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안 가니?
수업이 모두 종료되고, 학원 문을 닫기 위해서 마무리 정리를 할 때였다. 중학교 남학생들 한 무리가 집에 가지 않고 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수업 빨리 끝내 달라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이고,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집으로 달려나가는 것이 아이들인데 뭔 일인가 싶었다.
영어 선생님이랑 같이 가려고요!!
씩씩하게 돌아온 아이들의 대답. 영어 선생님 댁이 학원 근처라서 방향이 같은 아이들이 함께 가기로 했다고 했다. 늦은 시각. 거리로 나온 아이들은 영어 선생님의 옆에 무리지어 서있었다. 죄다 시커먼 패딩을 입고 있고 선생님 주변을 둘러싼 모습을 보니 웃음이 터졌다. 왁자한 아이들 사이에 차분한 성격의 영어 선생님이 피곤하실까 걱정이었다. 선생님 괴롭히지 말라는 말을 내가 농담조로 하자. 아이 중 하나가 외쳤다.
저희가 보디가드에요!!
그래그래. 너희가 선생님 잘 모시고 집에 가라고 했지만, 덩치만 산만하지 그래도 애들이라 누가 누굴 지키겠다는 건가 싶었다. 아이들이 정말 선생님을 위험으로부터 지키겠다고 기다린 것이 아님을 안다. 그저 아이들은 선생님과 함께 가는 그 길이 즐거워서 기다리는 것이다. 좋아하는 선생님과 그 잠깐의 시간을 같이 하는게 좋아서 말이다. 아이들은 정말 이유없이 선생님을 마냥 좋아해준다. 아이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소수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아이들은 선생님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준다. 내리사랑이라고 하지만, 아이들의 순도 백프로의 애정을 받아보면 느낌이 다르다. 오히려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퍼부어주는 그 사랑이야 말로 진짜다. 매체에서 떠들어대는 '문제 많은 요즘 아이들'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대다수의 아이들은 사춘기 중학생임에도 맑다. 아니 어쩌면 그 나이라서 더 맑은 것도 같다. 수업이 5분이라도 빨리 끝나면 세상을 다 가진 것 처럼 굴면서 신나하는 녀석들이 무려 10분이나 선생님의 퇴근을 바라고 기다리고 있는다. 세상에 이보다 더 한 참 사랑이 어디있는가. 어쨌든 그날 이후로 아이들은 영어 선생님의 전담 경호원이 되어서, 선생님을 기다리고 선생님의 퇴근길을 동행했다.
아직 집에 안 갔어?
학원 앞을 지키고 있는 녀석들에게 내가 물으니, 녀석들 중 하나가 씩씩하게 외쳤다.
오야붕 기다렸어요!
영어 선생님을 기다리면서, 국어 선생님에게 하는 대답치고는 상당히 불량했지만, 그래도 웃으면서 봐줬다. 선생님과 함께 가면서 그 짧은 수다가 마냥 즐거운 녀석들이 너무 예뻐서 말이다. 골목 반대편으로 향하는 영어 선생님과 아이들의 뒷모습. 지친 퇴근길에 그 풍경보다 더 한 위로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