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에 이사 온 지도 대략 8개월 정도가 되어갔다. 네덜란드어 과정을 3단계까지 끝마치긴 했지만 아직 모든 말을 알아듣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유창하게 할 수는 없었다.
모아두었던 돈은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디라도 나가서 일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먹고사는 일에 귀천이 어디 있으랴 마는, 개인의 취향과 소질이 다 다르니, 무엇을 할지 생각을 해 봐야 했다. 한국 대학 졸업장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대학 졸업하고 단순노동을 한다는 것이 씁쓸하긴 했지만, 나는 이곳에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벨기에는 특히나 외국졸업장에 대한 평가가 박해서 세계 유명 대학을 나와도 자기 나라 대학이 아니면 매우 깐깐하다. 심지어 하버드 졸업장을 가진자도 벨기에에서는 자기네 기준을 충족하느네 마네를 가지고 설전을 벌이고 국가기관을 통해 학위수준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벨기에에서는 슈퍼 캐셔도 3개 국어를 하니 일단 슈퍼캐셔는 자격미달이라 탈락. 청소아줌마로 취직을 하자니 나는 청소에 소질도 없고, 청소를 싫어하니 탈락. 일단 말이 안 되니 단순 노동이어야 했다.
한국에서 회사에 잠깐 다닐 때, 스트레스가 심할 때면 차라리 껌종이 싸는 공장에 가서 일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왠지 그런 것이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삶이라... 해외에서의 삶은 그런 것이다. 내가 무슨 배경을 가졌든, 무슨 공부를 했던, 나는 그냥 말 못 하는 벙어리에 귀머거리 외국인 노동자에 불과했다.
벨기에는 interim이라는 단기인력사무소가 있다. 노동직, 사무직 다 선택을 할 수 있지만 지금 내 네덜란드어 실력으로는 사무직은 무리다. 인력사무소 직원이 가공식품 포장 공장이 있는데 일해 볼 의향이 있는지 묻는다.
나는 그거라도 어디냐라고 생각하고 그 제안을 덥석 물었다.
남편은 나보고 미쳤냐고 했지만, 나는 해보지 않고서는 내 적성에 맞는지 안 맞는지는 모르는 거라며 씩씩하게 나섰다.
다음 날 나는 버스를 타고 근처에 있는 도시의 공장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작업반장이 위생 신발과 작업복을 준다. 식품을 만지는 일이라 굉장히 까다롭게 관리를 했다. 그리고 팀원들에게 소개를 했다.
그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 팀이 맡은 일은 가공된 볶음 면과 치킨 윙을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대략 600그램에 맞추어 상자 안에 넣는 일이었다.
아 뭐야. 이 정도는 껌이지.라고 생각했지만.... 이게 웬걸...
어렵다. 매우 어렵다. 그리고 너무 빠르다.
두 시간 여가 지났을까. 팀원들이 나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그램 수좀 잘 넣으라고...
나도 미치고 팔짝 뛰겠다. 내가 대충 짐작했던 600그람은 600그람 근처에도 못 가거나, 아니면 600그램을 훌쩍 넘어 1킬로가 거의 다 되어 가거나 했다. 컨베이어의 맨 마지막 사람이 다시 한번 재고 확인을 한 뒤 덜어내거나, 더 넣거나 했는데 나의 거지 같은 실력으로 그녀의 일이 매우 늘어난 것이다.
나는 나 대로 너무 힘들었다. 2시간 동안 컨베이어 벨트 옆 자리에 서 있으려니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저리고 죽을 맛이다. 게다가 욕은 욕대로 들어먹어서 민망하고 어디 가서 숨고 싶다.
드디어 찾아온 휴식시간... 다른 동양인 여자가 말을 걸었다. 그 사람 또한 네덜란드어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비슷한 동양인의 외향이 마음을 편하게 했기에 휴식시간에 같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사람은 네팔에서 왔다고 했다.
한편, 우리가 앉아있던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고인 물 팀원들이 우리를 쳐다보며 자기들끼리 수군댄다. 이 전의 귓구멍에 딱지 지도록 칭챙총 편에서 썼던 소위, 화이트 트래쉬 부류의 사람들이다. 자세히 보니 더 가관이다. 싼 맛이 줄줄 흐르는 염색된 가짜금발에, 여기저기 문신( 요즘 젊은 사람들이 하는 그런 문신이 아니다. 푸르딩딩하게 변색된 잉크로 된 조잡한 문신이다)에, 몇 사람은 앞에 이빨이 몇 개가 없다. 임플란트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서였으리라....
저네들 입장에서 보면, 동양에서 온 외노자들이 자기들의 일자리를 뺏어가고, 일도 잘 못하니( 태어나서 처음 하는 일을 어떻게 잘하냐고요) 싫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눈칫밥이란 눈칫밥은 겁나게 배부르게 먹고, 일주일처럼 길게 느껴지는 8시간을 공장에서 보내고 돌아왔다.
나의 결론은, 직업에는 귀천이 없지만 내가 가진상식과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은 그 공장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팀원들의 따돌림을 힘 없이 받아들이던 네팔 여자와, 외국인을 영역침입자라고 생각하며 나에게 똑바로 하라고 소리 지르던 화이트 트래쉬들...
그래도 나름 좋은 시도였다. 또 이렇게 많은 것을 배웠으니. 벨기에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고, 사람 같은 대접을 받고 싶으면 공장에 가는 대신에 그 시간에 더 빨리 네덜란드어를 배워서 나와 비슷한 가치관과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속한 곳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일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인력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내일 다시 와서 일하지 않겠냐고. 이제 앞으로 이곳에서는 일하고 싶지 않다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네덜란드어를 반드시 잘하게 되어서 꼭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야 말 거야. 그렇게 마음속에 그 다짐을 꾹꾹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