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빈자리>
버려진 아이처럼
넌 그렇게 보일 듯 말 듯
우리 곁을 머물렀었구나
너의 뇌를 좀 먹던 종양腫瘍과
네 고통의 깊숙함을
우린 미처 알지 못했다
생사의 기로岐路에서
홀로 새벽을 열어가며
오르던 등굣길
푸른 별은
너의 심장 속을 흐르는
푸른 피로 길을 내어
애달픈 열일곱 삶의
어둠 속으로
저물고 있는데
복도 끝
네가 마련한 그 자리,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네 삶의 공간 속으로
창백한 가을빛 처연凄然하다
지금,
복도를 흐느적이는 그림자는
분명 너의 허상虛像일 거다
바람에 일렁이는
넉넉한 몸의 기운과 온기와
네 생명의 흔적들이
기억의 그림자로만
남은 지금
이제 푸른빛 햇살로 돋아
넌, 이승의
마지막 빗장을 걸고 있구나
네가 떠난 빈자리
그토록 네가 머물고 싶던
복도 끝, 너의 빈자리로
웃고 떠들며
오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 오히려 슬프다
아득히 멀어져 간
네가 무척 그리운 거다
《참으로 심성(心性)이 고운 아이였습니다.
영자신문반을 함께 하며, 구김살 하나 없이 힘든 내색도 않고 모든 일에 묵묵히 앞장 서던 아이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먼저 데려가심에는 분명 다른 의미가 있었겠지요. 그리 믿으려 애를 써보지만 아직은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열일곱 꽃다운 나이, 그리 길진 않았지만 맺은 인연이 있어 쉽게 내려지질 않습니다.
오늘, 복도 끝 그 아이가 책상을 밖으로 내어 혼자 공부하던 자리를 지나갑니다.
아이들이 무심코 웃고 떠들며 생각 없이 그 자리를 기웃댑니다. 가을빛이 여전히 고운데, 그래선지 내 마음은 더 서늘하게 아픕니다. (2014.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