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서 피어난 공부방
내가 운영하는 이곳은 '운동하는 공부방'이었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걷고 뛰며, 새벽 운동과 주말 등산을 6년간 이어온 곳.
이곳은 지식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학습, 생활, 인성까지 함께 책임지는 작은 공동체였다. 성적은 결과일 뿐, 몸과 마음의 체력이 먼저라고 믿었다.
엄마들에게는 '집밥'을 권했고, 아이들과 운동장, 산에서 함께 땀 흘리며 호흡했다.
나는 수없이 되물었다.
이 아이들에게 진짜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스무 살이 넘어 세상에 나갔을 때,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독립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그래서 운동을 시켰고, 글을 쓰게 했고, 좋은 습관을 몸에 새기게 했다.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싶었던 것은 당장 눈에 보이는 꽃이 아니었다.
그것은 땅속 깊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묵묵히 뿌리내려야만
진정한 힘을 발휘하는 산삼(山蔘)과 같은 기운을 심어주고 싶었다.
몸의 체력, 마음의 근육, 스스로 일어서는 힘.
이런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지탱하는 진짜 보약인 셈이다. .
하지만 화분에 심긴 꽃은 산삼을 이해하지 못한다.
땅 위로 화려하게 피어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땅속으로만 파고드는 그 뿌리를 어리석다 비웃을 뿐이었다. 당장 성적이라는 꽃을 피워내지 못한다고 무능하다 조롱할 뿐이었다.
그래도, 사춘기 아이들에게 왜 운동이 필요한지,
학습보다 운동이 왜 먼저여야 하는지,
그것이 뇌에 어떤 영향을 주어 학습으로 이어지는지,
엄마들을 설득하고 또 설득하다 나를 태웠다.
교육에 대한 꼿꼿한 소신과 철학으로 버텼다.
특히 올해 고교학점제가 도입되자, 그 '조롱'은 거센 '현실'이 되었다.
학교 활동과 선생님의 역할이 절대적이 되자, 나의 존재는 '일개 생계형 공부방 선생님'으로 전락했다.
엄마와 아이들은 '아침 운동'이라는 나의 철학 속에서 함께 지쳐갔고,
성적'이라는 꽃은 피어나지 않으니 신뢰도를 잃었다.
'산삼'을 키우겠다는 내 철학은 그저 '우습게' 들릴 뿐이었다.
세상은 급변하는데, 교육 현장은 여전히 성적으로 아이들을 줄 세우고, 등급을 따기 위한 공부를 한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자기 뜻을 펴보지도 못한 채 마음을 다치고, 세상과의 벽을 쌓아간다.
마음이 아팠다.
잘못된 습관이 밴 몸으로 무언가를 성취하기란, 끝없는 자기 싸움이 될 것을 알기에.
아이들에게 좋은 습관을 선물하고 싶었다.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돌보고,
글을 쓰며 마음을 정리하고,
마침내 학습의 힘을 스스로 키워낼 수 있는 아이들로 자라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함께 활동하는 시간이 많으니 내 바람과 다르게 서로 오해가 쌓이고,
부딪히며 지쳐갔다.
그날 밤. 스러진 건 한 사람의 생명만이 아니었다.
내가 온 생을 바쳐 쌓아 올린 성(城)이,
그 모든 믿음과 헌신이 잿더미가 되어 무너져 내렸다.
다 놓고 싶었다.
열심히 살았다고.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혼돈의 밤을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