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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do Rossi 6 -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Milano

by 고달블루

드디어 밀라노에 도착했다. 밀라노 교외에 있는 주거단지 Gallaratese 2단지를 방문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탈리아에 안정기가 찾아왔다. 밀라노에는 점점 인구가 늘기 시작했다. 늘어나는 인구에 비해 밀라노에는 살 곳이 많지 않았다. 정책적으로 13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주거단지 건설사업이 만들어졌다. 부지는 1단지와 2단지로 나뉘었고, 내가 방문한 곳은 2단지에 해당한다. 2단지 건설 프로젝트를 수임한 회사이름은 Studio Ayde이다. 설계사무소 Studio Ayde의 사장은 Carlo Aymonino였고, 창립멤버이자 파트너로 Aldo Rossi가 있었다. Aymonino는 5살 어린 후배인 Aldo Rossi에게 단지 내 일부를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Aldo Rossi의 데뷔작인 것이다. Aldo Rossi는 이 건물의 설계를 참여한 실적 덕분에 모데나 납골당 설계의 입찰을 따낼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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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무드는 Aymonino가 잡고, Aldo Rossi는 거의 왼손을 거들정도로 참여한 느낌이다. 약간 명분상의 참여 같기도 했고, 잘 나가는 선배가 재능 있는 후배를 띄워주려는 속셈도 좀 보였다. 실제로 가서 보면 Aymonino의 전반적인 설계와 Aldo Rossi의 것이 믹스되어있지 않고 분절되어 있어서 엥? 하는 느낌을 들게 한다. 하지만 Aymonino의 것이 획기적이기도 하고 사이버 펑크스러운 면도 있고, 아름다웠다. Aldo Rossi에게는 든든한 형아 선배가 있었구나,,, 여기에 참여한 덕분에 그의 커리어가 대단해졌으니, Aldo Rossi에게 Aymonino는 강호동의 이경규 같은 존재려나.


_DSC6279.JPG 입구

건축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아무래도 이 아파트단지에 자주 찾아왔었나 보다.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말고는 들어갈 수 없게 되어있었고, 입구 쪽 경비실 벽면에 '거주자 이 외 출입 금지'라고 쓰여있었다. 이럴 때가 흥미로운 것이다. 나는 들어가고 싶다! 경비실에 전화를 하고 문을 두드려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발을 동동거리며 있었는데, 안쪽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장을 보러 나가는지 장바구니를 들고 입구 쪽을 향해 걸어왔다. 내가 할아버지에게 외쳤다. "당신 여기 사시나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성큼성큼 걸어왔다. 할아버지가 윙크를 찡긋 날리시며 말한다. "Aldo Rossi?"

키야.... 멋진 순간이다. 할아버지 자신이 살고 있는 건물의 건축가가 Aldo Rossi인 것을 안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나 같은 외국인이 경비실 문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고 싶은 표정을 짓고 있는 걸 구경하는 건 어떤 느낌일까. 할아버지는 아주 당연하고 늘 그렇다는 듯 나를 Aldo Rossi의 Big Fan으로 취급해 주시며 거주자만을 위한 입구의 쇠문을 열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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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을 하며 깨달은 점이 있다. 건축 기행을 한다는 건 스스로를 아주 교양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마법동굴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보통 유명한 건축물들이 관광지와는 별개로 외곽에 존재하기 때문에 랜드마크나 관광지와는 뜬금없는 곳에 위치할 경우가 많다. 그곳에 찾아가 카메라를 들고 찰칵거리며 두리번거리다 보면 행색이 비슷한 찰칵 맨을 꼭 마주하게 된다. 서로를 마주 보며 눈인사를 한다. 그 찰나의 눈인사 속에는 이런 많은 말들이 섞여있다. "너도 이 건축가 좋아해? 나도. 아 정말? 너는 어디서 온애니? 정말 멋지다. 나도 멋지지 않니? 사진기는 뭐 쓰냐? 그걸로 충분하니? 내 카메라가 더 좋은 거 같은데? 우린 정말 교양 있어 하 참나, 내가 낯을 가리지 않았더라면 오늘 너랑 술이나 밥을 먹었을 텐데, 너도 알겠지만 내가 부끄럼을 많이 타잖아. 나중에 보자. 여행 잘하고. 어디 또 멋진 건물 앞에서 볼 일이 있겠지... 카메라는 좀 더 좋은 거 사고,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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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와 미래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아직은 30대 초반, 아직은 젊고, 아직은 꿈을 품어도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다가, 쾌쾌 묵은 현실적인 방안과 선택들이 눈앞에 너무 똑바로 정확하게 놓여있을 때면 앞날을 등지고 망상을 즐기고 싶어진다. 30대 초, 지금 나이에 새로 시작하게 되거나 당장에 하고 있는 일이 결국엔 내 평생의 업을 결정지을 거 같은 기분이 든다. 한마디로 지금 하게 되는 걸 죽을 때까지 하게 될 거 같은 기분이다. 그럴 때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싶은 대로 놔두고, 돈이나 벌까 싶다가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싶다가도 하고 싶은 일이 업이 되어버리면 그 얼마나 슬픈 저주일까 절망하게 된다. 그러니깐 아주 원론적이고 고리타분한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인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할지, 원래 살던 대로 살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각 나이대마다 어떻게 살지 고민해 왔고 앞으로도 하겠지만, 지금 나이의 선택은 낭만의 잔향을 손으로 꽉 질 것인지 말 것인지 하는 문제의 마지막 기로라고 수없이 되뇌게 된다. 구세주 같은 형아, 선배, 선생님이 나의 인생이 아주 괜찮고 멋지다고, 나의 미래는 운명적으로 성공의 가도를 달리고 있다고 위로해 주길 기다리고 있다. 생각보다 많이 괴롭고 찝찝하고 습한 생각이다. 장마가 와서 그런지...(한겨울에?)

