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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추장와플 Aug 18. 2024

착한 것보단 미친년이 되는 것이 낫다

인지상정은 서랍에 고이 보관해 두세요.

이민생활 수칙 중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절대 바보가 되지 말라이다.


그렇다면 바보란 무엇인가. 여기서 말하는 바보란,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에게 농락당하고도 허허하고 웃는 사람을 말한다. 한국인들은 흔히 민망하거나,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어색하게 웃곤 한다. 이러면 서구권에서는 바보취급 당하기 십상이다.


어색한 웃음은 바보로 기억되는 지름길이다.

예를 들어 거지가 와서 돈을 달라고 한다. 주기는 싫지만 어찌 할 바를 몰라 이런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 돈 뜯기기 십상이다. 그것도 돈과 정신이 탈.탈.탈.


회사에서 누가 곤란한 부탁을 했을 때, 저런 웃음을 지으면서 싫지만 한 두 번 받아주면 세 번, 네 번이 되고, 그러다 호구로 찍힌다. 동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인상을 심어주어야 한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인지상정, 내가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내 곤란함을 알아주겠지는 서구권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할 말이 있으면 제대로 하고, 싫다는 표현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내 상황은 곤란하지만 거절하기 민망하고 상대방이 어려운 상황일까 봐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접어두시라. 그렇게 하면 상대방이 내가 베푼 친절을 잘 기억했다가 다시 돌려주느냐? 그것도 내가 하기에 달렸다. 호구로 낙인찍히면 내가 베푼 친절을 당연히 못 돌려받고 앞으로도 계~~~ 속 베풀기만 해야 한다. 내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심어주고 친절을 베풀면 그 친절은 상대방의 favor bank에 저장되어 있다가 다시 돌아온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딜 가나 사람이 존재하는 이상 비슷비슷하다. 한국에 이코가 있으면, 외국에도 이코가 있고, 한국에서 왕따를 시키는 소시오패스가 있으면, 외국에도 그들은 존재한다. 이런 사람들이 나에게 해를 가했을 때 겁나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면, 혹은 뜨거운 맛이 아니더라도 나한테 했던 만큼만이라도 고스란히 돌려주면 쉽게 호구는 되지 않는다.


한 번은 회사에서 동료가 자기 실수를 나에게 덮어 씌우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내 잘못이라고 모두에게 말 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아... 이런 확 씨바밤바와 쌍쌍바같은 경우를 봤나. 내가 그렇게 쉽게 보였어?'

바밤바와 쌍쌍바


'나도 너랑 똑같이.. 해주마...'라고 생각하며 점심시간에 동료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거기에 곁들여 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쟤는 나를 쉽게 생각하나 봐 아니면 나를 싫어하든가. 왜 나한테 덮어 씌우려고 했던 걸까?"까지 시전해 주었다. 그 동료는 인성 더러운 사람으로 다른 동료들에게 찍혔다. 그 동료를 마주칠 때마다,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분노의 이글이글 레이저를 한 일주일간 쏘아 주었다.


그 이후로 누구도 회사에서 나를 무시하거나 자기 잘못을 덮어씌우려는 사람도 없었고, 회사에서도 동료들과 무척 화목하게 잘 지냈다. 그 동료에게 심심한 사과는 받지 못했지만 나를 호구로 보는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목표는 달성한 것으로 생각했다. 저런 인성을 가진 사람들은 사과 같은것은 잘 안한다. 그래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시전하는게 가장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 후 직장을 옮긴 뒤, 매우 별난 성격을 지닌 모로코인 이민 2세대 동료 (재미교포 2세가 미국인인 것처럼 이 사람도 벨기에에서 태어나고 자란 여권상으로는 벨기에인임, 귓구멍에 딱지 지도록 칭챙총 편 참조)가 나에게 잭키찬, 스시! 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상사가 나를 찾을 때 나에게 와서 "야 스시! 보스가 너 찾아." 이런 식이 었다. 이런 싹수를 상실한 또라이를 봤나. 나는 모로코 유명 전통음식인 타진 (에픽하이의 타블로를 까는 타진요가 아니다)을 생각해 냈다. '고뤠? 눈에는 눈, 이에는 이지!  너도 한번 맛 좀 봐라. 이게 어디서 까불고 있어.'


모로코의 전통음식 타진


"야 타진, 고맙다. 보스는 어디에 있는데? 타진? 니가 나를 잭키찬이나 스시로 부르면 나는 너를 타진이라 부를게. 이러면 공평하지? 안 그래, 타진? 아 근데, 스시는 유명하기라도 하지, 타진은 솔직히 별로 유명하지도 않잖아?"


그 동료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 이후로도 몇 번 나를 스시로 불렀다가 내가 타진으로 화답해 주자 결국 나를 그런 식으로 부르는 것을 멈추었다. ( 이 동료도 또한 심심한 사과는 없었다) 솔직히 정말 너무너무 유치한 대화다. 한국었으면 너무 유치해서 내 얼굴이 다 빨개졌을 정도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가 당해봐야 그 기분이 어떤지를 안다. 경우 없는 사람을, "저 사람은 경우가 없는 사람이니 내가 이해해야지"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그 경우 없는 사람에게 계속 당한다. 한 번이라도 그 경우 없는 사람을 똑 같이 대해주면 자기 행동을 재고해 볼 확률은 높아진다.


내가 어색한 웃음으로 넘기려고 했다면 아마 그 회사에 다니는 내내 스시로 불렸을 것이다.


서구권에서 아시아사람으로 살아가기는 녹록지 않다. 착한 아시아인의 이미지가 있어, 아시아사람은 예스예스만 하고 화도 안 낼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중동사람이나 흑인에 대한 공격적이고, 못 배워먹은 사람이라는 편향적인 이미지가 낫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이런 착한 동양인이미지도 나에게는 매한가지로 불편하다.


이 두 에피소드 이외에도 착한 동양인 이미지로  호구취급 당한 적은 셀 수도 없이 많다.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호구취급을 받는지 애매한 상황에서 절대로 웃지 않는다.  정색을 하고 따박따박 다시 되 받아쳐 준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정글에서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해외에 이민 준비 중이신 분들이나, 여행하러 가시는 분들은 꼭 기억하시라. 호구가 되고 싶지 않으시거든, 곤란한 상황에서 웃지 마시고 정색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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