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뉴렌베르크에서 한 푸짐한 식사

기억나는 게 식사밖에 없어서 미안하다

by 고추장와플

드러머인 베짱이는 미니 밴을 가지고 있고 그 덕에 자동차를 꽉 채워 온갖 짐을 싣고 우리는 네덜란드를 넘고, 독일국경을 넘었다. 한국처럼 국경에 철조망이 쳐져 있지 않고 고속도로 길가에 표지판 하나 달랑 있는 것이 국경이다. 그래도 국경지대에 수비대가 있어 수상해 보이는 차를 검사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뒷좌석에 넷플릭스 삼매경에 빠진 순진무구한 아이들이 둘이나 있기에 무사통과다. 밥값을 야무지게 했구나.

벨기에 출발, 네덜란드 국경넘어 독일국경 도착


주유소에서 밥 같지도 않은 밥을 먹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밥에 진심인 나는, 아침에 아이들이 먹을 볶음밥을 후다닥 볶아 도시락에 싸, 중간에 어느 주유소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그곳에서 프레첼을 봤는데 거의 4유로 되는 가격이었다. 이런 빵쪼가리가 6000원이나 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아이들이 휴게소에서 사탕과 과자를 사달라 했지만 잘 준비된 엄마는 차에 먹을 것이 가득 있으니 차에서 준다고 달랜다. 앞 좌석에 출발 전, 과자와 사탕으로 꽉꽉 채워놓길 다행이다. 휴게소는 슈퍼에 비해 가격이 30%가량 비싼 것 같은데 휴가지에 도착도 전에 빈털터리가 될지 모르니 중간기착지 도착할 때까지 조금만 참자, 응?

양심없는 가격의 주유소 프레츨

독일을 지나서도 한참을 더 달린 끝에 출발한 지, 7시간 만에 뉴렌베르크에 도착했다. 운전은 번갈아 가며 했다. 표지판에 뉴렌베르크가 보인다.


독일 아우토반이 속도제한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꽤 계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해 막무가내로 달렸다간 집으로 벌금폭탄이 날아온다. 독일 아우토반 < 아우토반은 그냥 auto+bahn 차, 길이라는 뜻으로 특별한 대명사가 아니다.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그냥 차가 다니는 길일뿐이다.>은 속도제한이 없는 구역이 있고 나머지는 속도제한이 있으니 표지판을 잘 살펴봐야 한다.

뉴렌베르크에 거의 도착했다.

호텔에는 하루만 머물 것이기에, 하루치 짐만 따로 싸 놓은 가방을 들고 단출한 패밀리룸에 짐을 풀었다. 2층침대 하나와 2인용 침대 하나, 4인가족이 묵어가기엔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실용적인 호텔이었다.


독일계 체인인 B&B호텔은 가격이 합리적이고 시설도 준수한 편이다. 유럽에는 패밀리룸이 없는 호텔도 많이 있는데 패밀리룸을 여름 성수기에 비싸지 않은 가격에 예약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조식도 있을 것은 있고 불필요한 것은 뺀, 딱 독일스러운 호텔체인이다. 유럽 곳곳에 체인이 있다.

https://www.hotel-bb.com/en/germany/hotels-germany


사실 뉴렌베르크에 가서 하고 싶은 것보다는 먹고 싶은 것이 있었다. 뉴렌베르크 소세지와 독일 맥주가 먹고 싶었다. 뉴렌베르크는 소세지로 유명한 도시다. 프랑크푸르트가 유명한 것 아니냐고? 프랑크푸르트 소세지는 꼬들꼬들하고 씹으면 팍 터지는 겉표면이 특징인, 우리가 흔히 아는 후랑크 소세지의 원조이지만 뉴렌베르크 <Nürnberger bratwurst> 소세지는 손가락만 한 짧은 길이에 마조람과 그 이외에도 각종 향신료, 레몬이 들어간 육즙이 풍부한 찐 고기 소세지다. 후랑크 소세지는 어묵의 식감이라면 뉴렌베르크 소세지는 육전을 먹는 느낌이랄까?

마조람 허브


사실 현대의 독일역사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1871년 비스마르크가 독일 왕국을 선포하기 전까지 바이에른지역은 프랑크왕국(5-9세기)-신성로마제국(962-1806)이었다. 프랑크왕국은 843년 세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뉴렌베르크는 동프랑크 왕국에 소속되어 있었다. 영어로 이 지역의 음식은 German food가 아닌 프랑코니언 푸드(Franconian food), 즉 프랑크왕국의 음식이라고 한다. 독일 전통음식이 먹고 싶다면 Franconian food로 검색해 보자.


먹는 것에 진심인 내가 찾아낸 한 맥주양조장 내에 있는 프랑코니안 레스토랑으로 베짱이와 배고프다고 난리를 치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 걸어간다. 왜 차로 안 가냐고 아이들이 묻는다. 하루 종일 차를 탔는데 좀 걸으면 안 되겠니?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 양조장 가는 길. 매우 독일스러운 건물들이 보인다.