이내 나를 위로해 주거나 달래줄 형아, 선배, 선생 따위를 키워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Aldo Rossi 선생님, 당신도 이런 기분이었나요. 아니면 Aymonino 형아가 잘 위로해 주던가요. 나중에도 계속 사이좋게 잘 지내셨나요? 싸우지는 않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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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이메일로만 소통하는 선생님들이 몇몇 계신다. 6년 전 나는 내 진로와 미래에 대한 고민이 담긴 편지를 선생님들께 보냈다. 차갑지만 따뜻한 글쟁이 선생님께서 답장을 주셨다. 오늘처럼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할 때면, 선생님의 답장 말미에 있던 문장이 맘속에 맴돈다.


"회의와 불안은 젊음의 특권인 것 같습니다.

그 회의와 불안 속에서 잠들지 못하는 나날들을 갖기 바랍니다.

조만간 뭔가 길이 보이겠지요."


좋게 말하면 아직은 내가 젊다는 뜻이다. 나는 회의와 불안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 특권을 꽉 붙잡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 말은 잔인하다. '조만간 뭔가 길이 보이겠지요.'는 슬픈 말이다. 조만간: 추상적인 시점, 뭔가: 추상적인 것, 보이겠지요: 아마도?

정말 어떠한 문장도 위로될 것이 없는 말이지만,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는 문장이다. 내 미래가 개차반이더라도, 길이 보일 수도 안보일 수도 있지만 회의와 불안으로 잠 못 이루는 것이 당연하다고 위안받는 것이다. 딱 그거 하나다. 엄청난 위로의 문장이지만 아픈 말이다.


요즘 주변을 둘러보아도 다 비슷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산다. 뭘 해 먹고살지. 40대의 성적표를 위해 30대의 나머지 공부는 어떤 것 일지, 돈을 어떻게 더 벌고, 하고 싶은 일은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지 등등. 어른들의 삶을 보면 생활수준의 변화에 따라 관계가 멀어지기도 한다. 지금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과 내가 부디 성공하지 않더라도 자기 분수를 알고 꼬이지 않고 적당하게 살아남아 좋은 친구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다. 조급해지거나 열등감이 생겨 꼬여가는 친구들을 보게 된다. 자존심이 앞을 가리고 꼬여있는 마음을 아무리 가리려 해 봐도 조급한 태도를 숨길 수 없다. 언행에서 얼핏 얼핏 날 선 이야기가 오가기도 한다. 관계에서의 온정을 잊고 질투와 인정욕에 허덕이는 친구들이 있다. 과거의 과오가 현재를 만들어간다. 현재의 과오가 미래를 결정짓는다. 당연하고 무서운 생각에 사로잡힌다. 방법이 없다. 정면승부다. 대가리 박고 정진하는 수밖에... 게으르지 않고 순발력 있게. 뭔가를 자꾸 가리려 하고, 폼 잡고 어깨에 힘주고 자랑하고 자존심 부리고 멋져 보이고 싶은 마음은 현실과의 괴리에서 사람들을 꼬이게 만든다. 딱 꼬이기 좋은 나이가 되었다. 냉정하게도 이제는 걸러지기 시작한다. 삶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는지. 정직했는지. 정진했는지. 노력한 만큼 인정에 대해 요구했는지. 질투심에 상응하는 솔직함과 노력이 있었는지. 부족함을 받아들였는지. 몸과 마음이 치열했는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하기 싫은 것을 했는지, 내면의 사이즈가 결정되기 시작하고, 관계가 멀어질 사람들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생활수준이 달라 멀어진 어른들의 관계는 경제력이나 자산 수준 때문이 아니다. 양심껏 노력하지 못한 인물의 뒤틀린 내면이 친구의 성공을 맘껏 부러워할 수 없어서일까. 인정욕과 자가당착이 불러온 좌절감일까. 한 인물의 자기 확신이 친구를 찍어 누른다. 배척의 대상이 친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현실은 차갑다. 난 정말 꼬이고 싶지 않다. 솔직해져야 한다. 부러운 것이 부럽다고 말하기 어려울 때 졸라 부럽다고 말하고 살겠다.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 하기 싫은 일을 더 많이 하자. 받아내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좀 더 명확하게 규명하자. 도망가지 말자. 기분 상하는 일에 피하지 말자. 투신하자.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후회가 없기 위해서. 한 판 신나게 놀았다 자신할 수 있을 때까지 거칠고 명명하게 살아야 한다.


