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그 말에 오전 6시부터 눈이 번쩍 떠졌다. 2박 3일 출장을 마치고 밤늦게 귀가한 데다 토요일인 만큼 원래라면 아직 단잠에 빠져있을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용수철처럼 튕기듯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빠의 그 말이 바로 체감이 된 건 아니었다. '농담하시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출장을 떠나기 바로 전 날까지만 해도 나와 저녁 산책을 나갈 정도로 건강했기 때문이다. 출장 중에도 돌돌이가 아프단 말은 전혀 듣지 못했다.
돌돌이가 매일 잠을 청하던 아빠 방으로 가보니 돌돌이는 입을 벌린 채 축 늘어져 있었다. 딱 보기에도 평상시 상태가 아니란 건 알아챌 수 있었다. 집에서 대소변을 보지 못하던 돌돌이는, 가족들의 귀가 시간이 늦어져 제때 산책을 못 나갈 때에도 대소변을 참던 돌돌이는, 참는 게 고통스러웠는지 뒤늦게 산책을 나갈 때면 낑낑거리던 돌돌이는, 마지막이 돼서야 이불에 실수를 해놓았다. 본인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겠지만.
첫째 '깜돌이'를 보낸 지 1년 반 만에 우리 셋은 다시 이천으로 향했다. 차에서 아빠로부터 듣게 된 내막은 이러했다. 23일 오전 아빠와 산책을 나간 이후 오후부터 상태가 좀 좋지 않았다. 그날 오후 처음으로 산책 나가길 거부했다. 저녁에는 밥을 먹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이렇다 할 예후가 없어 부모님도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나는 그날 밤 11시에야 집에 들어왔다. 돌돌이가 나오지 않아 이상했지만 시간이 늦어서 자는가 보다 싶었다. 그리고 아빠가 새벽 2시에 깨셨다. 돌돌이가 이미 방에 한가득 토해놓은 상태였다. 아빠가 토를 치우는 동안에도 돌돌이는 눈치를 보며 아빠 곁을 알짱거렸다고 했다. 아빠가 사체를 발견한 시점이 오전 6시인 점을 고려하면, 겨우 3~4시간 사이에 숨이 멎은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솔직히 '이럴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생명이란 끈질긴 것이 아니었나? 외상이 없는데도 단 몇 시간 만에 숨이 끊길 수가 있다고? 그렇게 통통하고 건강하던 애가?
화장을 시키기 전 마지막 모습을 지켜본 장례식장 사장님은 "돌돌이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라고 말하셨다. 산책 중에 뭔가를 잘못 주워 먹은 게 틀림없었다. 엊그제 단지 내 수목 소독을 했다던데 그 소독제가 묻은 풀을 핥은 걸까? 아니면 유박 비료를 먹은 것일까. 돌돌이가 몇 시간만 더 살아 있었어도 병원에 가서 그 원인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 그리 급하게 떠난 것인지.
원래라면 오늘(25일) 내가 돌돌이와 산책을 나갈 예정이었다. 돌돌이는 볼일 때문에 하루에 두 번은 산책을 나가야 했고, 부모님이 여행 가실 때면 늘 내가 그 일을 대신하곤 했다. 그래서 출장이 끝나자마자 휴가를 붙이지 않고 올라온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그 순간에도 돌돌이의 부재가 와닿지 않았다. 엊그제 산책에서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었다던데...
한 시간 만에 7.5킬로그램짜리 강아지는 한 줌의 뼛조각으로 돌아왔다. 초롱초롱하던 눈망울, 바람에 살랑거리던 털, 특히 우아하게 흩날리던 긴 꼬리털 등은 잔상으로만 남게 됐다.
아빠는 그 모습을 보고 "말을 할 줄 알아서 '나 아파'라고 했다면"이라고 푸념했다. 생각이 많아졌다. 만약 그 아이가 새벽에라도 울었더라면. 깜돌이가 아플 때 그랬듯 큰 소리로 깽깽거렸더라면. 새벽 4시에라도 아빠는 깼을 것이고 우리는 바로 병원에 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정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대신 돌돌이가 유기견으로 겪었을 과거가 원망스러워진다. 2016년 8월 30일 엄마가 처음 발견한 돌돌이는 차에 치일 뻔한 상태였다. 왼쪽 눈은 안의 살이 비집고 나와 마치 종양처럼 자리 잡은 모양새였고, 삐쩍 마른 데다 모질은 빳빳했다. 중성화 수술도 되어 있지 않았다.
사람이 쓰다듬으려 하면 꼬리부터 말았다. 사람이 안으면 버둥대기만 했다. 사람의 손길을 원하고 심지어 품에서 재워달라고 칭얼대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랐다. 위에서 말했듯 집에서 볼일조차 보지 못했고 낑낑거리는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버려지기 전 어떤 취급을 당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왜 아플 때 울지 못했는지까지도. 그로 인해 돌돌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끝내 울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가버렸다.
아빠도, 엄마도, 나도 장례식장에서 끝내 울지 못했다. 울지 못하는 바람에 떠나버린 강아지를 앞두고 쉬이 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돌돌이의 생전 모습. 엄마가 잘 먹이고 잘 씻어서 유기견 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제법 우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