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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선생 Apr 15. 2022

손바닥

아이들의 안전사고

하루는 중학교 2학년 교실에 들어갔는데, 탄내가 났다. 쉬는 시간이라고 해야 고작 5분. 그 사이에 남학생 하나가 온열기에 장갑을 태워먹은 것이다. 자칫 화재가 날 수도 있던 일이라 녀석에게 어찌나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는지 모른다. 이미 이전에 머리카락을 넣어 태웠던 전적이 있는 녀석이라 배로 혼을 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온열기에 무언가를 태우는 아이는 그 녀석 말고도 몇이 더 있었다. 매년까지는 아니지만 2~3년에 한 번은 있는 사고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중학생이나 되어서, 온열기에 과연 이게 탈지 궁금했다고 말하는 것 역시 매번 똑같다. 온열기 대신 열풍기, 히터로 바꾸면 사고가 안 날줄 알았지만 웬걸 바람이 나오는 구멍에 연필을 넣어보려는 시도를 하는 녀석들이 있으니, 이건 기기를 바꿔서 될 일이 아니라 잔소리에 잔소리를 해야 해결될 일이다.


사실 교실에서 제일 흔하게 일어나는 사고 중 하나는 앉은 의자를 흔들흔들거리다가 뒤로 벌렁 자빠지는 일인데, 그렇게 다친다고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소리를 쳐야 그만둔다. 정말이지 아이들은 그걸로 넘어져서 다친다는 생각을 못한다. 아니 말을 그렇게 해도 그 습관적으로 그러고 앉아있는다. 결국 강제로 어깨를 눌러서 바로 앉게 하는 수고를 몇 번을 해야만 하는데, 일 년 내내 나와 그 문제로 다투던 아이도 있었다. 다친다는 내 말이 아이 귀에는 정말 귀찮은 잔소리였겠지만 선생인 나는 정말 절박한 외침이었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다친다고 말이다.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가 익숙하면 안 되는데, 이걸 익숙하게 만들었던 학년도 있었다. 저들끼리 장난을 치다가 강의실 문에 끼워져 있는 작은 유리창을 깨 먹고, 벽에 걸려있던 시계를 떨어트려서 깨뜨리기도 했다. 도대체 너희는 쉬는 시간에 몸을 가만히 둘 수 없는 거냐고 하소연해봤자 소용이 없다. 그저 혈기왕성한 사춘기 아이들이니 하고 내가 더 신경을 쓰고 잔소리하는 수밖에 없다.

문에 관해서는 또 황당한 사건이 있었다. 건물 화장실 외부에 두꺼운 철문이 있는데 열어둔 채로 고정되어 있는 문이었다. 그 철문은 닫히면 자동으로 잠기고, 마스터키가 아니면 열 수가 없는 문이라서 문 앞에 묵직한 통으로 닫히지 않도록 막아놨다. 그런데 장난을 치다가 저들끼리 신난 녀석들이 친구를 가둔다고 무거운 철문을 굳이 닫았다. 결과는 예상대로 안에 아이가 갇혔고, 건물주에게 마스터키를 요청해서 겨우 아이를 꺼냈다. 그 문이 그렇게 고정되어 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애들은 모르니까 저지른 장난이었지만, 사실 그땐 그 문이 그렇게 안 열릴 줄은 선생님들도 몰라서 너무 당황했었다.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애들 때문에 119에 신고한 것만 두 번이다. 한 번은 이용하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한 엘리베이터를 탑승한 학생이 결국 그 엘리베이터에 갇혀서였다. 우리 학원은 저층이라 사실 계단 이용에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 굳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녀석들이 엘리베이터에서 장난을 치는 것이 문제가 되어서 탑승을 금한 상황이었다. 언젠가 우리 애들이 엘리베이터를 고장낼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날 딱 고장이 나서 애가 갇혀 버려서 결국 119에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가장 최근의 일인데, 같은 반 여학생이 끼는 반지를 장난 삼아 제 손가락에 꼈던 남학생이 결국은 그 반지가 빠지지 않아서 당황해 나를 찾았다. 함께 그것을 빼보려고 시도도 해봤지만, 애 손가락만 부어가고 이러다 큰일 나지 싶어서 결국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때 알게 된 생활정보인데, 119 안전센터에 방문하면 반지를 절단해준다. 우리 학생은 결국 그렇게 반지를 절단해서 무사히 손가락을 지켰다. 아이가 안전센터에 가서 반지를 자르러 가는 사이에 같은 반 아이들이 손가락을 자르는 거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떠들었던 것은 덤이다.