_DSC6296.JPG 노란 통로 1
_DSC6297.JPG 노란 통로 2
_DSC6298.JPG 노란 통로 3


40대가 된 언디형이 있다. 언디형은 대중을 개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본인이 대중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어, 스스로를 잘생긴 개 혹은 날씬한 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 참, 언디형은 신앙심에 기대어 심리적 안정을 쫓으며 마음이 건강하다는 것을 내보이고 자랑하는 신앙물적 사람이다. 언디형은 내가 가까이 지내는 인물 중 가장 팬시하고 매끈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내면을 유지하는데 에너지가 얼마나 많이 들었을까. 달리기, 테니스, 축구로 심신을 달련한다. 내가 언디형을 향해 힐난을 수소폭탄만큼 퍼부어대도 언디형은 깔깔 웃고 만다. 그리고 사람 좋은 척하는 이상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난 네가 욕할 때 참 좋아." 비난 앞에 생글거리는 미소는 무지개반사 같은 효과가 있다. 내가 언짢은 건 언디형의 미소가 무지개반사의 효과를 내기 때문이 아니다. 언디형의 미소는 무지개반사이길 바라고 있는 게 보이기 때문에 짜증이 난다. (진짜 짜증 난다 그거). 그게 진심으로 많이 불쾌하지만, 언디형의 미소가 농담이 될 수 있는 건, '무지개반사이고 싶은 미소'에서 추접한 꾸렁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진실로 비난 앞에 처연한 척하는 미소였다면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언디형의 불편한 무지개반사 미소는 건강한 면이 많이 있는 거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형의 무지개반사이면에 자조적인 느낌을 받기도 하니깐.


거진 모든 대화 흐름의 예시:

"뭘 얘기할 때 힘 빠지게 신앙심 끌어오지 마 짜증 나니깐."

"응~ 난 그런 작은 존재야"

"열받게 그런 것 좀 하지 마! 신앙심이 있으면 졸라게 겸손해야지. 방금 그 멘트가 오히려 거만한 거야!"

"신앙심을 질투하는구나? 큭큭"

"술 마셔 술!"


언디형은 거진 후회를 하지 않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그렇다. 속은 나도 알 수 없다. 형이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걸 보면 그 스스로도 뭔가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 있는가 싶기도 하다. 무튼 적당한 후회만 술안주거리로 얘기하던 형이 얼마 전 후회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20대, 30대 때 글을 좀 더 열심히 써볼걸 그랬어. 이제 40이 되는데 남는 게 없다는 기분이야. 나는 4년간 지속적으로 형한테 글을 좀 잘 써보라고 권유했었다. 대중을 싫어하면서도 대중적인 형의 이중성을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은 쓰지 않았다. 그리고 후회한다고 말한다.

