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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Jul 30. 2024

기지개

'기지개'의 사전적 의미는 '피로하거나 나른할 때 몸을 쭉 펴고 팔다리를 뻗다'로 정의되어 있다. '기지개를 켜다'라고 말할 땐, 몸의 피로감이나 나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쭉 펴면서 팔다리를 행위를 나타내지만, 사람이 어떤 활동을 시작하거나 어떤 일 혹은 현상이 싹트는 것을 일컫기도 한다.


2022년 4월 말, '나는 초능력자다'를 제목으로 해서 브런치에다 첫 글을 올리고 난 후, 이듬해인 2003년 3월 말 127번째 글 '브런치 활동을 잠시 쉬어가렵니다'를 마지막으로, 이후 1년 4개월 여가 지난 올 7월 초까지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았다. 브런치 활동에 열심이던 당시에는, 여러 작가님과 글벗을 맺고 이들의 훌륭한 글을 읽으면서 글 쓰는 재미에도 흠뻑 빠져있었으니 부득불 브런치를 떠나야만 했던 1년 4개월  공백의 시기가 두고두고 아쉬웠다.


봄기운이 차가운 바닷바람에 온기를 불어넣자 공원이나 바닷길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어났다. 엄혹(嚴酷)한 감염병의 족쇄가 느슨해진 것이 바로 그즈음이었다. 하나, 둘 마스크를 벗어던진 사람들의 얼굴에선 그동안 감춰졌던 절반의 웃음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꿈틀대는 것이 있었다.


그날따라 더 늦어진 산책길이었다. 해가 길어져 이른 저녁을 먹고 길을 나서면 해 질 녘엔 거의 반환점 가까운 곳까지 돌아올 수도 있었지만, 오늘은 그 절반도 못 미쳐 바다와 맞닿은 저녁 하늘이 보랏빛 해그늘로 짙게 물들어 있었다. 문득, 글을 쓰고픈 생각이 들었다.


'슬픔에도 색깔이 있다면 그 색깔은 분명 오늘처럼 노을빛일 거야.' 머릿속을 요리조리 맴돌 있 생각 때문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스스로 걸어두었던 글쓰기의 금제(禁制) 풀어버리싶진 않았다. 세상을 향해 간담(肝膽)헤치고 나설 만큼 여전히 마음이 여유롭지를 못했던 것이다.


길고 길었던 코로나의 암울한 터널에서 완연히 벗어났다 말해도 될 만큼 길거리에는 마스크를 낀 사람이 드물다. 하지만, 분주하게 바닷길을 오가다가도 어딘가에서 잔기침 소리라도 들리면 턱 언저리부터 매만지며 마스크의 흔적을 좇는다. 감염병의 병흔(痕)이 뇌리 속 화인(火印)으로 그만큼 깊숙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앞서가는 두 사람은 아마 모자관계일성 싶다. 아들로 보이는 사람이 우선은 키가 크고 다. 그런데, 손을 잡은 채로 한 걸음 물러서서 뒤를 따르는 남자의 발걸음이 영 신통찮아 보였다. 사실, 코로나 이전에는 시각 장애우와 함께 산책을 하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어둠이 짙게 내린 거리를 산책하기에영일대 바닷가 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에, 휠체어를 타거나 불편한 몸을 손수 이끌고 바다 가까운 길거리를 찾아 나서곤 했던 것이다.


요모조모 살피며 걷다 보면, 지난 3년간의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기 위해 구석구석 거리마다 완연히 기지개를 켜고 있는 듯 보인다. 사람들의 바닷길 산책이 잦아지면서 한동안 보이지 않던 노점과 해변 앞 상가의 호객 행위가 우선 눈에 띄게 늘었다. 심지어, 이전까지만 해도 드러내 놓고 흡연을 않던 청소년들이 이젠 버젓이 담배를 꼬나물고 사람들이 오가는 길거리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거리가 안온(安穩)해 보이는 것은 이전까지 익숙했던 모습들이 눈앞으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 틈새를 비집고 나온 조개구이 냄새가 밤바람에 실려 여기저기로 풀리고 있다. 길 건너편 산책로에선 어린 소녀가 버스킹을 하고 있는데, 팔짱을 낀 사내 몇몇이 주위에 둘러서서 노래를 듣더니, 조용필 노래 '꿈'을 태연 버전으로 불러 달란다. 아니나 다를까, 이 이름 모를 어린 가수는 얼핏 보아서는 태연을 무척 닮은 데다 음색까지 비슷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이 노래가 '중년의 찬송가'와 진배없다며 오버하는 바람에 달궈지고 있던 분위기가 썰렁하게 식어버린 순간도 있었다.


이재성의 '그 집 앞'을 부를 땐 일부 취객들이 가세해서 떼창으로 이어졌고, 흥에 겨운 몇몇 아줌마들은 건들건들 어깨춤을 추기도 했다.  어둠이 까맣게 짙어진 하늘은 마치 화병(花甁)을 거꾸로 세워 놓은 듯, 살포시 벌린 큰 주둥이로 지상에서 명멸(明滅)하고 있는 이런저런 불빛과 요란하게 들려오는 오만 소리들을 하늘이 맞닿은 회색빛 공동(空洞) 속으로 집어삼키고 있었다.


홀로 걷고 있는데도 외롭지 않은 건 때마침 걸려온 전화 덕분이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전화기 너머의 아들 목소리. 지금 이 순간, 우리 두 사람을 에워싸고 있는 이처럼 익숙한 풍경이 누군가에겐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자, 평생의 구경거리로 기억될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가슴 언저리로 무언가가 한차례 꿈틀거렸다. '왜 이처럼 낯익은 풍경 속에서도 마음이 요동치는 것일까?' 내면 깊숙한 곳으로 씨앗 하나가 심어 순간이었다.


브런치에서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는 건 그저 시기상의 문제일 뿐, 그럴만한 명분이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다 두어 달이 훌쩍 지난 7월의 어느 날 아침, 아무런 생각도 준비도 없이 '집에 가고 싶다'라는 제목으로 후다닥 글 한 편을 써내었다. 출근 무렵, 눈에 익숙한 아파트 단지의 아침 풍경을 보고 나서였다. 마음속 깊숙이, 견고한 껍질 속에서 꼭꼭 숨어 있던 씨앗 하나가 발아(發芽)하여, '글을 다시 쓰고 싶다'는 내적 욕망이 기지개를 켜도록 만든 것이다.


사실, 남들처럼 글쓰기에 강박(强迫)을 느껴본 적은 없다. 내가 쓰는 글이 수단이나 목적이 된 적이 없어서이다. 그저 쓰고 싶어서 쓸 뿐,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읽으며 다음글을 기다릴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어준다그뿐인 것이다. 비로소, 내 마음속에 억눌러 놓았던 글쓰기의 기제(機制)활짝 기지개를  느낌이다.


https://youtu.be/WwI_vwzGh5A?si=l6LovMiqeDfrfOaD

조용필 '꿈'의 태연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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