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eer Speak

수제맥주와 민주주의 상관관계 下

우리가 크래프트비어를 마셔야 하는 이유

by 고첼

왜 유독 주류 중에 수제맥주만이 민주주의(소비자주의)와 비슷한 선상에 있을까? 나는 그 이유를 딱, 하나! OO에 있다고 본다.

수제맥주와 민주주의의 상관관계에 관한 내 주장을 이어나가 보도록 하겠다. 거두절미! 일단 저 OO에 대한 대답부터 하자면, 바로 ‘정신’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크래프트비어의 정신이다. 앞서 말했지만 크래프트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미국이다. 즉, 미국의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들어지는 맥주가 크래프트비어고 그들은크래프트비어를 ‘소규모의 전통적이면서도 독립적인 맥주’ 라고정의했다. 거기에 한가지 더! 바로 어떠한 ‘정신’이 가미되어야 비로소 진정한 크래프트비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크래프트비어의 철학 혹은 정신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크래프트비어의 정신과 민주주의(소비자주의)의 무엇이 닮아있다는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을 다양성 측면과 실험(괴짜)정신, 두가지로 이야기 해보겠다.


첫째 ‘다양성 측면’ 이다.

나는 미국이 크래프트비어의 중심이 된 배경을 미국 국민들의 성숙한 민주주의(소비자주의) 정신과 닮아 있다고 본다. 1919년 금주령이 선포되고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면서 미국에서는 값싼 옥수수와 쌀을 이용해서 만든 소위 대기업 ‘버드와이저’와 같은 미국식 라거 맥주가 시장을 점령했다. 당시 미국인들은 거대 자본이 집어삼킨 획일적인 맥주 맛에 자연스레 길들여졌으며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들의 정신과 반대되는 커뮤니즘적인 상황) 하지만 미국인들에게는 독립성과 개척정신 DNA가 진한 유럽 조상들의피를 이어 받았기 때문에 획일적인 라거맥주만을 마시는 것은 마치 획일성을 강조하는사회주의, 공산주의와 다를 바 없는 처사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향의 전통적인 맥주를 마시고 싶은 열망이 넘치는 사람들에 의해서 다양한 유럽 스타일 맥주 양조 방식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방식은 자연스럽게 미국의 멜팅팟(melting pot)문화를 흡수하면서 엄청나게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가 개발되었다. 게다가 1979년미국의 지미카터 대통령이 홈브루잉에 관한 법률을 허용하면서 자연스레 소규모 양조장들의 규제 법안도 개정이 되었다. 다양한 맥주를 만들고 마시기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열망이 자연스레 법을 바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가지 라거계열 맥주를 레이블과 슬로건, 컨셉의 껍데기만 바꾸는 2~3개의 대기업들이 자기들 만의 리그를 수십 년 간 이어가고 있다. 애초에 태생이 카~하고 스 르륵 목에 자극을 주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기껏해야 소주 칵테일의 베이스로 쓰이게 되었다. 애초에 맥주를 맛으로 마실 권리를 포기하게 만든 장본인들이 아무리 물 타지 않든, 세계적인 쉐프를 광고모델로 고용 한들, 소비자들은 심드렁할 뿐이다. 그리고 이 독과점 기업들은 국내에서 마련해준 든든한 법망을 통해서 경쟁자가 밥그릇에 손댈 염려는 1도 없이 지금까지는 난공불락의 거만한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주류법은 여전히 다양한 맥주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열망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2년이 되어서야 주류법안이 개정되어 수제맥주가 시장에나올 수 있었으며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14년 정도부터 수입맥주에 관심이 있는 일부 소비자들로부터 IPA, 에일 스타일의 맥주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또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현시점이 되어서야 유통과 과세방식 등 을 개정함으로써 비로소 조금은 평등한 입장에서 대기업 맥주와 경쟁할 수 있게 숨통을 열어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그랬듯 너무 짧은 시간 내에 크래프트시장의 빅뱅이 이루어진 탓에 크리프트비어가 반드시 갖춰야 할 '정신'이 없는 크래프트비어의 탈을 쓴, 소위 사이비 수제맥주가 소비자들을 우롱하기 시작하는 부작용이 범람하고 있다.


둘째 크래프트비어가 반드시 갖춰야 할 실험(괴짜)정신이다.