나는 알고 있다. 형은 글쓰기에 관심이 없다. 이 후회마저도 사실은 적당한 안주거리 후회일 것이다. 왜냐하면 글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형과 나는 만나면 이런저런 교양 있는 수다를 떨지만 형은 교양에 쥐뿔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형은 교양의 깊이가 던져줄 고통에 대해 그것을 필요조건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형은 아름다운 것과 좋은 글을 탐닉한다고 얘기하지만 사실은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형의 독서는 스스로를 향해있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관심사가 교회와 테니스와 가족밖에 없으면서!!! 그래도 형의 글이 보고 싶은 건 사실이다. 참 적당한 사람이다. 물론,, 꽤나 많이 소모당하는 기분도 들지만, 그마저도 영광이다. 내가 모르는 어떤 가면을 언디형은 아직 쓰고 있을까? 언디형이 더 나이 먹기 전에 후회와 불안으로 잠들지 못하는 나날을 보냈으면 좋겠다. 글쓰기는 무조건 옳다. 글쓰기는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좋은 건 같이하고 싶다.

(언디형과의 관계가 유지되는 이유는 언디형이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던 형은 들어주기는 한다.ㅎ)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공존하는 것이라고, 시간이 하나의 물성이라고 과학 유튜버가 말한다. 뭔 얘기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지만 언뜻 공감하게 된다. 내가 지금 미래를 위해 살고 있는지 현재를 위해 살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결국엔 그게 그거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글을 쓰고 음악을 들을 때면 과거의 안 좋은 기억들(오히려 추억인 것들)로 도피해 버린다. 그 시간이 좋다. 그 시간이 그 시간이다. 도피해서 꺼내온 나의 기억들과 과거가 오늘의 나인데, 그게 미래의 나다. 언디형도 나도 평생 바뀔 수 없는 존재일까 싶다가도, 변모하는 기억들에 흠칫 놀라며 진화하는 스스로에 대해 희망을 품고 꿈을 꿔본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세상은 정말 다양한가. 세상이 다양하다는 건 혼탁하다는 건 아닐까. 세상은 옳음을 잃고 휘리릭 부유했고, 나는 표상에서 맴도는 나방 한 마리뿐일까. 세상은 정말 다양하다...


_DSC6299.JPG 과거
_DSC6306.JPG 기억 속
_DSC6311.JPG 아차차 그때 나도 여기를 올려다봤었지.


삼고초려는 유명한 일화다. 큰 일을 하고 싶은 유비가 제갈량을 본인의 책사자리에 앉히기 위해 세 번 찾아갔다는 일화다. 일고초려가 있고, 이고초려가 있고, 삼고초려가 있는데, 각각 마다 유비가 최주평, 제갈량과 나누었던 일화들이 유명하다. 일고초려 때 제갈량은 집에 없었고, 제갈량의 베프인 최주평과 유비가 나누었던 일화를 나는 참 좋아한다. 어지러운 세상을 정리하고 세상을 옳게 만들기 위해 제갈량을 찾아왔다는 유비를 향해 최주평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공께서 난을 평정하는 것을 으뜸으로 삼으십니다. 비록 이것이 어진 마음이긴 하나, 다만 예로부터 다스림과 혼란은 늘 일정한 법도가 없었습니다. 고조께서 뱀을 베어 죽여 의로운 병사를 일으켜, 무도한 진나라를 토벌한 것은 난의 세계에서 치()의 세계로 들어간 것뿐입니다. 애제(哀帝)와 평제(平帝)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200년간 태평세월이 오래됐으나 왕망(王莽)이 찬역 한 것은 치에서 난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광무제께서 중흥해 나라의 토대를 다시 바로잡은 것은 다시 난에서 치로 들어간 것입니다. 지금까지 200 년간 백성들이 평안한 지 오래이더니 또 전쟁이 사방에서 다시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치에서 난으로 들어가는 때이니 공이 세상을 평정할 수는 없습니다. 장군께서 공명을 시켜 천지를 되돌리고 세상을 바로잡으려 하시지만 쉽지 않아 헛되이 몸과 마음만 써버릴까 두려울 뿐입니다. '하늘을 따르는 이는 편안할 것이요 거스르는 이는 수고로울 것이다.'라든가 '운수에 달린 것을 이치로 빼앗을 수 없고, 운명에 달린 것을 사람이 강제할 수 없다.' 하는 말을 장군께서 어찌 듣지 못하셨겠습니까?


치는 수렴의 세계, 난은 확장의 세계이다. 최주평은 세상이 혼란하고 평화롭고의 주기를 200 년으로 잡고 있다. 어차피 하늘이 정한 치난의 주기가 200 년인데, 유비 당신이 어떻게 이 세상을 바로잡고 어지럽히고 할 수 있겠느냐. 세상은 그저 하나님이 뜻한 대로 움직일 뿐 네가 하는 건 거의 없을 거라고 얘기한다. 이는 확장과 수렴, 주름 안의 주름, 미장아빔과 같은 허무주의적 이야기다. 물론 들뢰즈는 미장아빔을 설명하면서 그 안의 진보적인 의미를 창출하려 한 것 같지만 난 도통 그게 뭔 소린지 잘 이해가 안 된다.


