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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Aug 09. 2024

잊혀지는 것들

 글을 쓰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쓸려고 하면 그새 머릿속이 먹먹하다. 마음먹고 길을 나섰지만, 어디부터 가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꼴이다. 이런 날은 숨길 수 없는 후회가 따르는데, 바로 잊혀지는 것들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다.


몇 해 전의 일이다. 모임을 함께 하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포항을 찾은 적이 있는데, 저녁을 먹고 나서 숙소로 돌아와 늦도록 이야기 꽃을 피웠다. 삼성그룹 임원으로 퇴직한 친구는 지난날의 기억이 모호하거나 함께 공유한 기억에 혼선이 있을 때는 먼저 휴대폰의 메모장부터 확인한다고 한다. 물론, 메모 습관은 대기업의 관리자라면 의당 갖추어야 할 덕목의 하나임이 분명하지만 뛰어난 글솜씨와 함께 글쟁이로도 명성이 자자한 그에게는, 하찮은 일이라도 메모하는 습관을 통해 지금껏 쌓아  방대한 글감이야 말로 무가지보(無價之寶)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날 이후, 반드시 기억해 둬야 할 일이 생기거나 머릿속을 번개 치듯 스치는 기막힌 발상은 어김없이 메모를 한다. 그런데, 오늘처럼 정처 없이 글 줄을 잡고 나선 길은 몇 발짝 떼지도 못해 금세 막다른 골목이다. 바로 지금부터가 고행길의 시작인데, 결국은 잊혀지는 것들을 안갯속처럼 모호한 기억 속으로부터 하나하나 건져 올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간신히 건져 올린 기억을 단초(端初) 삼아 휘적휘적 그 뒤를 따라가 본다.


1996년 7월 7일, 17시 30분 KAL B 747-400. 우리 연수단이 김포 국제공항에 모여 미국으로 출발할 시간과 항공편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청사 안으로 들어가니 먼저 온 선생님들 몇 분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교육부 국제교육 진흥원에서 나온 직원이 출국 수속을 밟는데 도움을 주어 해외여행이 거의 처음인 선생님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미리 환전을 해 두었던 터라 여유롭게 청사 내부를 둘러보고 있는데, "선생님!" 하는 소리가 들려 주위를 살피니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내가 담임을 했던 첫 제자이자 우리 반 반장 상원이었다.


상원이는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생명에 입사를 해서 용인 삼성연수원에서 영어연수를 담당하고 있었다. 함께 온 아리따운 아가씨가 있었는데, 말을 몇 마디 나누기도 전에 벌써 양볼이 붉어져 있었다. 짐작한 대로 상원이의 여자 친구인데,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 그 자리에서 뜻하지 않은 선물도 받았는데, 붉은색의 굵은 줄과 흰색과 검은색의 가는 줄이 가로로 번갈아 날염(捺染)된 여름 티셔츠였다. 선생이 되고 나서는 거의 입어 본 적이 없는 밝고 화려한 색상의 티로, 이후 한 달여의 연수기간 중 가장 즐겨 입는 옷이 되었다.


오후에 출발한 비행기가 일본을 지나 태평양 위를 지나면서 이내 날이 어두워졌는데 날짜 변경선을 지나자마자 금방 날이 밝았다. 장거리 비행은 처음인지라 오금이 쑤시고 저려왔는데 어느 때인지는 몰라도 기내식이 두 번 제공되었고, 그 사이에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 보려고 준비해 온 멜라토닌 정제(錠劑)를 먹었다. 경유지인 시카고까지만 하더라도 13시간 이상 걸리는 장거리 비행인 지라, 연수를 마치고 돌아올 날이 벌써 걱정되었다.


시카고 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은 현지 시간으로 오후 3시 35분경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기내에서 30분 이상 대기를 하고 있는데, 공항 직원이 와서는 피츠버그 국제공항까지 갈아타는 국내선에 이상이 있음을 알렸다. 부득불 항공사에서 마련해 준 공항 근처의 하이야트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그다음 날 피츠버그로 떠나는 일정이 잡혔다. 우리 연수단으로선 연수가 반나절 줄고, 시카고의 5성급 호텔에서 하룻밤 묵으며 이날 저녁 뜻하지도 않은 시카고 관광을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 격이었다.


