.
처음엔 무심코 넘겼고 시간이 지나며
내가 놓친 것이 보이자
당혹감과 현실의 벽 앞에 막막함조차 느꼈다.
26년간 육아만 한 내가..
그것도 남의 집아이 사춘기까지 죄다 맡아 키우면서
내 아이의 마음은 보지 못하고 있었다.
허벅지 찔러가며 참고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시기별로 적절히 대응하며 키웠다는 착각 속에
모든 엄마들이 아이와 겪는
인생의 한 구간을 무심코 지나치고 있었다.
지금처럼 끊임없이 다짐하고, 자책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해 둘째의 사춘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사춘기는 아이와 엄마의 성장의 시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