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군대는 사회라는 홍수를 막아주는 벽일지도

by 고채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서 어느새 나도 중대 내에서 고참이 돼 가고 있었다.

여러 간부들과도 친해져서 편하게 지내고 이젠 선임들과도 장난도 치고 편하게 지내는 위치까지 온 것이다.


내 생각엔 전방에 작은 소초로 옮겨오면서 더 자주 마주치고 근무도 24시간 다른 소대 인원들과 돌아가니

시간을 녹이기 위해서라도 대화를 자주 하고 휴대폰 없이 놀거리를 찾다 보니 더욱 그런 것 같다.


오늘은 군대에서 보내는 평범한 일상들을 적어보려 한다

우리 소초에는 컴퓨터 4대가 있는 싸지방(싸이버 지식 방)이 있었는데 휴대폰을 못쓰는 시간에는 경쟁률이 장난 아니었다.

특히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은 피카츄 배구 게임이랑 무슨 나루토 캐릭터들로 하는 게임이었는데 정확히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혹시 제목 아시는 분 있으면 댓글에 남겨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같은 방에 문 하나를 두고 옆에는 이발실이 있었다.

말이 이발실이지 그냥 의자 하나 거울에 바리깡 몇 개가 끝이었다.

특히 해병대 머리는 엄청난 기술을 요구하는 머리가 아니었기에

누구나 잠깐 배우면 금방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항상 초반 연습 대상은 일이등병이었다…(주륵)


나도 일병 때까지는 싸지방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만약 새벽 근무 중 휴식시간이 오면 정말 할 게 없어서

밖에 찬바람 좀 쐬거나 목도 안 마른데 괜히 물도 마시고 했던 생각이 난다


건물 밖을 나오면 강화대교와 염화강을 볼 수 있었는데

그 강을 보면서 휴가 가는 날, 집 가는 날을 정말 매일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뭐든지 시간이 지나면 지난 시간들과 사건들이 좀 미화되는 걸까?

이제 눈치를 안 봐도 되는 계급으로 오니 그동안의 일병시절을 버텨낸 게 뿌듯하고 힘들었지만

추억으로 남았다.


뭐가 됐든 간에 그 당시 무서웠던 선임들 중 알고 보니 정말로 못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운이 좋았다)

다들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도와주려는 사람들이었다.


사실 전방 근무를 서면 외출이나 외박이 제한되는 게 많아서

중대장님이 야간에 구보를 뛸 수 있게 허락을 해주셨다.

그리고 100km를 채울 때마다 휴가를 하루씩 주셨고.


그래서 운동을 싫어하는 애들도 다 같이 뛰러 나가면 흔쾌히 같이 나갔고

열심히 뛰고 와서 땀 흘리고 오면 그때 다 같이 하는 뜨거운 물 샤워는 세상에서 제일 개운했다.




전방에는 PX가 없었는데

그래서 일주일마다 오는 황금마차라는 존재를 기다렸다.

그냥 px를 큰 트럭에 옮겨놓은 건데 다른 소초도 거쳐오기 때문에

가끔은 원하는 물건이 없기도 했다.


게다가 전날 새벽근무를 서서 오침 중이라면 뭐 사러 가지도 못한다.


그래도 전체 인원이 소수이고 위에서 크게 간섭받지 않다 보니

우리끼리 할 수 있는 게 많았다.

예를 들면 금, 토일마다 조리병들이 특식을 만들었다.

남아 있는 재료를 이용해서 가끔은 이름 없는 요리를 만들거나

대형 라면을 끓이거나 등 항상 이렇게 해 먹었다.


예비대에 있을 때는 각 생활반마다 티비가 있었는데

전방에는 식당에만 티비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저녁에 할거 없는 애들은 모두 식당에 모여서 특식을 먹고 걸그룹 영상이나 예능을 봤었고

당연하게도 뒷정리는 막내라인들이 했다.


내가 지금 생각해 봤을 때 잘한 것 중 하나는 일기를 꾸준히 써왔다는 것이다.

거의 처음 전입 오고나서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초반에는 선임들의 의심을 좀 받았었다.

이유는 혹시나 일일이 다 적어서 신고하지는 않을까여서였다.

하지만 그 의심도 내가 몇 개월 동안 쓰니 그냥 저런 앤 가보다 하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분명 내가 학생 때마다 해도 군인을 보면 엄청 성숙해 보이고 어른 같아 보이고 그랬었는데.

막상 내가 군인이 되어서 보니 아직 한참 어린애들뿐이고 성숙해지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동기들끼리도 훈련소에 있을 때 자주 얘기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가 제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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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군생활하면서 힘든 시절은 있었어도 입대한 걸 후회한 적은 없었다.

적어도 나한테는 시간낭비가 아니라 인생에서 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경험과 인생을 배우는 곳이었고

사회에 나와보니 그 군대에 있는 시간이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전역 몇 개월 전에는 지금 이 군대라는 존재가 앞으로 나에게 쏟아질 과제들을 임시로 막아주고 있구나

자주 느꼈다.


나에겐 생각할 틈이 생기자 사회에서의 나를 걱정하고 미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모든 남자들이 그렇듯이 군대에서 사회의 모습을 상상할 때 새벽형 인간도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막상 부딪히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