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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애 Nov 01. 2020

유감있는 세상
유머로 비튼다

[작가의작가]12.유머 : 무라카미 하루키의 창작 멘토

“이것은 아주 빠른 속도로 죽어가고 있는 어느 별 위에서 외롭고, 깡마르고, 꽤 늙은 백인 두 사람이 만나는 이야기이다.”

 하하. 첫 문장부터 벌써 뭔가 대단한 이야기를 시작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장난기 가득한 작가가 ‘보그체’ 감성으로 독자를 골려주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꼭꼭 감춰서 궁금증을 유발하는 전통소설 구조와 달리 결론부터 미리 알려준다. 결론을 알고 있으면서도 뒷 이야기가 더 궁금해지는 것은 커트 보니것의 범우주적 유머 감각 때문이다. 유머 코드는 분명 4차원이다. 한 번 읽으면 ‘아무말 대잔치’인가 싶다가도 잠시 후면 킥킥 거리며 어깨춤을출 지 모른다. 50년 뒤라야 이해될 법한 물론 시간을 앞질러 그 전에도 빵빵 터졌을 삐딱한 유머는 생각없이 웃을 수 없다. 현실 문제를 직시하게 하는 불친절한 유머는 가끔 슬프다. 그런 식이다(And so on). 


하하. 플롯 자체도 4차원이다. 사실, 읽기는 다소 불편하다. 소설 속에 소설이 펼쳐질 뿐만 아니라 일련의 인물들과 사건들이 가상과 실제를 오가는 탓에 시공간의 경계가 흐릿하다. 화자가 전능한 소설 밖 작가로서 ‘나’인지 아니면 SF소설가킬고어 스타우트인지, 아니면 미친 자동차 딜러 드웨인 후버인지 종잡을 수 없다. 조각보처럼 흩어져 있는 사건과 인물들의 이야기는 어떻고. 기상천외한 킬고어의 단편을 읽다가 웃다보면 다시 멍해진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갈 곳 잃은정신줄을 어디서부터 부여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심호흡 한 번 하고 대체로 제정신인 킬고어 스타우트만 잘 따라가다보면 어느 새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한 그와 함께 소설의 종착지인 미드랜드 시티에 와 있다. 그런 식이다. 


하하. 실로 하찮게 보이는 무의미한 글쓰기가 세상에 어디있단 말인가. 킬고어 스타우트만 모르는 4차원 SF덕후들이 있었다. 그의 소설들은 포르노 잡지에 실렸다가 소리소문 없이 운명을 달리했고 그는 알루미늄 창틀을 팔아 근근히 먹고사는 무명작가다. 어느 날 백만장자 로즈워터로부터 펜레터가 도착하고 뒤이어 예술 축제 의장인 프레드 베리로부터 축제의 연사로 참여해달라는 초청 편지를 받는다. 제정신이 아닌 드웨인 후버는 그의 소설을 읽고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인간은 프로그래밍 된 로봇이라고 믿고 있다. 할리데이 인 호텔 리셉셔니스트 밀로 마리티모는 거지꼴로 나타나 개떡 같은 멘트를 날리는 킬고어를 콩떡 같이 한 눈에 알아보고 스위트 룸으로 안내한다. 폭탄 제조사이자 건설사인 배리트론은 그에게 주식 한 주를 선물로 준다. 그런 식이었다. 


하하. 4차원 이야기가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드웨인 후버는 왜 미쳤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혼자만 미칠 수 없어서. 드웨인은 킬고어가 쓴 소설 그 자체를 그대로 믿어버린다. 내용은 이렇다. 조물주가 자유의지를 가진 유일한 인간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낸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인간은 자신을 섬기기 위한 기계이고 기계 로봇의 목적은 조물주가 기계를 통해 유일한 인간을 자극해서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재력가이지만 드웨인 후버는 커다란 저택에 상처투성이 반려견 스파키와 홀로 산다. 아내는 세제를 마시고 자살했고 아들은 게이다. 드웨인의 정신적 착란을 발견하고 돕는 주변 인물은아쉽게도 없었다. 광기로 휩싸인 드웨인은 킬고어를 만났을 때도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소설을 낚아채 폭식하듯 단숨에 읽어버린다. 결국 모든 인물을 뭉게버리는 드웨인의 난동은 킬고어 소설에서 촉발됐고 그 소설 속에서 폭발한다.드웨인 모습에서 70년대 미국의 실상을 엿볼 수 있다. 물질적 풍요 속 정신적 빈곤을 겪는 한 인간을 광기와 유머로 비트는 작가의 의도, 나아가 작가의 정치적 입장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식이다. 


