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가즘 {Orgasm}; 성 반응에서 절정의 상태
귀르가즘 {Eargasm} ; 샘스미스, 아델, 박효신과 같은 천상계 수준의 실력을 가진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면 귀를 통해서 느끼는 짜릿한 감정
피르가즘 {prgasm}; 피지를 뽑는 영상, 처음엔 극혐이지만 이상하게 계속 보게 되며 심지어 시원한 기분까지 들며 대리만족하게 되는 상태
비어가즘 {Beergasm};타들어 갈 듯 한 갈증의 순간에 목이 찢어질 듯 차가운 맥주를 식도에 내리꽂을 때, 그리고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맥주의 맛과 향을 깨닫게 되면서 맥주에 코를 박고 킁킁대거나 맥주가 없어지는 것이 몹시 아쉬워 한 모금 한 모금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과정
당신은 비어가즘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일반적으로 오르가즘이 그렇듯 비어가즘 또한 그 기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방비 상태에서 훅! 하고 들어오기 마련이다. 질풍노도의 시기, 똥인지 된장 인지도 분간 못 할 철없던 시절엔 또래 친구들의 관심사의 시작과 끝은 반드시 하나로 수렴했다. ‘오르가즘’. 좀 더 포괄적으로 말하면 금단의 무엇에 항상 갈증을 느꼈다. '
지극히 정상적인 목마름이었지만, 어른들은 우리의 갈증을 적당히 해갈시켜줄 만한 적절한 방법을 딱히 제시하지도 않았다.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갈증에는 밑도 끝도 없는 상상력이 덕지덕지 붙었다. 마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장편소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무한한 상상력에도 불구하고 정작 갈증의 원인은 뻔하디 뻔했다. 특별할 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바로 그것; 이성, 섹스, 담배, 알코올 등.
그런데 나는 조금 특이하게도 그중 맥주를 느껴보고 싶은갈증을 느꼈었다. 왜냐하면 대게 우리나라 맥주 광고를 보면 주인공이 나와서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고는 세상 가장 짜릿하고 맛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속삭이듯 연출했기 때문이었다.
‘너도 이 맛을 느껴봐~맥주를 마시면 이런 비어가즘을 매번 느낄 수 있다고~’
도대체 맥주는 무엇이길래 TV에 나온 어른들은 맥주를 마시면 그토록 짜릿해할까 무척 궁금해했다. 어린 내가 봐도 탄산음료 광고의 그것과는 분명히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짱구 아빠나 에반게리온의 미사토처럼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 조차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면 맥주 광고 속 주인공과 비슷한 희열을 분출했다.
그래서 나는 미성년자는 결코 알 수 없는 어른만의 짜릿함이 분명 존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탄산음료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무언가 말이다. 하지만 그 짜릿함은 너무도 강렬해서 20세 미만의 미성숙한 인간은 감히 통제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 상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왜 스무 살이 돼야만 금단의 황금빛 액체를 들이켤 수 있는 권리가 생성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차라리 성인이 되는 12월 31일 12시 59분 59초와 1월 1일 0시 0분 1초 사이에는 어른의 짜릿함을 견뎌 낼 수 있는 어떤 에너지가 생성된다고 설명하는 것이 그나마 논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조금 흘러, 그토록 바라던 에너지가 생성되는 바로 그날이 됐다. 정갈하고 겸허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동네 호프집에 친구들과 입성했다. 통닭과 생맥주 500cc 4잔을 주문했다.
성장한 해리포터가 볼드모트를 무찔렀을 때만큼이나 당찬 주문이었다. 이제 우리는 어른의 짜릿함을 느끼게 해줄 황금빛 성수를 목구멍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한 모금 두 모금….
어라?? 이게 웬걸, 아무리 맥주를 마셔도 짱구 아빠나, 미사토와 같은 리액션은 결코 나오지 않았다. 그건 나와 같이 맥주를 마시던 친구들도 그렇고, 생각해 보니 퇴근 후에 종종 저녁과 함께 맥주를 한잔 하시는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였다. 맥주 한잔 마신다고 세상 모든 흥이 내 것이 된 것 같은 리액션은 아무래도 거짓 같았다.
대충 시원하고 탄산 덕분에 목이 짜릿하고 시원하다는 건 알겠는데, 이럴 거면 콜라나 사이다를 마시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실망감이 무척 컸다. 그렇게 한동안 맥주 광고 속 주인공의 비어가즘은 오버액션, 즉 연기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하긴,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몰래 보던 AV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진짜라고 철석 같이 믿었던 분별력 없던 시기였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 맥주 광고의 ‘비어가즘’은 거짓일 수 있다고 의심했겠는가.