호텔에 여장을 풀자마자 암트랙(amtrack)을 타고 Sears Tower 가 있는 다운타운으로 갔다. 이미 퇴근 시간을 지나서였는지 고층빌딩이 즐비한 도심의 거리는 텅텅 비어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한산했다. 회색 콘크리트 건물 사이 샛길로 옷매무새마저 불량스러운 청소년들이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그들로서도 잔뜩 경계심을 갖고 깜짝 놀란 듯 쳐다보는 이방인들이 썩 달가울 리는 없었을 것이다. 베드타운으로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간 후의 공동화 도심은 지금의 우리들로서는 상상조차 못 할 아직 먼 훗날의 풍경이었다.


Sears Tower의 아래층 벽면에는 Chicago Bulls의 슈퍼스타 Michael Jordan이 에어 풋으로 덩크슛을 터트리는 걸개그림이 걸려 있었다. 소문과는 달리 Sears Tower의 전망대를 찾는 관광객들은 많진 않았지만, 눈 아래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있는 시카고의 야경은 정말 볼만했다. 전망대 아래, 멀리 보이는 Michigan Lake의 야경에 혹해서 서둘러 건물밖으로 나왔다.


암트랙을 타고 차창밖으로 바라본 시카고의 첫인상은 몹시 지저분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스프레이를 뿌려 난삽(難澁)하게 낙서를 한 건물들이 한 두 곳이 아니었고 거리는 오물투성이었다. 암트랙 화장실에서 문을 열어 둔 채 용변을 보다 그만 눈을 마치고만 흑인 청년의 눈동자엔 적개심이 잔뜩 서려 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긴장과 불안감으로 미국에서의 첫날밤을 밤새도록 뒤척인 이유였다.


US Air를 타고 두 시간 가까운 비행 끝에 피츠버그 국제공항에 도착을 하니 West Virginia University에서 보내온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1시간 반 가량 타고 가는데, 도로 곳곳에는 로드킬 된 야생동물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널브러져 있었다. 사고의 위험성이 큰 데도 동물의 사체(死體)를 도로에서 그때그때 치우지 않는 이유가 이 또한 생태계의 일부이며 자연의 섭리(攝理)이기 때문이란다. 뭔가 일리가 있는 듯하면서도 뜻밖의 답변이어서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연수 중 묵게 될 기숙사는, 당시로서는 생소한 BTL(Build Transfer Lease, 임대형 민자사업)로 지어진 고층의 Summit Hall이었다. 한눈에 보더라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건물인데, 2인 1실이지만 사생활이 보호되도록 파티션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우리 한국 연수단은 처음부터 1인 1실의 계약이었다. 마침, 대학이 방학 중이어서 우리들처럼 국외 연수자들이 주로 기숙사를 이용했는데 태국과 일본, 독일, 멕시코와 콜롬비아 사람들이 그중 눈에 띄었다. 특히 관심을 끈 나라 가운데 태국의 경우는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행정고시 합격자들을 위한 해외연수가 목적이었고, 콜럼비아는 재계 인사들의 실무와 어학연수를 해서, 일본의 경우는 가정이 부유한 대학생들의 어학연수가 목적이었다.


첫날 저녁 식사 중에, 중년 나이의 독일인이 나랏돈으로 교사연수를 왔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묻는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한국이 도대체 얼마나 잘 사는 나라이기에 국비로 연수를 시켜주고, 이처럼 비싼 기숙사까지 무료로 이용하게 하는가'라는.  바로 그 이듬해부터 시작된 IMF 외환위기를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미안한 생각과 더불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대학에서 마련한 리셉션에 참석했다. 기숙사에서 내려와 리셉션 장소로 통보받은 대학 건물을 찾아 나서는데, 마을을 지나쳐 오르는 언덕길이 제법 가팔랐다. 땅거미가 내려 드문드문 보이는 가정집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데, 그 불빛이 미치는 테두리 밖의 어둠 속으로 무리 지어 붕붕 날아다니는 벌레들 꼬리의 형광빛이 이리저리 일렁거렸다. 반딧불이였다! 지리산 계곡의 심처(深處)에서도 좀처럼 보기 드문 반딧불이를 이 멀고 먼 이국땅에서, 그것도 한 두 마리가 아닌, 손만 뻗으면 바로 잡힐 듯 눈앞으로 무리 지어 날아다니는 것을 보게 되다니!


