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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추장와플 Aug 25. 2024

개나 소나 다 들어가는 벨기에 대학

호기롭게 들어간 대학, 그 끝은...

벨기에의 대학 시스템은 대다수의 서유럽이 그러하듯이 모든 이에게 열려있다. 그 말인즉슨, 인문계고등학교 졸업자는 졸업 성적에 관계없이 다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모든 대학은 공립이고 (사립대학 없음) 학비는 일 년에 (학기가 아니라 1년이다.) 150만 원가량 한다. 한국에 비하면 엄청 저렴한 금액이고, 모두에게 균등하게 기회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수능? 여기는 그런 것 없다. 고등학교 졸업장만 있으면 입학은 누구나 한다. 의과대학은 입학시험이 있지만 특수 전공을 제외하면, 인문학이나 이공계 모두 시험점수 없이 입학이 가능하다. 그래서 개나 소나 모두 졸업이 가능한 것인가?


벨기에의 정부 보고에 의하면 대학과 전문대학 포함한 벨기에의 고등교육을 성공적으로 마쳐 졸업장을 딴 사람은  50퍼센트에 약간 못 미친다. 학사는 3년 석사는 1년이지만 3년 안에 학사를 마치는 학생들은 29.5프로 밖에 되지 않는다. (처:https://onderwijs.vlaanderen.be/nl/onderwijsstatistieken/themas-onderwijsstatistieken/hoger-onderwijs-in-cijfers) 이 말은 즉슨 70프로 이상의 학생들이 1년이나 그 이상을 꿇는다는 말이다.


개나 소나 다 들어가도  개나 소나 다 나오지는 못한다는 이야기다. 교수님은 강의 끝나면 학생들과 교류를 하지 않는다. 고로 교수님과 살갑게 친해져 점수를 따는 것은 있을 수도 없다.  그래서 불쌍해서 봐주고, 측은해서 통과시켜 주는 경우도 없다.

사이좋은 개와 소

과목들은 한국처럼 전인교육을 중시해서 스포츠, 어학이나 기타 등등의 교양과목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전공이 화학이면 쌩으로 화학만 냅다 공부해야 한다. 중간에 뭐 현대 미술사나 기본 교양을 습득할 그런 기회가 없다. 미국과 같이 대학에서 기본적으로 스포츠를 중시해서 전공 이외에 틈틈이 스포츠를 즐긴다거나 이럴 정신이 없다. 내 전공을 선택하는 순간 덕후처럼 살아야 한다. 오로지 한 우물만 파면서...


남의편씨가 음악인으로 활동하는지라 평소 콘서트나 페스티발을 많이 갔다. 또 벨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EDM 페스티발, Tomorrowland로 유명한 곳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호기롭게 문화경영이라는 전공으로 앤트워프  대학을 등록했다. 본래 석사과정이지만, 경영학을 학사로 전공하지 않은 학생들 학사과정의 엑기스만 우려 만든 교차프로그램(schakelprogramma)을 듣고 그 후에 석사과정을 시작하게 된다.


멋지지 않은가! 키야, 내가 공연도 기획하고 좋아하는 아티스트들도 초청할 수 있는 콘서트홀 같은 곳에서 근무하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았다.


학기가 시작되었다. 빡셌다. 나는 언어전공자 문과생이다. "문화"경영이 아니라 문화"경영"이었다. 물론 경영학도 인문학이기는 하나, 인문학 중에서 가장 이공계에 가까운 학문이 아니겠는가. 팔자에도 없는 미시경제와 거시경제를 빡세게 공부해야 했고 법대생도 아닌데 유럽연합 상법이란 과목도 들어야 했다. 경영학과 법학의 짬뽕 같은 조합이었다.

아무리 해도 모르겠다. 수학은 내 인생에 없나 보다.


나는 수학이 싫다. 정말 싫다. 1+1=2라고 하지만 나는 인생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1+1은 2도 될 수 있고 3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빌어먹을 네덜란드어... 내가 아무리 네덜란드어를 마지막 레벨까지 마쳤어도, 여기서 나고 자란 이 나라 사람들도 꿇는 게 정상인 이 어려운 대학공부를 하기엔 언어의 장벽이 너무너무 높았다.  


정규직제안도 마다하고 공부하겠다고 회사를 박차고 나왔는데...(워라밸 따위는 없는 미국계 회사에 취직하다 편 참조) 빨리 이걸 마쳐야 내 밥값도 할 수 있는데... 조급한 내 마음과는 달리, 죽도록 공부했는데도 내 수학실력은 늘지 않았고, 대학에서 사용하는 초고급 네덜란드어도 마음처럼 빨리 늘지 않았다.  