제갈량은 유비를 따라 세상을 정평하러 나갔고, 최주평은 그대로 산속에 파묻혀 살았다. 제갈량은 운동에너지이고, 최주평은 정지에너지이다. 심지어 삼국지 스토리에서 유비는 천하를 평화롭게 하거나 어지럽히거나 통일하거나 뜻하는 바를 이룬 것이 없다. 결국엔 제갈량도, 유비도, 조조도, 손권도 아닌, 엉뚱한 사마염이 삼국을 통일했다. 최주평은 틀린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비가 주인공이고, 제갈량이 주인공인 이유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움직이는 진보적 속성을 가졌기 때문인 걸까. 그게 들뢰즈가 설명한 미장아빔의 참된 의미일까. 카뮈가 얘기하는 시지프스일까. 최주평은 분지에 머물렀고, 제갈량은 주름을 피려고 고군분투했다. 무엇이 더 옳은 인생이냐 묻는다면 최주평이다. 무엇이 더 의미 있냐 묻는다면 제갈량이다. 나는 옳음과 의미가 공존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아마도...?) 그래서 고민이 많다. 내가 의미 있게 살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아서 옳음으로 도피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의미 있게 살고 싶다. 들뢰즈의 것이 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도 기억하는 이유는 내가 정지에너지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삼국지는 옳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의미에 대한 이야기다. 의미 또 의미 또 의미.


무욕(無慾)만 한 탐욕(貪慾) 없습니다.

그것 말고

강호 제군의

고만고만한 욕망

그것들이

이 세상과 저 세상 사이의 진리입니다.


-고은 '순간의 꽃' 중-


_DSC6313.JPG 엄마가 생각나는 사진
_DSC6317.JPG 어른이 되어 버린 느낌
_DSC6322.JPG 엄마를 기다리던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있어
_DSC6324.JPG 어른이 된 나는 과거의 나를 바라보는 나를 바라보고 있어

나는 끊임없이 유형의 가치를 꿈꾼다. 유형만이 무형의 표상이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의 무형의 가치를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나의 무형적 가치를 유형으로 치환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 방법은 진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단 태어나고 보면 재미있어야 한다. 탄생은 불행이기 때문에, 추상적인 행복론은 추구할 가치가 없다.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야 말로 참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난 모든 인간들이 재미있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다. 재미있어야 한다. 나의 재미는 격변에서 온다. 나의 움직임이 격변을 꿈꾸는 소수의 움직임이길 바란다. 재미없고 행복한 사람들에게 불행과 재미를 선사하고 싶다. 살아갈 이유와 질투와 분노를 주고 싶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고 싶다. 격변에 동참하고 싶다. 대의를 잃었다면 대의를 만들고 싶다. 윤리를 모르는 사람에게 윤리를 심어주고 싶다. 싸우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분노를 유발하고 싶다. 분지는 주변에 둘러싼 산을 무너뜨려야 할 운명에 처한다. 분지에 떨궈진 테러리스트가 된 것 마냥 광폭의 의미=재미를 찾아 떠난다!. 이 세상은 미장아빔처럼 분지 안에 분지 안에 분지 안에.... 분지는 그만큼 격변가능한 잠재력을 가졌다. 분지적 상황은 추상적인 무형의 환경이며, 테러리스트는 유형의 행동을 의미한다. 최주평의 심성을 가진 나 조차도 제갈량의 행동이 의미라고 생각한다. 생각과 행동은 일치해야만 생각이 생각이고 행동이 행동이다. 둘의 관계가 불일치하다면 둘 중에 하나는 거짓이다. 그러니 앞서 의심한 '다양한 세상'은 분지적 세계관이자 추상적인 무형의 공간이다. 옳을 순 있어도 의미가 없다.


