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국방부의 시계는 느리다.

by 고채윤



두 번째 휴가를 갔다 왔다.

비록 일주일이지만 어느 정도 계급이 차고 나가니 마음의 여유가 달라진 기분이었다.

휴가를 모을 기회가 많이 없고 신병들은 계속 안 들어오니 일주일이라도 휴가를 안 갔다 오면 답답할 거 같았다.


이젠 위에 선임들도 편하게 해 주고 밑에 후임들도 많아지니 복귀가 마냥 괴롭지는 않았다.

기수차이가 많이 나는 선임이 전역할 때는 사실 체감도 잘 안 나고 그리움이 컸지만

가까운 기수들이 전역을 한둘이 하니 당장의 그리움보다는 얼른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게 됐다.


오히려 상병 중반 이후로는 내 생활은 더 단순해지고 간소화가 됐다.

대부분의 작업들은 직접 하기보다는 관리를 더 많이 했고

저녁마다 후임들을 데리고 구보 뛰러 가고 체단실을 갔다.


훈련도 없이 감시근무를 서야 했으니

단조롭기는 했으나 오히려 말년까지 다칠 일이 없기에 장점이기도 했다.


사실 하루 종일 근무를 서다 보면 어떻게든 시간을 녹이기 위한 수단을 짜내기 시작하는데

여러 가지 중에 내 기억에 남는 거를 남겨보자면


각자 아는 가요를 싹 다 적어서 자체 무반주 노래방으로 만들기

기수별로 색깔 나눠서 구분해 놓기

소설처럼 군대 이야기 쓰기

끝말잇기 등 이런 식으로 컴퓨터 메모장으로 할 수 있는 건 거의 다 해본 거 같다.


주간근무일 때는 그래도 다들 활발히 움직일 때니 할 일 없는 후임들이나 말년들이 와서

얘기하고 놀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버리고

야간근무일 때는 그 시간대에 상황간부님의 썰을 듣거나 각자 TMI을 얘기하면서 시간을 녹였다.


이렇게 단조로운 시간이 많아지니 나에 대한 생각과 진로에 대한 계획을 자주 세우고 수정하기를 반복했다.

남는 게 시간이다 보니 정말 다양한 경우까지 생각해서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물론 실제로 그 계획대로 다 하진 못했지만 전역 후 어느 정도 틀을 잡을 때는 도움이 많이 됐다.




박격포 후반기 교육을 받을 때 제일 많이 듣던 말은 실제로 자대 가면 포사격은 거의 안 한다! 였다.

근데 고폭탄 사격 3회에 심지어 내 위에 선임들도 해본 적 없는 조명탄 사격까지 했다.

근데 이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걸 꼽자면 단연 조명탄인데

당시 사격을 나갈 때는 내가 최고참이라 처음으로 후임들을 이끌고 준비를 했어야 했다.


부담은 됐지만 그래도 기분은 새로웠고 후임들은 가족같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조명탄이다 보니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게다가 어두워지더라도 여단장님이 오셔야 사격을 시작할 수 있었기에 우리는 거의 밤 12시까지 기다렸다.


다른 대대까지 모인 꽤 규모가 큰 사격훈련이어서 다들 긴장도 많이 하고 사고가 터지지 않게 모든 신경을 기울였다.

초반에는 사격구호에 맞춰 각 부대별로 잘 사격을 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순서가 좀 꼬였던 거 같다.

그래서 그냥 각 부대의 구호에 맞춰서 알아서 사격하기 시작했다.


조명탄은 어두운 전장에서 아군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한 역할을 하는데

실제로 그 모습을 보니 하나의 별똥별이 떨어지는 모습 같았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그 어두운 하늘 속 우수수 떨어지는 조명탄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사격이 끝나고 뒷정리와 짐을 챙기니 시간이 벌써 새벽이 넘어갔다.

게다가 박격포도 청소를 해야 했기에 우리의 취침시간은 더욱 늦어졌다.

아무래도 많은 사격을 하고 와서 기름으로 아무리 닦아도 검은 때가 끝없이 나와서 애를 먹은 기억이 난다.




이제는 마지막 말년 휴가를 위해 원기옥을 모을 시간이었다.

내 위로 한 2기수까지는 찍턴도 없고 한 달 이상 쓸 수 있게 해 줬는데

하필 내 차례 때부터 며칠 이상부터는 못쓰게 하고 2주 단위로 갔다 와야 했다.


내가 총휴가를 52일 정도 갔다 왔는데

나중에 전역한 애들끼리 만나서 얘기해 보니 내가 정말 적게 다녀온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군대에 적응을 하면서 나도 그 환경에 맞춰서 변한 건진 모르겠지만

너무 사소한 꾸중에도 쉽게 후임들이 선임들을 신고를 하니 부족한 인원들은 더 줄어들고

후임들은 작업 노하우나 그 시절에 배워야 할 것들을 못 배우고 넘어가는 일이 잦았다.


물론 나도 많이 혼나봐서 어떤 기분인지 알지만 본인의 실수임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편안함을 위해

마음의 편지나 신고를 하니 참 간부들도 난감했다.


어떤 상황인지 뻔히 알고 있지만

신고가 들어왔으니 어떻게든 조치는 해야겠고 만약 안 하면 더 상급부대에 신고를 하려고 하니 그건 또 안 되겠고

모두가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무조건 타일러가면 알려주고 잘못이나 실수를 해도 간단한 경고 수준에만 머무르게 됐다.

나도 옛날 군대처럼 그 정도의 군기나 부조리를 바라진 않지만 적당한 군기는 오히려 서로에게 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상병이 군생활 하면서 화가 가장 많은 시기라고 한다.

상병이 되기 전 선임이 말하길 그 이유는

샌드위치처럼 선임과 후임 사이에 있고 군대에서 가장 실세역할을 하기 때문에

밑으로는 후임관리하랴 위로는 선임 챙기기도 하고 가끔은 애들 관리 못한다고 욕도 먹기 때문이다.

이 시기가 내가 짬 좀찼다고 착각하기 쉬운 시기이다.


나도 화가 없는 편인데 상병 3~5호봉 때 군생활 중에 애들을 젤 많이 혼낸 거 같다.

그러다 병장이 되면 귀신같이 마음이 고요해지고 애들이 실수를 하든 잘못을 하든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인드 장착과 한량이 돼버리는 마법이 생긴다.


참 군대는 그 중간이라는 선을 만들기가 어려운 거 같다

그리고 어떤 조치를 해도 항상 모 아니면 도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도 전체적인 방향은 나아지는 쪽이니 다행이라는 느낌도 조금은 드는 거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