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나의 상처가 철학이 되기까지

'운동하는 공부방'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by 고백맘

‘운동하는 공부방’의 철학은 복잡한 교육 이론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너져 내린 내 삶의 폐허 위에서 피어난 것이다.

그 뿌리에는 선명한 세 가지 상처가 박혀있다.



체력 부족으로 혹독한 사춘기 전쟁을 치러야 했던 큰아이.

몸 관리를 소홀히 해 암 수술을 받아야 했던 나 자신.

그리고, 코로나 시절 암 투병을 시작한 공부방 엄마와 그 아이들.



그 시작은 큰아이와 겪은 사춘기 전쟁이었다.

아이는 방문을 쾅 닫고 밤새 게임을 했고, 아침마다 지옥 같은 전쟁을 벌였다.

잠과 피곤에 취해 무기력하게 하루를 흘려보내는 아이를,

나는 이해하지 못하고 아이 탓만 했다.

수많은 육아서를 읽고서야 깨달았다.

문제는 ‘체력의 부재’였음을.


나는 공부로만 아이를 몰아붙였던 무지한 엄마였고,

체력을 키울 생각 대신 영양제만 검색하던 어리석은 엄마였다.

그 어리석음의 대가는 혹독했다.



두 번째 상처는, 암 진단을 받고 무너져 버린 나의 삶 그 자체였다.

큰아이를 키울 때, 내 입보다 아이 입에 들어가는 게 먼저인 엄마였다.

학원을 실어 나르며 차 안에서 끼니를 해결했고,

오직 공부만 시켰다. 다행히 아이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며 내 어깨를 으쓱하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위해 집을 비워야 했다.


수술방에서 나와 마취가 채 깨기도 전에 큰아이 걱정으로 전화부터 찾았다.


"이거 했어? 저거 했니?“


병원 침대에 누워 동동거렸지만, 내가 온 생을 바쳐 쌓아 올린 '엄마'라는 성(城)은

그렇게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엄마의 부재 앞에서 아이는 새벽까지 게임을 했고,

엄마의 숟가락질 없이는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했다.



나는 그제야 보았다.


아이의 '손과 발'이 되어주다 못해, 스스로 설 수 없도록 그 '손과 발'을 잘라버린 사람이었음을.

그러고는 '왜 안 할까?'라며 아이만 탓했다.


나 역시 친정엄마의 울타리 뒤에 숨기 바빴던 딸이었다.

나약하고 성장하지 못한 엄마가, 과거의 나를 복제하듯 '약한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수술 후 회복 기간, 온전히 나를 바라보며 삶의 모든 방향을 전환했다.

그 깨달음으로 당시 3살이었던 둘째는, 체력과 마음이 단단한 아이로 자라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코로나가 터졌다.

멈춰버린 일상 속에서,

공부방의 한 엄마가 갑작스러운 암 투병을 시작했다.


5년 전, 수술실에 들어가며 아이들을 두고 와야 했던 내 모습이 그 엄마에게 겹쳐졌다.

엄마의 무너진 마음과 길 잃은 아이들의 불안한 눈빛이 내게 외치고 있었다.



그 절박함이, 30년 전 잊고 지냈던 내 안의 '씨앗'을 깨웠다.

30년 전, 삼성 신경영추진팀에서 조직의 정신을 교육하던 그 젊은 날의 모습이

훗날 아이들을 이끌게 될 ‘선생’의 씨앗이 되어

코로나 때, ‘위기를 기회로, 교육의 신경영’을 외쳤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의 낡고 오래된 징검다리가 되었다.


"엄마가 건강해야, 아이들이 바로 선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운동하자!"

"공부 이전에, 운동으로 체력을 먼저 키워야 한다!“



새벽 6시, 운동장으로 집합.

이렇게 나의 상처, 큰아이의 아픔, 그리고 한 엄마의 절박한 눈물이 모여

'공부방 아침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공부방의 철학이 되었고,

그 철학은 지난 5년간 공부방을 지탱하는 시스템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