_DSC6341.JPG 자전거를 탄 소년이 노란 기둥 사이사이를 휭휭~
_DSC6342.JPG 스타디움의 쿵쿵거리는 베이스우퍼와 응원소리에 멀미를 했고 이 근처 어딘가에 몰래 토를 하고 도망친 기억이 있다.
_DSC6351.JPG 안식의 집을 바라보는 베르디


유복한 집에서 태어난 베르디는 지금으로 치면 하이브의 방시혁 같은 사람이다. 작곡가로 시작해서 대형 오페라의 기획자, 기획자이자 음악가이자 총괄프로듀서에서 사업가로 넘아가는 인생을 살았다. 베르디는 유명해진 뒤로는 곡을 거의 쓰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 관차원에서 대형 오페라가 기획되면 직접 나서 AtoZ 전두지휘해 프로듀싱을 했고, 본인이 직접 대형편성의 곡을 썼다고 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스케일이 큰 작업들은 베르디가 도맡아 할 수 있게끔 되었다. 뒤돌아보니 부가 많이 쌓인 베르디는 작곡생활을 거의 은퇴하다시피 하고 상속받은 땅에서 농부가 된다. 말이 그냥 농부지 농지가 컸던 관계로 그마저도 수입이 짭짤했다. 클래식 작곡가중에는 역대로 가장 많은 부를 축적한다. 방시혁이 향 후 어떤 인생을 살지는 모르겠지만 베르디는 가진돈을 자신의 동료 음악가들을 위해 쓴다. 거의 전재산을 털어 밀라노에 멘션을 짓는다. '카밀로 보이토'라는 당대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이 멘션은 향 후 양로원 건축에 귀감이 되었다고 한다. 이 집의 이름은 '안식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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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의 집


안식의 집에 들어갔을 때, 이런저런 악기 연습소리가 들렸다. 가난한 음악가들만 입주할 수 있는 조건이 아직도 유지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베르디가 이 집을 지었던 시절과 비슷한 소음이 들린다는 것에 위로와 감동이 있었다. 안식의 집에 방문한 날이 하필 날도 좋아서 건물 안쪽의 중정에 보이는 경치도 일품이었다. 항시 가운데에 뭔가 중요한 게 보이게끔 하는 구도. 베르디는 자신이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이 이 집을 지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많은 히트작을 남기고서 그런 말을 하는 건 유세일까 건방일까 언론과 세상을 향한 자기 과시적 언어일까. 중요하지 않다. 이 의심이 스치듯 지나갔지만 고개를 저으며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의심을 꾹꾹 눌러 담았다. 이 집에 와서 느끼는 감동이 내가 베르디였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베르디의 친구였으면 하는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 베풀 수 있는 베르디가 되었건, 베르디의 친구가 되어 혜택을 보던, 그 행동이 그 생각이고 그 생각이 행동이 된다. 현상이 일치되어 있으니깐 이는 의미가 있는 일이 분명하다. 그러니 베르디의 언사에 대해 괜히 의심한 내가 쫄쫄한 인간이다. 생각을 고쳐먹어야 한다.


_DSC6356.JPG 안식의 집 내부 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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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간 아내와 함께 안식의 집 내부에 묻힌 베르디.
_DSC6362.JPG 왠지 피아노를 닮은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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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자들의 명단. 토스카니니 아들과 토스카니니의 딸이자 호로비츠의 아내인 완다의 이름도 있다.


바우하우스에게 바이마르와 데사우라는 도시가 있다면, 미래주의자들에게는 밀라노라는 도시가 있다. 거의 모든 이탈리아의 유행은 밀라노를 통하지만 미래주의가 밀라노를 통한 것은 나에게 미스터리 한 이야기다. 미래주의는 20세기 초 융복합적인 문화사조이다. OOism과 같은 무슨무슨 주의들은 콘텐츠에 봉사한다. 건축에서의 기능주의는 건축물이라는 피지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파우비즘이라는 야수파 그림은 그림을 그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음악에서의 낭만주의는 작곡되고 연주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담론이다. 하지만 미래주의는 다르다. 말 그대로 '미래' 적인 모든 것을 끌어와 변혁을 일으키고 과거의 것을 청산하고 싶어 한다. 미래주의라는 방향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담론에 이탈리아 예술가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마치 옛날에 '힙합'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될 때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힙합은 랩음악도 아니고 그래피티도 아니고 춤도 아니란다. 그냥 삶이란다. 삶이 리얼하고 정직하고 절벽 위에 서있다면 힙합이란다. 미래주의도 그렇다. 미래주의는 그림도 새로워야 하고 건축도 시도 새로워야 했다.