1학기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매일 책 펴놓고 단어를 외우고 또 외웠다. 그리고 되지도 않는 함수공부 한답시고 네이버 수학블로그까지 총 동원하여 공부하고 시험을 봤다. 그 결과는 4과목 중 1과목 빼고 다 탈락이다. 50프로가 넘으면 통과를 시켜주는데 (나를 믿어주시라. 50프로 넘기기도 정말 더럽게 어렵다.)


특히 유럽연합 상법은 정말 지독했다. 교수님이 남 괴롭히는 게 취미인지는 몰라도 Giscorrectie라는 요상한 방법을 사용했다. 이른바 페널티 감점 시스템이다. 객관식이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답을 안 적으면 0점, 맞으면 1점, 틀린 답을 적으면 아래의 표와 같이 감점이었다. (다음표는 각 문제당 틀린답의 수의 감점을 표기한다.)  답이 여러 개 일 수도 있고, 한 개 일 수도 있는데 답이 두 개 다 틀릴 경우에는 더 많은 감점을 받는다. 객관식인데 어떻게 안 찍을 수가 있겠는가. 왠지 내가 찍은 답이 꼭 정답일 것만 같은데 어떻게 빈칸으로 놔둘 수가 있느냐고요. 그래서 결국은 망했다. 그냥 불확실한 답을 놔두었으면 통과할 점수였지만 찍어서 폭망 했다.


벨기에 대학의 지독한 페널티 감점 시스템


이곳도 한국과 마찬가지 2차 시험이 있다. 한국은 2차 시험 비중이 그렇게 높진 않지만 여기는 피도 눈물도 없는 교수들 덕에 2차 시험에도 60-65프로의 학생들이 있다. 아 참! 중요한 것은 출석은 성적에 반영되지 않는다. 교수들이 수업 시작 전, 이름을 부르는 것도 없고 앞에 앉아 눈 초롱초롱하게 듣는 학생의 이름을 외우는 것도 없다. 그냥 시험성적이 100이다....


2차 시험도 폭망 했다. 그리고 2학기도 정말 열심히 했지만 또 폭망 했다. 결과는 1년간 8과목 중 2과목 통과... 망했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너무 속상했고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 네덜란드어에도 열이 받았고, 수학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 내 학창 시절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네덜란드인 친구도 , 벨기에 대학교육이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며 결국 고향인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벨기에 플랜더스에는 많은 수의 네덜란드 학생들이 공부하러 온다. 네덜란드에 비해 학비가 저렴하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인데, 10중 9는 벨기에 대학의 빡셈에 놀라곤 한다.


빡이 세지 않던 빡이 세던, 통과할 놈은 통과했고, 나는 낙오했다. 1년을 그냥 길바닥에 버렸다. 이 시간을 구직에 썼으면 좀 더 나았을까? 지금 쯤 내 밥벌이를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이제는 다시 선택을 해야 했다. 1년을 꿇어서 다시 수업을 들을 건지, 다른 선택을 할지...


나는 1년을 또 버릴 자신이 없었다. 혹여라도 다시 1년을 꿇게 된다면 2년을 버려야 하는데... 나는 다른 결정을 하기로 했다. 다시 대학원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그리고 지금 그 당시로부터 14년이 흐른 지금, 내가 낙오했고, 버렸다고 생각한 그 1년이 내가 벨기에에서 살았던 모든 시간을 통 틀어 가장 치열했고 가장 큰 열매를 맺었던 시간임을 확신한다. 그때 배웠던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비록 통과는 하지 못했지만 이후에 이어갈 내 삶에 거름이 되었다.


미끄덩 하고 넘어지는것도 두 발로 걸었기 때문이고, 실패도 무엇을 시도했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지금 흘리는 당신의 피와 눈물은 비록 지금 당장 쓰이지 않더라도 결과적으로 당신을 승자로 만드는 데 쓰일 것이라는 것이다. 결과는 당장 오지 않는다. 천천히 오는 결과도 결과다.




에필로그 오브 이번 에피소드: 전 직장으로 돌아 가기에는 회사 문을 박차고 나온 지 1년이나 되었고(사실 대학원 통과 못하고 떨어져서 다시 왔다고 하기도 쪽팔렸다.), 내 자리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 있음을 전 동료들로부터 확인했다.

그래... 다시 구직활동을 해 보자. 뭐라도 찾아지겠지.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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