하하. 작중 화자인 ‘나’는 미술도 비튼다. ‘나’는 대체로 예술가에 호의적이지 않다. 축제초청 화가인 카라베키안이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멍청하다는 느낌을 갖게 하려고 백만장자들과 짜고 그 말도 안되는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카라베키안 스스로 “‘성 안토니오의 유혹’은 수직의 흔들리지 않는 빛 한 줄기를 그렸다”면서 자신의 작품에 의미 부여하지만 웨이트리스 바니 눈엔 “다섯 살짜리 그림 보다 못”하고 호텔 직원들 눈엔 그는 그저 “초록색 캔버스에 노란색 형광 테이프를 붙인 댓가로 5만불 받은 사람”일 뿐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화가 바질홀워드는 자신의 영혼이 투영한 전무후무한 미소년의 초상화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했다면(작가의 작가-11.이상 참고)  ‘나’는 상상력으로 직사각형의 식탁 위에 선 한 줄을 그려 ‘성 안토니오의 유혹’이라는 제목을 붙여보는 것으로 독자를 웃긴다. 그런식이다. 


하하. 유머와 광기는 틀림없이 한 끝 차이다. 200페이지를 넘어갈 즈음 인내심에 슬슬 한계가 왔다. 좀이 쑤시고 페이지를 이리 뒤적 저리 뒤적거리면서 잘 기억나지 않는 등장 인물들의 이름을 다시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이야기에 빠져들때즈음 이건 분명 미친 짓 같았다. 다소 미친 인물들이 미친 동네에서 미쳐가는 이야기인가 싶어서.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경계도 없고 인물 하나하나에 개성과 독특한 개인사가 있다보니 광기에 휩싸인 유머 코드는 명왕성을 행성으로 불렀던 시절로 되돌아 가야 하는 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찰나 ‘나’의 중요한 독백이 이어진다.‘나’는 주인공과 조연을 가르고 중요하고 덜 중요한 일상, 시작과 중간, 끝이 있다고 믿게 만드는 이야기 속 질서를 거부한다. ‘나’는 실제 인생을 살지 못하는 미국인들을 위해 이야기를 꾸미는 대신 ‘인생을 쓸 것’이라고 선언한다. 새로운 문학적 방법을 찾겠다고 선언한다. 2차 대전을 겪고 드레스덴 폭격에서 살아남았던 작가가 사소한 인물마다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19장이 이 소설의 백미다. 그런 식이다. 


하하. ‘나’는 지구인보다 외계인에게 친절한 걸까. 신호인지 메시지인지, 교본인지 알 수 없는 일러스트들이 소설 곳곳에 흩어져 있다. 성(조)기, 항문, 간판, 묘비명, 광고 문구, 심지어 분자식까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외계인의 교본정도로 여기는 건지. 마지막 챕터에 등장하는 킬고어의 소설 ‘범우주적인 메모리 뱅크’는 짧지만 강렬하다. “주인공은 길이가 200마일 지름이 62마일인 우주선에 타고 있다. 그는 자기 동네에 있는 지부 도서관에서 사실주의 소설 한 권을 빌린다. 그는 그것을 약 60페이지 정도 읽다가 다시 돌려준다. 사서가 그 소설이 마음에 들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대답한다.나는 인간에 대해 벌써 알고 있습니다.” 범우주적 농담은 이렇게 툭 던지는 건가. 그런 식이다. 


하하. 무슨 사연인지 커트 보니것의 작품 중에 유독 <챔피언들의 아침식사>는 국문 단행본으로 만날 수 없는지 모르겠다. 중고책으로 구할 수 없어서 국회 도서관에서 부랴부랴 제본 했는데 이런 덕질은 드레인 후버스럽다. 2001년 판본을읽은 탓에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표현, 예를 들면 ‘조우크(joke)’를 발견하거나 오자 치중(체중의 잘못)정도는 넘어갈수 있는데 재차 읽어도 이해가 안 가는 문장이 곳곳에 많아 아쉬웠다. 특히 “왜 그렇지 않겠는가? 이치에 닿지 않도록 되어 있는 우주에서 언제나 이치에 닿는 생각을 해내야 하는 것은 분명히 힘든 일이다.”보다는 “왜 안그렇겠나? 물론 지칠만하지. 제정신이 아닌 우주에서 항상 정신줄 잡고 살아야한다고 생각해보게.”로 슬쩍 고쳐봤다. 이것이 소설 속 소설‘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결정적 문장인데 말이다. 그런 식이다. 


하하. 여담이지만 커트 보니것은 무라카미 하루키 덕을 많이 봤다. 하루키가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발표했을 때 눈치 빠른 독자와 비평가들은 보니것의 영향을 받은 거 같다고 앞서 평가했다. 실제로 <상실의 시대 >는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하루키 영향 뿐만아니라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로 유명한 더글러스아담스부터 박찬욱 감독, 김중혁 작가까지. 기타 등등. 등 하나 끝에 포함될 최 아무개 등등등. 웃기지만 설명할 방법이없는 소설이니 읽어보면 안다. 유쾌한 카오스를 마냥 즐기자. 작가의 작가 진짜가 나타났다. 그런식이다.


커트 보니것의 <챔피언들의 아침식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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