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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추자 Feb 16. 2023

출판일기

#2. 출판사 미팅

출판사 분들을 만났다. 마주 앉아 보니 긴장감이 장난이 아니다. 내 담당이라는 편집자를 처음 만난 자리다. 출판사 대표와 마케팅 담당자는 만난 적이 있었지만 편집자는 처음이었다. 그녀는 이 듣보잡 작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는 의지가 가득했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 가벼운 제스처에도 집중하고 있었다. 뻘쭘했고 자연스럽지 않았다. 툭툭 던지는 질문이 예사롭지 않았고 그에 대한 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다음 대화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작가님은 어떤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와, 이 얼마나 심오한 질문이고 답하기 어려운 질문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어디 한 두 가지 인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 시간에 따라 공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해 보았다. 나는 뭘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언뜻 초등학교 6학년 졸업할 때 만들었던 교지가 떠올랐다. 이 교지라는 것은 졸업을 앞두고 졸업생들이 그동안 썼던 글들을 실은 책이었다. 글은 다양했다. 누군가는 시를 썼고 누군가는 수필을 썼고 누군가는 독후감을 또 누군가는 일기를... 여러 글들이 포함됐다. 이 교지의 마지막 부분에 졸업생 모두에게 각자의 좌우명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참 다양했다. 위인들의 한 마디나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격언들이 많았는데 ‘노력은 쓰고 열매는 달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경쟁자의 페이지는 넘겨지고 있다’ 등 문장형이 있었는가 하면 ’정직‘ ‘성실’ 등의 단어형도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썼는가. 지금 생각해도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당시 그 생각이 가장 강하게 들었던 것 같은데 ’인생은 즐겁게 라면은 농심‘이라고 썼다. 즐거움, 유쾌함, 재미를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했던가 보다. 물론 라면을 좋아하기도 한다.(지금은 여러 이유로 ‘농심’보다는 다른 브랜드의 라면을 더 즐겨 먹는다.)


“전 유쾌함, 재미를 좋아해요. 좋아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네...”


노트에 메모를 하며 하는 대답. 나와 눈을 마주치진 않았다. 무슨 의미일까. 그녀에게 흡족한 답이었을까. 너무 성의 없어 보였을까. 지나치게 가볍게 보이지는 않을까. 여러 생각이 스쳐 갔다. 또 몇 차례의 질문과 답이 이어진 뒤 편집자는 정리가 됐다는 듯 나에게 말했다.


“'E'시죠?”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었다.


“네?”


“아, MBTI요. ‘E'신 것 같아서... “


그제야 겨우 알아 들었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그녀가 한 마디 더 얹었다.


“독자들은 대부분 ‘I'인데...”


최근 출판계를 뒤덮고 있는 ‘... 괜찮아’ 혹은 ‘.... 일거야’ 류의 이른바 힐링 서적의 주 독자층이 2,30대 여성이라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었는데 독자들의 MBTI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인지는 몰랐기에 다소 신선한 답이었다. 그녀의 설명을 그랬다. 대부분의 독자들의 성향이 내향적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외향적인 그러니까 ’E'적 성향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많으나 그걸 직접적으로 물어보거나 알아볼 방법이 없으니 책에서 그런 내용을 찾는다는 것이다. 또한 대화하는 것에 대해 버거워하는 성향들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든 돌파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어서 대화의 기술(?) 등을 알아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책이라는 것을 산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부터가 중요한 얘기인데 그 'I'들에 대해 이해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여러 이야기를 들어본 바 물론 첫 만남이고 더 다양한 모습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겠으나 적어도 이 날의 대화로만 봤을 때 나에게선 그 'I'에 대한 이해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유쾌하고 능수능란하게 말을 이끌어 내고 대화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나의 모습이 인상적이긴 하나 내향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있다기보다는 기술적으로 그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수긍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출판계에서 편집자로 일하는 전문가가 하는 말이니 신뢰를 갖지 않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어찌 됐건 ’ 내향적 성향의 사람들 그 ‘I'들을 위해 이렇게 저렇게 해야지 ‘라는 생각을 딱히 해 본 적은 없었으므로 나의 부족함으로 인식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글을 쓰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책을 읽을 준비가 된 사람들 중 많은 비중의 사람들의 성향이 그러하다면 당연히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므로 요즘 내 촉은 대부분 책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먹힐만한 글감을 찾는데 집중돼 있다. 자, 누가 봐도 'E'성향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 누구인가. 무슨 이야기를 원하는가. 대답해 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계속 묻고 또 묻는다. 자고로 모르면 물으라 했다. 그 질문 속에서 답이라는 것을 찾고 싶다. 답이 아니라 힌트 정도만 얻게 되더라도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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