브루클린부루어리와 브루독 창업자

소위 성공한 크래프트비어 회사를 보면 실리콘벨리의 구글이나 애플과 같은 IT기업과 닮아있다. 스코틀랜드의 괴짜 맥주 Brew Dog의 창업자는 제임스와트, 마틴디키 그리고 골든리트리버 개 한 마리다. 이들은 에일과, 라거 밖에 없는 영국시장에서 미국식 수제맥주를 만들고 마시고 싶다는 열망에 그들의 차고에서 맥주를 만들어 팔다가 대박을 쳤다. 미국의 브루클린지역에서는 한 맥주 양조사가 그 지역에 거주하는 예술가들에게 다양하고 맛있는 맥주를 싼 값에 공급했고 그들을 지지하는 소비자 예술가들 덕분에 우범지역이고 낙후된 브루클린지역이 예술인들과 셀럽들이 모이는 트렌디한 곳으로 변모했다. 이내 브루클린브루어리 맥주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크래프트비어 브랜드 중에 하나가 되었다. 다시말해서, 크래프트비어 정신은 상업성에 목적을 두고 탄생한 것이 아니라,실험정신과 괴짜정신을 갖춘 정신 나간 사람들이(일반적인 비즈니스맨들과 다르다는 면에서의 표현) 돈과 상관없는 어떤 정신에 입각하여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 정신이 대중들의 호응을 얻음으로써 대중화가 되는 순환 구조인 셈이다. 애초에 대기업들의 상업성을 목적으로 둔 맥주와 태생의 본질이 다른셈이다. 이러한 정신은 가령 이런 생각들인 것이다. ‘왜 남들과 같은 맥주를 마셔야 하지?’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철학이 담긴 맥주를 마시게 하고 싶다’ ‘돈 없는 예술가들에게 그들과 어울리는 맥주를 공급하고 싶다’ 등등의 강렬한 괴짜 정신이 크래프트비어로 표현되는 것이다. 즉, 미국의크래프트비어 정신은 민주주의의 저항정신, 독립정신, 예술정신 등, 다양한 인간의 자유주의 욕구를 담고 있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크래프트비어는 민주주의적 표현의 자유와 그 성격이 너무도 닮아있다. 표현의 자유가 묵살되는 북한, 아프리카의 독재정권에서는 크래프트비어가 만들어 질 수 없고, 민주주의 성숙도가 낮은 나라일 수록 크래프트비어의 정신이 충분히 꽃 피지 못하는 이유를 나는 여기서 찾는 것이다.


우리나라 크래프트 비어 시장을 봤을 때 나는 이런 부분들이 굉장히 아쉽다. 예를들어서, 더부스의 대동강 페일에일이 국내 수제맥주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준 이후로, 국내 수제맥주 회사들이 의미 없는 네이밍 마케팅을 하기 시작했다. 강서, 달서, 해운대, 전라, 심지어 최근 평창 까지.. 왜 ‘대한민국 IPA’는 안 내나 싶을 정도이다. 이러다 지구, 태양계, 우주까지 가는 건 아닐지..최소한 지역명을 사용한 네이밍을 했다면 그에 걸맞는 탄탄한 브랜드 스토리나 훌륭한 맛이 받쳐줘야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싶다.


다시 말해서, 어떠한 정신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들은 소규모로 맥주를 만들었고, 네이밍과 디자인이 트렌디하며 다양한 맛을 낸 맥주를 생산하니, 크래프트비어다 라고 주장하는 사짜들이 너무 많다. 크래프트비어 문화에 아직까진 익숙하지 않은 일반 소비자들을 우롱하는 꼴이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다. 선거는 선택 즉, 투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왜 그 후보자를 선택해야 하는지에대한 정신, 철학에 있는 것이다. 성숙한 민주주의 시민, 소비자들은 내가 어떠한 상품과 후보자들을 선택할 때, 그에 맞는철학과 신념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그 입후보자가, 그리고상품을 만드는 기업이 국민과 소비자의 철학과 신념에 맞춰서 행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민주주의를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다. 크래프트 비어도 마찬가지다. 다양하고 맛있고 트렌디한 디자인으로 무장 한다고 해서 그것이 가치 있는 크래프트비어가 될 수는 없다. 맥주를 생산하는 이도 그 맥주를 선택하는 소비자도 서로의 철학과 신념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는 맛있고 다양한 맥주를 합리적인 비용에 마실 권리가 있다. 민주주의가 성숙해야 하는 시점에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며 투표를 멀리한 값을 대한민국 국민들은 톡톡히 치르고 있다. 바야흐로 수제맥주 전성기가 오려고 한다. 미국과 유럽처럼 고품질의 맥주를 저렴한 가격에 마시려면 소비자들의 조금 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것은 비단, 크래프트비어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폭스바겐과 애플이 하는 짓들과 그 맥락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좀더 성숙한 소비자주의가 정착되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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