심지어는 먹을 것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탈리아 국민요리 파스타가 인간을 게으르고 살찌게 만든다며 기괴한 레시피들을 제공했다. 가스트로피직스의 최초발단이 미래주의의 요리레시피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가장 맛있는 양파는 '뱃사람의 애인 엉덩이처럼 뚱뚱한 양파'로 묘사되기도 하고, 대표적인 다람쥐 요리 레시피에는 다람쥐가 들어가지 않는다. 닭 안에 비행기 베어링을 쑤셔 넣어 삶은 후 죽은 다람쥐의 가죽을 접시 위에 올려놓고 베어링을 쪽쪽 빠는 것 등이 미래주의의 다람쥐요리 레시피이다. '가스트로피직스: 왜 맛있을까?'라는 책을 쓴 심리학자 찰스 스펜스 또한 미식(가스트로노미)에 대한 탐닉의 시초를 미래주의로 언뜻 언급한다. 뇌과학 적으로 맛을 느끼는 부분은 아주 작고 시각적인 경험이나 소리 향기 분위기 등이 맛을 좌우하는데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대개의 파인다이닝 식당들은 접시와 포크가 긁히는 소리부터 물컵이나 와인잔이 입에 닿는 두께와 촉감 조명의 조도등을 신경 쓴다고 한다. 소가죽으로 만들어진 접시 위에 놓인 딸기가 맛있을까 하얀 세라믹 그릇에 놓인 딸기가 맛있을까. 후자가 더 맛있다고 느낀다. 인간은 맛 그 자체로 맛을 판단할 수 없는 존재이다. 소가죽 접시와 세라믹 접시는 이미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맛을 결정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래주의의 강철 베어링을 빨면서 보는 다람쥐 가죽과 뱃사람의 애인 엉덩이가 요리 레시피로서 등장하는 것은 무척이나 직관적인 미래주의적 발상이었다.

알프스산맥을 기점으로 북쪽인 서유럽 국가들(독일, 프랑스, 영국 등)은 산업혁명의 수혜자이면서 과학의 진보와 물질의 풍요를 경험하는데 반해 이탈리아는 가난했고 산업적인 발전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미래주의 운동가들은 사람이 무엇을 먹는지에 따라 사상과 이념을 결정짓는다고 믿었고 파스타가 이탈리아의 산업발전을 저해했다고 주장한다. 전통적인 요리가 자꾸 전통만을 고집하게 했고 그것이 게으른 태도라는 것이다. 미래주의 운동의 창시자이자 시인인 마리네티는 소리 지른다. 아직도 대가리 잘리고 팔 잘린 사모트라케의 니케 조각상이 이쁜가! 빠르게 질주하는 기차가 더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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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을 탄생시킨 장본인이자 미래주의 수장 마리네티의 묘


마리네티의 호소에 움베르토 보치오니, 카를로 카라, 자코모 발라 등의 예술가들이 뭉쳤다. 미래주의자들의 호소는 이탈리아의 극우주의자와 극좌주의자들을 한데 모았다. 좌우를 따지지 않는 극주의자들이 미래주의자가 되었다. 아주 정도를 모르는 인간들이다. 이 움직임은 나아가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마리네티는 파시스트로서 활동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유럽사의 비극이 히틀러로 끝나버렸고, 중국은 마오쩌둥의 천안문사태로, 소련은 러시아로 망해서 파시즘의 태동기가 비교적? 주목받지 못하지만, 이 인류사의 큰 사건이 되어 준 1,2차 세계대전의 가장 중요한 씨앗이 되는 사상은 미래주의 양면성이었다. 미래주의자들의 건축물은 되려 브루탈리즘과 결탁해 있었고, 미래주의 그림들은 청기사학파와 비슷해져 있었다. 미래주의 음악이라는 것은 쇤베르크의 12 음기법을 넘어서지도 못했다. 하지만 사상으로서 분명하게 존재한 미래주의는 '거부', '발악'. '새로움'이라는 맹목적 가치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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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모 발라의 그림 '줄을 단 개의 역동성' 과 보치오니의 '공간에서 연속성의 독특한 형태'


이후 이탈리아 파시즘은 건축에 관심을 쏟았다. 사상과 이념적 가치를 상징하는 가장 거대한 계획은 언제나 건축에서 일어난다. 쥬세페 테라니라고 하는 걸출한 건축가를 탄생시켰다. 그의 대표적인 건축물 이름도 Casa del Fascio이다. 건축에서의 모더니티가 콘크리트와 함께 시작되었지만, 콘크리트를 쓰던 대리석마감을 하던 파시즘 건축은 현대 건축까지도 가장 럭셔리한 건축물들이 되었다. 한국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이탈리아 파시즘 건축물은 현대백화점 판교, 네오위즈 사옥 등이 있다.