걷는 것이 힘들다고 할 때는 언제고 중간에 놀이터가 나오니, 조금만 놀고 싶다며 시간을 끄는 1호와 2호. 엄마인 나는 아주 잘 안다. 놀다가 적정시간이 넘어가고 배고픔이 극대화되면 아이들의 짜증은 오로지 나의 몫이라는 것을. 그래서 밥 먹고 다시 돌아갈 때 시간을 많이 주겠다고 달래서 일단 밥을 먼저 먹으러 간다.


https://share.google/OEEhNRecgxQDlJq2G

우리가 간 곳은 이곳이다. 한적한 주택가 근처에 위치한 곳인데, 테라스는 사람이 너무 많아 앉을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한국의 아줌마가 아닌가. 지하철에서 앉을자리 스캔하는 한국 아줌마처럼 매의 눈으로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다, 한 그룹이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자마자 그쪽으로 달려갔다. 앗싸, 자리 찜!

난독증 유발하는 글씨체, 누가 쓴겁니까?

헉, 메뉴판이 없다. 메뉴판은 저렇게 괴발새발 쓰인 손글씨 칠판이 다인데, 읽기 난이도가 극상이다. 어찌어찌 해독하는 데 성공하여 음식 다섯 접시를 시켰다. 아이 둘에 어른 둘인데, 웨이트리스가 왜 이리 많이 시키냐는 눈빛을 보낸다. 뭘 모르는 소리를... 꼬맹이처럼 보이긴 하지만, 내 아들들도 엄마를 닮아 먹는 것에 진심이다. 넷이면 다섯 접시를 시켜야 한다. 키즈메뉴에 나오는 음식 양은 우리 집 1호와 2호에게는 간식일 뿐이다. 기껏 돈을 내고 밥을 먹었는데 배고프단 소리를 듣기는 정말 싫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닌텐도와 태블릿을 뺏긴 아이들에게 볼펜과 휴지를 주었다. 아이들은 둘이서 행맨을 하며 놀았다. 다섯 살이나 많은 1호는 당연히 2호에게는 넘어서지 못할 벽이었고, 결국 2호가 으앵 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아, 밥 한번 먹기도 참 힘들다. 2호를 어찌저찌 달랬더니 다행스럽게도 밥이 나왔다. 말을 하지 못하게 입에다 일단 넣어주니 먹느라 억울함을 잊는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들을 아래 왼쪽에서부터 설명하도록 하겠다.


슈니츨 밋 카르토플살랏 (schnitzel mit kartoffelsalat): 독일식 돈까스에 감자로 만든 시큼한 샐러드

카서스파츨 (käsespätzle): 주로 남독일, 북부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에서 먹는 파스타의 한 종류

뉴렌베르거 브랏우르스트 x2 (Nürnberger bratwurst):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 동네의 시그니쳐메뉴

슈와이너브랏 밋 클롭 (schweinebraten mit kloß): 돼지고기를 오랫동안 끓여낸 요리인데 우리나라의 돼지갈비와 같이 부드러운 식감이 특징이다. 클롭은 이탈리아 뇨끼를 주먹처럼 크게 만든 것이라 생각하면 되는데, 감자와 전분으로 뭉쳐 만들어 저 하나를 다 먹으면 다른 것을 먹을 수 없음에 주의


밥만 먹으러 양조장에 왔을 리는 없으니, 이 양조장에서 제조한 맥주도 하나 시키고, 독일 함부르크에서 만든다는 독일콜라도 하나 시켰다. 맥주는 신선한 맛이 일품이었다. 맥주부심 넘치는 벨기에인 베짱이가 인정한 맥주는 맛을 보장할 수 있다.


밥을 해결했고, 배가 부르니 아이들도 한결 조용해졌다. 아까 울었던 것은 결과적으로 배가 고파서였다. 그런데 이 둘은 배가 고파도 싸우고, 안 고파도 싸우니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지난 화에서 마음을 비우자 했으니, 마음을 비우자.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아까 들렀던 놀이터에서 놀 시간을 주니, 싸울 때는 언제고 둘이 금세 신나서 시시덕거리며 논다. 여행은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오면서 네 번은 싸우고 운 것 같다. 피곤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나는 하루 종일 차에 앉아서 운전하며 갈 생각에 7킬로 조깅을 했다. 여행 무렵에 다시 이 숙소를 예약했기에 조깅을 하며 역사지구를 잘 살펴보면 돌아올 때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기에 수월하니 일석이조다. 베짱이는 베짱이처럼 잤고 개미는 며칠 뒤 다시 올 이곳을 열심히 뛰면서 지리를 익혀둔다. 그렇게 호텔에 도착해 샤워하고 아침을 먹자마자 크로아티아를 향해 떠난다.


뉴렌베르크 첫날의 기억은 배부르게 먹은 것 밖에는 없다.

미안하다, 뉴렌베르크! 돌아올 때 구경할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