그래도 내 손바닥 안에 있을 때는 괜찮다. 위험한 행동이 도를 넘기 전에 막을 수 있고, 크게 혼을 낼 수도 있으니 교정도 가능하다. 위급 상황에 그래도 애들보다는 어른들이 더 나으니 잘 수습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어른들의 손바닥을 벗어났을 때 일어난다.


뛰지 말고 천천히. 조심히 다녀와. 요 앞에서 사고 났던 형, 오빠도 있어. 알겠지?


책을 가지고 오지 않아서 집에 잠시 다녀오겠다는 아이들이 가끔 있다. 빨리 뛰어갔다 오면 5분 안에 다녀올 수 있다는 장담을 하면서 다녀오길 요청한다. 때로는 쉬는 시간을 이용해 편의점에 다녀오겠다고 하는 아이들도 있다. 학원에서 있는 시간이 고작해야 3시간이라고 해도 건물 밖으로 잠시 나가기를 요청하는 아이들은 꾸준하게 많다. 그때마다 내가 신신당부하며 하는 말이다. 내가 하도 말해서 우리 애들은 익히 아는 사실인데, 잠깐 사이 편의점 다녀오다가 골목에서 교통사고가 났던 아이가 있었다. 녀석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다행히 심한 사고는 아니었지만, 당시에 모두가 놀랐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하다. 그 일이 있고 한동안은 아예 학원에 들어오면 다시는 나가지 못하게 막으니 아예 몰래 빠져나가서 허락을 받고 주의를 듣고 나가는 것으로 바꿨다.


어느 여름 퇴근길. 익숙한 뒷모습의 학생 둘이 신이 나서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학원이 끝나서 신나서 뛰어가는 것 까진 좋았는데, 빨간불이 분명한 횡단보도를 차가 없다는 이유로 전력 질주해서 건너고 있었다. 내가 불러서 멈추면 더 큰 사고가 날까 봐 아이들이 안전하게 다 건너는 것만 보고, 다음날 두 아이를 잡고 그 어느 때보다 더 씩씩거리고 화를 냈다. 160도 안 되는 작은 선생이 170이 훌쩍 넘는 녀석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키는 170에 나이는 17이지만, 7살 꼬마만도 못하니 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학원 밖에서의 행동까지 잔소리하는 선생을 아이들은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지만, 내 눈으로 본 이상 혼을 내야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정말 종일 손바닥 안에 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나는 점점 더 잔소리꾼이 되어간다.


저층이니 그냥 계단으로 다녀라. 문에 매달리지 마라. 학원 앞 골목길 차 조심해라. 계단에서 뛰지 마라. 계단 난간에 올라가지 말고, 매달리지 마라. 온열기 안으로 뭐든 집어넣지 말아라. 창문 밖으로 고개 내밀지 마라. 의자 바로 하고 뒤로 기대지 마라. 운동화 끈 풀린 채로 다니지 마라 묶어라. 핸드폰 보면서 계단 내려가지 마라. 횡단보도에서 핸드폰 보지 말아라. 등등.

 

물론 이 잔소리만 하면 애들은 그냥 허투루 듣기가 일수다 그래서 그 뒤에 나는 꼭 이걸 붙인다.


그러다 너희 선배(언니, 오빠, 형, 누나)가 다쳤다. 119를 불렀다. 그러니까 제발 하지 마라.


그렇게까지 말해야 겨우 안 하기는 하지만, 잠시 또 내 감시가 소홀해지면 엉뚱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애들인지라, 학원에 있는 그 순간에는 정말 오감을 열어놓고 아이들을 감시한다. 제일 안쪽 강의실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나서 쫓아가 보면 온열기에 종이 조각을 넣으려 시도한 녀석과 그걸 말리는 아이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던가 한다. 결국 나는 또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다.


단 한 번의 실수이건, 장난이건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위험한 행동이었고 다칠 수 있었으며, 다시는 벌어지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고래고래 내지른 내 소리에 아이들은 '화'만 읽었겠지만, 사실 나는 두렵다. 너무너무 공포스럽고 무섭다.


사실 선생님은 너희가 다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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