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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Nov 15. 2022

막심여해(漠心如海)

추수막막심여해(秋愁漠漠心如海)

단잠을 자고 있던 중이었다. 어둠 속에서 깜박 눈을 뜨니 사방(四方)이 고즈넉한 가운데, 머릿속에서 막심여해(漠心如海)란 생뚱맞은 말이 문득 떠올랐다. 혹여 꿈을 꾸던 중은 아니었나 어리둥절한 심정으로, 이 말의 의미를 떠올리고자 무진 애를 썼다. 그새 잠은 멀리 달아났고, 창가로 스며드는 여명(黎明)처럼 정신이 서서히 맑아왔다.


한자를 학교에서 정식으로 배운 세대(世代)이긴 하지만, 한문은 제대로 알지를 못한다. 한자 공부는 글자를 익히는 것을 중심으로 하고, 한문 공부는 글자는 물론 문장을 배우는 영역까지 그 범위를 넓힌다. 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할 적에 한문시험을 감독할 때가 종종 있었다. 학생들에게 시험지를 배부(配付)하고 나서 시작종이 울리면 이내 시험지로 눈길이 돌리곤 했다. 시험감독을 하며 40분의 무료(無聊)한 시간을 보내기엔, 재미 삼아 틈틈이 풀어보는 한문시험 문제 만한 것도 없었다.


한문시험 문제를 풀 때, 신문기사 속 한자어의 훈음(訓音)이 일치하는지, 우리말을 한자로 옮길 때 글자 상의 오류(誤謬)가 있는지를 파악하는 문제는 비교적 답을 찾기가 쉬웠다. 사자성어(四字成語)의 의미와 관련된 문제나, 만화 속에서 생활한자를 묻는 문제도 답을 찾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한자의 부수(部首)를 묻는 문제나 글씨를 획(劃)의 순서대로 표기(表記)하는 문제는 옛날 우리가 공부했던 내용과 대동소이(大同小異)했기에 늘 자신만만했다. 그런데 옛날과는 달리, 학생들이 한문 시간에 배우는 한시(漢詩)나 한문 고전(古典) 속 명문(名文)을 문제로 출제하면 답을 찾아내기가 만만찮았다. 한문법(漢文法)과 문장 속에서 글자의 어법적 역할을 묻는 문제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문 고전은 옛날 국어시간을 통해 배운 내용을 그대로 묻는 경우가 많아 그럭저럭 답을 추론(推論)해 볼 수는 있었지만, 낯선 한시의 경우는 답을 찾아내기가 정말 막막했다. 그래도, 시험이 종료된 후 학생들에게 공개된 공개된 답안으로 답지를 채점을 해보면 그럭저럭 90점 가까운 점수를 받을 수는 있었다.


막심여해라, 아무리 곱씹어 생각해도 사자성어는 아닐 것 같았다. 결국 궁금증에 못 이겨, 어둠 속에서 휴대폰을 열고 검색해보니 뜻밖에도 이 말이 포함된 내용이 나온다. 춘수막막심여해(春愁漠漠心如海), 조선 중기의 학자 미촌(美村) 윤선거(尹宣擧)가 쓴 봄노래 '춘사(春詞)' 속의 한 대목이다. 시의 전문(全文)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春詞(춘사)

滿地梨花白雪香(만지이화백설향)
東方無賴捐幽芳(동방무뢰연유방)
春愁漠漠心如海(춘수막막심여해)
棲燕雙飛綾畵樑(서연쌍비능화량)

눈처럼 하얀 배꽃에 온 땅이 향기로우네
봄바람은 얄궂게 진 꽃마저 흩날리네
아득한 시름은 바다만큼 깊어가는데
쌍쌍이 나는 제비 들보 위에 집 짓는다

 

처음엔, 심심풀이로 보곤 했던 무협만화(武俠漫畫) 속의 무공심법(武功心法) 이름이 막심여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뜬금없지 않은가. 잠을 깨자마자 머릿속으로 떠오른 말이, 현실 속에서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낯선 사자성어라니. 검색한 시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눈처럼 하얀 배꽃은 봄바람에 얄궂게 흩날리고, 아득한 시름은 바다처럼 깊어 그 근심의 밑바닥을 가늠할 수조차 없다. 하지만 이 시의 시작과 끝의 노랫말은 아름답고 낙관적(樂觀的)이다. 슬쩍 시 속의 한 부분을 비틀어 보았다. 막심여해가 나오는 바로 그 부분이다. 추수막막심여해(秋愁漠漠心如海), 갑자기 머릿속이 맑아졌다. 그래, 바로 이것이었어! 이 가을 아득한 시름이 있어, 내 마음속에서 바다만큼 깊어졌던 것이야. 난생처음 겪은 급성폐렴과 이어진 긴 병원생활은, 깊이조차 가늠할 수 없는 끝 모를 바닥까지 내 마음을 무너져 내리게 했던 것이다. 퇴원을 하고 나서도 여전한 잔기침은 마음불편하게 만들고, 매끼를 거르지 않고 양껏 먹고 있기는 하지만 한번 소실(消失)된 팔다리 근육이 당장 제자리로 돌아올 리는 없다. 결국, 마음속 근심이 나도 모르게 깊어질 대로 깊어진 것이다.


잠시, 심호흡으로 숨을 고르고 난 뒤 시를 다시 한번 읽어 보았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시는 시작과 끝의 노랫말 속에 름답고 낙관적이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다. 들보 위에 집을 짓는 한쌍의 제비가 바로 희망의 씨앗을 물고 있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마음이 한층 밝아졌다. 가슴이 개운해지면서 새벽 기침이 잠시 수그러들었다.


두어 시간, 글과 씨름하다 보니 벌써 날이 밝았다. 흔치 않은 경험이었기에 생각이 미치는 대로 글을 썼다. 평소 같으면, 개꿈이라 여겨 신경도 쓰지 않았을 황망(慌忙)스럽기 그지없는 꿈이다. 난생 듣도 보도 못한 꿈속의 글에 홀려 자다 말고  이를 검색까지 한다는 게 평소 같으면 가당하기나 한 일인가. 결국, 심리적 기저(基底)평상시와는 달리 온통 흐트러져 있었기 때문일 텐데, 결국 이를 극복해야 해야 하는 것은 온전한 내 몫일뿐이다.


오는 목요일에 있을 메디컬 체크가 걱정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몸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음을 느낀다. 단지, 병원에서의 각종 검사와 채혈(採血), 어수선한 병실생활 속에서 거듭금식(禁食)이나 불면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잠시 나를 짓누르긴 했지만, 퇴원한 이후로는 이 마저도 하루가 다르게 기억 속에서 멀어지고 있다. 가을의 시름이 깊긴 했으나 이제 그 끝이 보이니 내 마음이 한층 더 용맹(勇猛)스러워진 탓이다.


며칠 사이 잔뜩 흐리기만 했던 날이, 오늘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가을날이다. 가슴속 수심(愁心)이 걷히니, 오늘 내 마음은 푸른 가을 하늘처럼 맑고도 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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