그날, 머릿속 깊이 뿌리내린 또 다른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언덕길비탈을 걸어 오르면 이면도로가 나오고 그 건너편이 리셉션이 열리는 건물이었다. 대학이 자리 잡은 Morgantown에 처음 들어섰을 땐 정오 무렵이어서 대낮이었음에도 도로 위를 오가는 차량마다 전조등을 켜고 있는 것이 몹시 인상적이었다. 날이 어둑해지자 대학 구내를 오가는 차량이 뜸해지긴 했어도, 전조등을 켠 택시가 멀찌감치 서서 제자리에 정차하고 있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우리 일행이 미처 언덕길을 오르기도 전이었고, 이면도로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횡단보도로부터 족히 30미터 이상은 더 떨어진 곳이 아닌가. 문득, 이경규가 몰래 숨어서 했던 실험 카메라가 생각났다. 3차선 도로의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선 세 대의 차량 모두가 동시에 정지선을 정확하게 지킬 때 양심 냉장고를 주던 계몽프로그램 말이다. 우리 일행이 도로를 온전히 건너 건물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후에야 그 차는 슬그머니 몸을 움직여 언덕아래로 이어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기숙사로 돌아오니 그 새 흘린 땀으로 등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묵을 기숙사 Summit Hall이 인상적이었던 건,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보편화된 지 오래지만, 건물 전체가 시스템 냉방시설로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현관을 들어서면 바로 냉기가 사방으로 느껴져, 과연 최대 전기 소비국의 위용이란 바로 이런 점을 말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샤워를 하고 나서 피곤에 절어 이내 잠이 들었는데, 얼마 안 있어 온몸이 사시나무 떨 듯 떨려왔다. 에어컨이 내뿜는 찬바람 탓이었다. 그런데, 에어컨을 제어할 수 있는 컨트롤러를 찾을 수가 없었다. 2인 1실이라지만 혼자 쓰는 방이라 냉기가 두 배는 더 되는 것 같았다. 결국, 캐리어 속 셔츠와 바지를 꺼내 입고 옆방 침대 시트마저 벗겨 몸에 두른 채, 거의 미라와 다를 바 없는 형색으로 첫날밤을 맞게 되었다.


끓어질 듯 가물가물하던 기억도 한 자락씩 그 끝을 잡고 보니 서로 꼬리를 물고 있다. 물론, 현장 연수 보고서에 기록된 내용 가운데는 잊혀지고 있던 기억들에 생기를 불어넣는 구체적인 사실들이 많이 열거되어 있다. 연수 활동을 함께 하면서 미리 계획한 대로 실행했던 것이니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이 추억으로 많이 쌓여 있는 것이다.


한 두 편으로 마무리가 가능할 것 같았던 미국 연수의 추억이 막상 글로 눈앞에서 활자화되기 시작하자, 그간 까맣게 잊혀 있던 것들부터 먼저 머릿속에서 돌출하려고 아우성이다. 이미, 수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박물관 이야기는 '미국 정신의 요람, Museum'을 통해 글로 남긴 바 있다.


아무튼, 앞으로 쓰게 될 글의 연속성과 충실도는 '잊혀지는 것들'을 얼마나 잘 되살릴 수 있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그래서, 늦은 감은 있지만 메모라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에 나도 의지해 볼 참이다. 지난날의 기억을 잘 추슬러 떠오르는 생각이 있을 때마다 그 즉시 메모를 해 둘 것이고, 빠른 시일 내에 한 편의 글로 잘 직조(織造) 해 보려고 한다. 그래서 오늘 난, 지난날의 나에게 힘차고 올곧은 손을 내민다. '난 기꺼이 잡으려 하니, 넌 부디 내밀기만 해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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