우리는 맥주의 짜릿함이 아닌 맥주에 녹아있는 알코올만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사실 뭐, 취한다는 것만으로도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색다른 짜릿함 이긴 했다. 그러나 어른들이 맥주를 마시는 이유가 단순히 취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하니 뭔가 허탈했다. 그 이상의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를 기대했었다. 그런데 맥주를 마셔도, 소주를 마셔도 취하기는 매 한 가지였다. 굳이 맥주를 마실 이유가 없어졌다. 비싸고 배부른 맥주는 소주에 비해 비효율적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적절한 음주 교육에서 소외된 채로 부적절한 음주 문화에 노출되어 어른이 되었고 술을 마셨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대부분 어른들이 즐기는 쾌락적 문화는 적절한 교육을 통해 이뤄지지 않았다.
비어가즘이나 오르가즘이나 마찬가지로.
내가 꿈꿨던 비어가즘의 환상을 거짓이라고 여기며 시간은 흘러 어느 무더운 여름날, 동아리 사람들과 술을 마시러 을지로로 향했다. 을지로는 평소 우리의 음주 서식지였던 학교 앞을 크게 벗어난 지역이었으며 우리 중 누구도 그곳에 발을 디뎌 본 적 없었다. 그런데 자칭 술 좀 마셔봤다는 A선배는 한 껏 으스대며 우리를 주酒님의 무릎 위에 안겨 주겠다며 을지로를 향해 강력하게 이끌었다.
7월 하순의 무더위와 싸워가며 도착한 을지로의 노가리 골목은 퇴근시간에 맞춰 전투 준비가 한창이었다. 더위에 지칠 대로 지친 우리 일행의 고단함을 위로라도 하듯 자리에 앉자마자 생명수 같은 생맥주가 인원수대로 탁자 위에 올려졌다. 누구 하나 의아한 표정 없이 약속이라도 한 듯 맥주잔을 높게 쳐들고 가볍게 잔을 부딪힌 뒤 벌컥벌컥 들이켰다.
정적. 그리고 탄성과 환희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이전에 느껴 본 적 없는 짜릿한 표정과 탄성을 지르며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단 한 사람, 이곳을 데리고 온 선배를 제외하고 말이다. 그 선배는 마치 주님의 은혜를 전도했다는 듯한 뿌듯하고 온화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시가 내가 처음으로 맥주를 마시다 비어가즘을 느낀 순간이었다.
처음으로 맥주가 상쾌하고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전과 확실히 다른 맛이었다. 잡미 없이 깔끔하고 청량하다고 해야 할까? 콜라나 사이다 같은 청량음료에서 느낄 수 없는 청명 함이었다. 그리고 이전에 느껴 본 적 없던 향긋한 내음도 은은하게 퍼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아로마틱 한 향은 맥주의 원료인 홉이란 재료에서 나는 향기였다. 호프집의 그 호프가 바로 이 홉(HOP)이란 것을 안 것도, 신선하게 잘 관리된 맥주에서만 이렇게 신선한 맛을 낼 수 있다는 것도, 맥주에 대한 장인정신을 가지고 장사를 하시는 이곳 사장님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어렸을 때 보았던 맥주 광고의 ‘비어가즘’은 거짓이 아니었다. 내가 느꼈고 우리가 느꼈다. 그리고 그 호프집에 입성하는 대부분의 신자들이 느꼈다. 나는 ‘비어가즘’을 목도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존재했다.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고 인도해주지 않았을 때는 미처 몰랐던 미지의 감각이 적절한 교육을 통해서 새로운 짜릿함으로 연결되는 기분이었다.
그 뒤로 점차 맥주를 더욱 즐기게 됐다. 내가 맛있게 즐기는 이 맥주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럴수록 맥주는 더 맛있고 짜릿했다. 단순히 취하기 위해서 입으로 연신 털어 냈던 과거와 달리 맥주는 오묘한 풍미와 향 그리고 색감이 다채롭고 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맥주에 대해 알면 알수록 맥주를 통해서 느끼는 감각의 영역은 다양하게 확장됐고 더욱 짜릿했다. 최근에는 내 입맛에 맞는 맥주 스타일과 취향을 알게 되면서 나도 몰랐던 내 안에 숨은 취향을 발견하는 쾌감도 경험하게 됐다.
적절하고 올바른 교육은 언제나 중요하다.
질풍노도의 시기, 불법 성인물의 그것과 맥주 광고의 그것이 진짜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원인은 적절한 교육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강압된 환상에는 상상력이란 힘이 더해져 가속력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자유의 영역에 들어서면 우리가 품었던 환상은 통제력을 잃고 자유낙하하는 법이다. 통제력의 상실과 후폭풍은 추락 이후엔 감당하기 버겁다.
대학교 신입생 OT에서 음주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도 중고등학교에서 적절한 음주 교육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의 영역에서 스스로 통제 할 수 있는 '비행' 교육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대부분의 쾌락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방법이 필요하다. 교육을 통해 더욱 깊이 있고 건강하게 즐길 수 있다. 나이로 선을 긋고 무조건 금기시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그건 미성년자에게도 성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교육 없이 맥주에서 느끼는 당신의 짜릿함은 반쪽짜리 비어가즘일 확률이 크다. 오르가즘이나 비어가즘이나 교육을 통한 훈련으로 더욱 강렬해질 수 있다.
당신은 진짜 비어가즘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맥알못이여 비어가즘을 느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