_DSC6414.JPG 마티니 음료회사의 본사가 정 가운데 있다.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의 대문호 단테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성전을 짓고 싶어 했다. 파시즘 건축에 앞장선 쥬세페 테라니는 단테에서 이름을 딴 '단테움'이라는 성전을 기획한다. 콜로세움 앞에 엄청 큰 공원 부지에 지으려고 했다. 이는 예산초과와 생각보다 이른 무솔리니의 몰락으로 인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어지지 않은 건축물 중 가장 개성 있는 담론들이 많이 있다. 브루탈 하면서도 큰 덩어리 건축의 특성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는데, 최근에 가장 대표적인 예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현세를 지탱하고 있는 가상세계의 기성 원리를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유지가 하고 있었다. 주인공 마키는 할아버지의 도형적이고 추상적인 세계관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마키의 의도가 자신을 파괴할 것을 알면서도 애잔하고 적당한 위로를 남기며 떠난다. 기성세계를 파괴하고 극단적인 새로운 세계가 불과 함께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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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두오모 대성당 꼭대기에 가면 누구나 한 번쯤은 찍어보고 싶게 만드는 구도가 나온다. BBPR이라는 건축가 그룹이 만든 기괴하게 생긴 높은 건물을 대성당의 조각이 바라보고 있다. BBPR은 전후세대 모던건축운동을 펼친 레지스탕스들이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보수적인 도시에 가장 급진적인 건물을 가장 오래된 건축물의 동상이 바라보고 있다.


_DSC6430.JPG 누구나 한 번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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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노 마리니가 만든 미스 반 데 로에와 슈트라빈스키


밀라노 시내에 Aldo Rossi가 만든 분수 구조물을 찾다가 Alessi 매장을 보게 되어 들어갔다. Alessi는 특이하게 회사 내에 디자이너가 없다. 항상 외부에 건축가나 설치미술가 같은 예술가에게 디자인을 맡겨 제품을 생산한다. 제품의 만듦새와 질과 상관없이 비싼 가격의 이유는 아마도 예술가에게 가야 할 커미션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단하게 잘 만든 제품이 아니라도 Alessi의 제품을 사고 싶은 이유는 이것들이 항상 예술품의 가치를 가질 정도로 예쁘기 때문이다. 생활에서 예술품을 쓰는듯한 기분을 받는다. 이런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뭐 얼마나 있을까.


_DSC6410.JPG Aldo Rossi가 만든 냄비. 쓰기에 정말 불편할 거 같지만 꼭 쫌 써보고 싶은 그런 냄비

밀라노에서의 마지막 목표물에 다 왔다.


_DSC6396.JPG Aldo


어떻게 살 것인지 대충 갈피가 잡힌다. 최주평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사랑했다 최주평. 유비와 제갈량이 되어야 한다. 진일보한 의미와 재미를 찾아 떠난다. 미래주의는 끝없이 액셀을 밟아 간다. 말이 좀 이상하지만 Post Futurist가 되어 살려고 한다. 후기 미래주의자? ㅎㅎ Aldo Rossi의 분수대 계단이 아름다웠다. 저 위에는 뭐가 있을까 상상했다. 계단에 사람들이 앉아 핸드폰을 하고 있다. 과연 저 꼭대기에 오르면 어떤 모습이 보일까, 옆으로 누어진 창틀로 반대쪽 낙수하는 물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을까? 궁금해서 계단 위를 올랐다.


_DSC6401.JPG Rossi


이 신성한 Aldo Rossi의 분수대 위에서, 노숙자들은 밤을 지내나 보다. Aldo Rossi에 대한 향수마저도 그저 과거의 것인가 보다. 가슴 아프면서도 마음이 따뜻하다. 무슨 감정일까. 내가 생각했던 거보다 더 현실이 중요해진 기분이랄까. 현재라는 시점이 생각보다 더 강한 힘을 가졌다는 걸 처음 깨닫는 기분이었달까. 그러니깐,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아름다움과 추억과 기억보다 현재의 움직임이 무엇보다 두껍고 거대하게 밀려오고 있다는 기분이랄까. 자코모 발라의 그림 속 강아지의 움직임조차 박제된 과거일 뿐이라는 것. 그 잔인함. 시간의 차가움을 느낀다. 훅 지나간다. 시간이.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 지금이 재밌어야 한다. 풀 액셀.. 밟고 가자.


_DSC6403.JPG 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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