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공짜 화장실과 에어컨, 인생샷 명당정보를 한 번에
무더운 32도의 파리. 더 이상의 실외활동은 불가능하다 결론짓고 우리는 파리 한복판의 라파예트 백화점에 가기로 했다. 지하철 안에도 에어컨이 안 나오고 정말 너무 한다. 땀을 삐질거리며 걷는데 저 멀리 입구가 보인다. 앗싸!
디올, 샤넬, 셀린, 에르메스 (명품브랜드 이름도 생각 안 나고 안 살거라 이쯤에서 패스)등의 부티크가 있으나 우리는 에어컨과 공짜화장실이 주목적이다.
라파예트는 한국의 현대백화점, 갤러리아와 같은 체인이지만 라파예트라 해서 다 똑같은 라파예트가 아니다. 파리 중심가에 있는 라파예트 Haussmann 백화점은 매우 특별한 곳이다.
https://maps.app.goo.gl/HAYM3gDrktKbdFHT8
들어가는 순간 넋을 놓고 보게 되는 화려한 아르누보스타일의 유리 돔이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색깔과 패턴, 곡선으로 이루어진 이 유리 돔은 자연광이 아름다운 색색의 유리를 통과하며 탄성을 자아낸다.
그래서 아르누보가 뭐냐고?
고추장와플의 쉽게 읽는 인문학시간이 돌아왔다.
아르누보는 건축양식의 하나로 곡선과, 비대칭, 자연에서 모티브를 얻은 건축스타일로 유명하며 스페인의 가우디도 아르누보 건축가이다. (설명할 때는 무조건 유명한 사람 데리고 와서 예를 드는 게 최고다. 그래야 단박에 알아듣는다.) 공간 전체를 예술로 표현한다. 일상생활에서의 유리등(조명), 가구, 포스터와 조각, 건축까지 여러 분야에서 아르누보 예술이 시도되었다.
고딕, 바로크 양식과는 달리 1900년도 초기에 와서 기존건축 스타일을 거부하고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하였고 이에 프랑스어의 Art (아르, 실제로는 아흐에 더 가까운 발음이지만, 예술이란 뜻), Nouveau( 누보, 영어의 new에 해당), 새로운 예술이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다.
나라에 따라 명칭은 약간씩 다르다. 모두가 프랑스식으로 부르는 것은 아니다. 앞의 에피소드들에서 타국가가 프랑스를 얼마나 띠겁게 보는지 읽으셨던 분들은 타 유럽국가에서 이 명칭을 똑같지 쓰지 않는 것을 이해하셨으리라 생각한다. 프랑스와 벨기에에서는 아르누보 (Art Nouveau), 독일에서는 jugendstil (유겐트스틸), 스페인에서는 모데르니즈모( modernismo)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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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파리 지하철 간판을 보고 앗, 독특한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딱 떨어지지 않는 않은 곡선적인 디자인 때문인데 이도 아르누보 스타일에 해당한다.
아르누보 건축물들은 내가 살고 있는 벨기에와 스페인에서 가장 꽃을 피웠으며 벨기에의 아르누보 건축가로는 빅토르 오르타(Victor Horta)가 있다. 우리 동네에는 참신하고 특이한 건축물이 많이 있어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이나 건축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연구하러 많이 찾아오기도 한다.
우리 동네의 건물 사진 하나를 예로 보여드리겠다.
선박업자였던 의뢰인의 정체성을 배모양의 발코니로 개성 있게 표현하였다. 곡선, 색이 들어간 유리등을 사용하였고, 나뭇잎과 같은 자연의 무늬들이 창틀의 위쪽에 장식되어 있다.
더 길게 아르누보에 대해 설명하면 독자들이 도망갈 테니 여기서 그만하고 라파예트 백화점의 화장실 이야기를 하겠다.
파리에서 카페나 레스토랑, 박물관에 들어가지 않는 한 공짜 화장실을 찾기 힘들다. 라파예트백화점의 5층과 6층에는 무료 화장실이 있다. 혹시라도 이 곳에 온다면 화장실은 무조건 필수다!
더운 곳에 있다가 에어컨 바람을 맞으니 좀 살 것 같다. 그런데 이곳의 가격은 착하지 않다. 마카롱전문점이자 티살롱(salon de thé)인 라듀레(LADURÈE)의 가격을 살짝 봤더니 가격이 후들후들하다. 메뉴판만 들춰보고 줄행랑을 쳤다. 아니 뭐 커피 한잔에 15000원 인가. 삐까뻔쩍한 그들의 인테리어비용과 전기세를 커피 한잔에 만원 씩 붙여 받나 보다. 오천 원이었으면 먹었다. 칫! 마카롱도 지가 그래봤자, 계란 흰자랑 설탕 거품거로 쳐서 오븐으로 구운 것 밖에 더 되나.
에어컨과 그늘이 있고, 화장실도 갔겠다 그럼 라파예트의 맨 위층의 기념품코너에 가 봐야겠다. 가 보니, 교보문고의 팬시코너와 비슷하다. 그런데 가격이 여기가 파리라 쳐도 좀 그렇다. 사진만 찍고 나오기로 한다.
하지만 파리에 왔다면 꼭 가보기를 추천한다. 왜? 오페라 가르니에와 에펠탑이 한 번에 보이는 뷰와 창문에 설치된 예쁜 글씨, 빨간색 미니 에펠탑(쁘띠바토/ Petit Bateau) 매장 앞 등등이 에어컨 맞으며 사진 찍기 참 좋기 때문이다. 이런 뷰를 어디 가서 본단 말인가. 그것도 공짜로.
파리 라파예트 오스만을 방문할 이유는 하나가 더 있다. 바로 루프탑이다. 루프탑 바도 있어서 음료, 혹은 칵테일도 마실 수 있지만 올라가서 바깥공기를 마신 순간 결심했다. 사진만 찍고 바로 다시 안으로 들어가겠다! 느으으무 덥다!
파리시내의 모든 유명한 건물들이 다 보이는 레알 파리의 심장이다. 파리에서 인생샷 남기고 싶다면 이곳이 정답이다.
파리가 바가지도 심하고, 불친절 하지만 관광객의 니즈를 알고 관광상품으로 이용하는 능력은 확실히 유럽의 타 국가들이 따라갈 수 없다. (증거: 머랭쿠키 가격이 천 원인데, 이름을 마카롱으로 바꾸고 색깔을 넣어 팔면서 가격을 5배로 올린다. 로마에도 개선문이 있지만 프랑스의 개선문이 더 유명, 유럽에 맛있는 와인 너무 많은데 프랑스산이 가장 유명, 기타 등등). 마케팅천재들이다. 사진 찍으러 다들 루프탑에 오는 줄 알고 맨 위층에 기념품과 팬시코너 설치, 루프탑은 사진 예쁘게 잘 찍고 가라고 저렇게 유리로 보호막을 설치했는데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앞을 보고 사진을 찍고, 벨루치언니는 유리에 기대어 찍었다. 나에게도 해 보라 했지만 나는 극렬히 거부했다. 저 사진도 웃고는 있지만, 빨리 저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조금만 더 에어컨 바람을 쐬고 싶은 마음에 가장 사람 없고 조용한 지하층에 가 보기로 했다. 오, 웬걸! 공짜 정수기가 있다. 가져온 물병도 꽉 채우고 완전 이득이다. 사람 없는 것도 너무 좋다.
입구가 있는 1층에는 샤넬, 랑콤, 디올등의 고가의 화장품 브랜드들이 쭈욱 늘어서 있는데 지하에 갔더니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올리브영 스타일의 화장품매장이 있었다. 사람이 바글거리지 않고, 손님이 없으니 엄청 친절하다. 언니가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한쪽에서 구경하던 나를 부른다.
Guarda, guarda! Ci sono tanti prodotti coreani. Mamma mia, non lo trovo in Italia.
여기 좀 봐. 세상에, 한국 화장품 엄청 많네. 게다가 이건 이탈리아엔 없는 제품이야.
그렇게 벨루치언니는 파리에서 한국화장품을 싹쓸이해갔다. 한국사람들은 그 유명한 몽쥬약국에서 프랑스화장품을 사가는데, 우리 벨루치언니는 파리까지 와서 한국화장품을 싹쓸이해 간다.
파리에서 한식으로 점심 먹고, 파리에서 한국화장품 사고, 우린 도대체 왜 파리에 온 걸까?
하지만 대망의 파리방문일정의 꽃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내가 파리에 온 가장 큰 이유는 다음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